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서는 안 다닐 것 처럼 굴더니
어린이집 동기인 현서가 다닌다고 하니
그제서야 자기도 다니겠다며
둘이 손잡고 아주 재미나게 다닌지 3개월쯤 됐다
지금은 노란줄띠인데,
흰띠, 흰색줄띠, 노란띠, 노란줄띠 순이니깐 4계급정도 된다
미취학아동은 도복이 노란색이다. 병아리같다.
큰 딸은 늘 아빠 귀에다 대고
"노란줄띠 다음엔 주황띠, 주황띠 다음엔 주황줄띠
그다음엔 초록띠, 초록줄띠, 파란띠, 파란줄띠..."
한참을 얘기하고 나야 품띠, 검은띠가 등장한다
언제 이렇게 줄띠가 많이 생겼는지
그걸 외우는 니가 더 대단하다
#2
태권도장이 좋은 이유는 단순히 태권도만 가르치는게 아니라,
줄넘기, 트램펄린, 체조댄스 같은 부가 활동이 많기 때문이다
합숙훈련도 하고 크리스마스 이벤트, 할로윈 이벤트도 있다.
거기에 더해 인성교육까지 지원해준다
매월 초 태권도장에서는 미션종이를 주는데
말 잘듣기, 동생과 놀아주기, 신발 정리하기 뭐 이런 것들이다
이걸 수행하면 엄마/아빠가 종이에다가 사인을 해주고,
종이를 태권도장에 가져가면 포인트종이로 바꿔준다
그리고 이 포인트종이는 연말 포인트상점에서 화폐로 쓸 수 있다
큰 딸은 이 미션종이에 사인을 받기 위해
고사리같은 손으로 식탁을 닦고, 아빠 머리를 주무른다
귀엽다. 그리고 사랑스럽다
용돈 주는것보다 나은것 같다
#3
하루는 현서가 일이 있어서 태권도장을 못간다고 하더라
큰 딸은 풀이 죽었는지 자기도 안가겠다며 떼를 쓴다
그래, 한번씩 째고 싶은 날도 있는거지.
태권도 관장님께 전화를 걸었다.
"관장님 오늘 저희 딸 몸이 안좋아서 하루 쉴게요,
버스 안보내주셔도 되겠습니다. 네 들어가세요"
통화를 듣고 있던 큰 딸이 내게 질문한다
"아빠, 나 몸 안아픈데 왜 몸 안좋다고 그런거야?"
"응, 그냥 대충 둘러댄거야. 별거 아냐, 집에 가자"
"아빠, 왜 거짓말해? 나 몸 안아프다니까?"
"거짓말한게 아니라 설명하기 어려워서 둘러댄거야"
"아빠 거짓말했어. 나 안아픈데 엉어엉엉"
내 딴엔 우리 아이가 친구에게 의존적인 성격으로 보일까봐
대충 아픈걸로 둘러댄건데, 아이의 입장은 그게 아니었구나
내 행동을 되돌아보게 됐다
난 살아가며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쉽게 거짓말을 하고,
그걸 선의의 거짓말로 포장하며 살고 있는건 아닌지
반성하게 되는 하루였다
둘째 얘기를 빠트릴 뻔 했네
4살인 된 녀석은 여전히 활기차고 티없이 깨끗하고 맑다
가만히 보고 있으면 내 마음이 정화되는 느낌이다
우리 집 지하주차장에 차를 대고 공용현관문을 열어두면
둘째는 쏜살같이 뛰어가 비상구 계단 쪽에 숨는다
나는 모르는척, "둘째 어디갔지~ 못찾겠네~ 이상하다"
못찾는 흉내를 내다가
"못찾겠다 둘째야 춤추면서 나와라"
그제서야 "어흥, 깜짝놀랬지!?"하며 튀어나오는 둘째
그 모습이 너무 귀엽고 사랑스럽다
"아이쿠 깜짝이야, 놀랬잖아"
놀란척을 해주면 그런 아빠가 재밌는지 깔깔깔 웃는데
그것이 나에겐 힐링이자, 꼭 살아가는 이유같다
언제까지 비상구에 숨으련지
5살이 되면 안 숨으려나
계속, 나이가 들어도, 계속 숨었으면 좋겠다
그 동심이 영원했으면 좋겠다
그런 너와 영원히 깔깔깔 행복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