이달충의 [애오잠병서]를 읽고
유비자(有非子)가 무시옹(無是翁)에게 찾아가 말하였다. 근자에 여럿이 모여서 인물을 평론하는데 어떤 사람은 당신을 사람이라 하고 어떤 사람은 사람이 아니라고 합니다. 당신은 왜 어느 사람에게는 사람 대접을 받고, 어느 사람에게는 사람 대접을 받지 못합니까?
남이 나보고 사람이라 하여도 내가 기뻐할 것이 없고, 남이 나보고 사람이 아니라 해도 내가 두려워할 것이 없습니다. '사람다운' 사람은 나를 사람이라 하고, '사람 아닌' 사람은 나를 사람이 아니라 하는 것만 같지 못합니다. 나는 나를 사람이라 하는 사람이 어떤 사람이며, 나를 사람이 아니라 하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모릅니다. '사람다운' 사람이 나를 사람이라 하면 나는 기뻐할 일입니다. '사람 아닌' 사람이 나를 사람이 아니라 하면 나는 또한 기뻐할 일입니다. 단지 '사람다운' 사람이 나를 사람이 아니라 하면 나는 두려워할 일입니다. 그리고 '사람 아닌 '사람이 나를 사람이라 하면 또한 두려워할 일입니다.
기뻐하거나 두려워해야 하는 것은, 마땅히 나를 사람이라 하고 나를 사람이 아니라 하는 사람이 '사람다운' 사람인지 '사람다운' 사람이 아닌지를 살피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오직 어진 사람이어야 능히 사람을 사랑할 수 있으며 능히 사람을 미워할 수 있습니다. 나를 사람이라 하는 사람이 어진 사람인지 나를 사람이 아니라 하는 사람이 어진 사람인지 모르겠습니다.
이에 유비자가 웃으면서 물러갔다. 무시옹이 이것으로 잠(箴)을 지어 자신을 일깨웠다.
"자도(子都)의 어여쁨이야 누가 아름답다 아니하며, 역아(易牙)가 만든 음식을 누가 맛있다 아니하랴. 좋아함과 미워하는 것이 시끄러울 때는 어찌 스스로 반성하지 않으리오."
방문한 제자가 자신도 모르게 안고 왔던 코로나 바이러스를 몇이서 나눠 갖게 되었다. 인생에서 가장 길고도 가장 여유로운 휴가가 코로나와 함께 온 그때. 근 열흘에 가까운 시간을 안방에 격리되어 있으면 나는 잘 견딜 수 있을 것인가를 격리하러 들어가기 전에 빠르게 계산해야 했고, 절대 그냥저냥 밥 먹고 약 먹고, 그리고 잠드는 연속적이고도 반복적인 행동을 할 수는 없을 것만 같아 만년노트를 세 권쯤 들고 들어갔다. 아니나 다를까. 칼칼하던 목이 약기운에 부드러워지자 잠 자고 일어나서 무엇을 할지부터 떠올리는 나를 보았다. 그럴 땐 평소에는 못하지만 해보고 싶었던 것을 찾아보고 탐색하는 게 제일!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사주읽기'에 입문했다. 어설프게 알고 있던 명리에 관한 지식을 공책에 정리하면서구체화해 나갈 수 있었고 어렴풋하나마 머리에서 질서를 잡아나갔다. 사주 팔자를 보면 그 운용의 관계가 한 눈에 들어오는 수준은 아니어도, 글자들의 힘의 관계가 어떻게 흐르는지 정도는 어림잡을 수 있게 되었다할까. 그래도 서당개 신세이지만.
무엇보다 의미로운 것은 사주의 역학을 살피면서 나를 더 잘 이해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 역시 선무당의 놀음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사람이든 상황이든 대상을 대하는 나를 좀더 세밀한 눈으로 살펴볼 수 있었고, 마음의 고리를 어떤 모습으로 가져야 하는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얼마 전, 몇몇 친구들이 모여서 밥을 먹는 자리가 있었는데 평소 이해심 많고 유쾌하고 통쾌하기까지 하던 친구가 다소 억지스러운 말을 하는 걸 보면서. 자신의 생각과 맞지 않으면 나무짝 하나 툭 던지듯 마음을 던지면서도 나름 표내지 않으려는 노력은 자신도 모르게 감정에 휩쓸려 있는 듯해 보였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그녀가 어떤 시기여서 저렇게 격한 숨결을 지니고 있나를 생각해 보게 되었다. 아... 전문가들이 말하는 '인비(인성과 비겁)'가 들어온 시기구나. 그래서 자신감이 오르다 못해 억지도 쓰고 있는 거구나. 어느 시점이 되면 자신의 행동들을 부끄러워 하며 미안했다고는 하지 않더라도 스스로는 부끄럽게 생각할 사람이니 지금, 이 시기를 잘 보내길 바라야겠구나.... 하는 나를 보았다.
마음이 성장하지 못한 까닭에 거칠게 말하는 이를 사납다고 여기고 꺼려했었다. 이해하기보다 일정한 거리를 두는 것이 피차간에 필요한 시간이라고 생각했었다. 꼭 나를 향해 내뱉는 몸짓이 아니어도 심장이 두근거려서 말 걸기를 주춤했었다. 어쩌면 그런 몸짓이, 말꼬리가, 숨결이 모두 무엇을 말하고 싶은 것이었는지도 모르는데. 나이들면서 구차하게 묻고 그것이 따지는 듯한 오해를 낳게 될까 염려되어 아예 마음을 두드려볼 기회조차 밀어내고 말았던 것은 아닌지.
인생지사 새옹지마이고 역지사지인데. 지금 불편한 감정들이 더 돈독하게 하는 기회가 될 수도 있는데. 지금 내 앞에서 툴툴대는 저 모습이 내가 무의식적으로 지녔었고, 표현해대던 모습일지도 모르는데.... 그때 누구라도 왜 그러냐고 물어봐 주길 바랐던 감정을 한 번도 갖지 않았던 것처럼 외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이달충의 [애오잠병서]를 읽으면서 위로를 받았다가 이내 가시로 콕콕 박히는 아픔을 느꼈다. 명리학을 눈대중으로나마 익혔어도 나를 이해하는 데에만 사용하려 했구나. 사람을 이해하고 마음을 나누는 데에는 인색했구나. 새삼 머리와 가슴의 거리가 가장 멀다는 말이 이러한가, 부끄러움을 느끼게 되었다. 타인의 행동이나 말은 모두 나를 볼 수 있는 거울이 된다는 것을 이제 알아야 한다. 그래서 좋아하고 미워하는 마음이 시끄럽게 요동을 칠 때는 다른 누구 말고 스스로를 반성하라던 이달충의 문장을 읽으며.... 다른 누구의 평가보다 나 자신에 대한 평가에 진심을 다해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바늘로 찌르듯 다소 아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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