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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늬 Moon Feb 07. 2024

뜨거운 아이들, 기적의 여행작가

서로에게 선물인 친구들

나의 제자 그 아이가 신문 기사에 났다.

“오늘 소풍은 평생 선물이에요. 선생님! 잊지 못할 것 같아요.”

내 교직 생활 중 단연코 가장 지혜롭고 훌륭한 인성의 학생이다. 독서를 많이 한 이가 보이는, 이의를 제기하기 어렵게 만드는 논리와 풍부한 어휘력, 겸손한 태도에 표현력까지! 발표를 할 때나 글을 쓸 때면 특히 눈이 빛났다. A는 발표와 질문으로 수업을 풍성하게 했고, 나에게는 교사로서 더욱 노력하게 했다. 친구들에게는 공부의 핵심을 알려주는 역할이 되었다. 우리 반의 수업에는 책과 친구와 사랑이 있어 더 좋은 분위기가 되었다. 그렇게 A는 책을 통해 세상을 향해 끊임없이  나아갔다.

그러나 신은 가혹했다. A를 볼 때면 항상 그런 마음이었다. A는 뼈 형성 관련 질병으로 몇 년째 등교를 거의 하지 못하고 있던 터였다. 휠체어 생활로 인해 급식, 화장실 이동조차 어려웠다. 오래전이라 시설, 제도 등에서 많은 제약이 있던 것은 내내 안타까웠다.



가혹했던 신은 그 해, A에게 축복이며 나에게는 고마운 천사들을 함께 보냈다. 그 아이가 등교할 수 있는 날이면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의자를 빼주거나 가방을 들어주는 아이들. 행여 다칠까 길을 넓게 열어주고 물이나 화장지, 학용품 등을 가져다주던 수 십 명의 친구들이 항상 곁을 지켰다.

모든 친구들이 거짓말처럼 착하게 도와주어도, 내가 정성스레 준비하고 열심히 가르쳐도 무언가 안타까움이 남는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러다 A가 집중 치료를 받는 일정이 잡혔는데 체험학습이 지나고 나서 상당한 기간이었다. 소풍을 앞두고 아이들은 도시락에 간식 이야기로 마냥 신나서 기대에 부풀었지만 A는 달랐다. 4학년이던 그해까지 한 번도 체험학습을 가보지 못했던 A는 여느 날처럼 그저 차분했다. 조용히 앉아서 책과 함께 울고 웃기만 하는 그 아이가 더 마음 아팠다. 그래서 단 한 번이라도 체험학습을 경험하게 해주고 싶었다.           



모름지기 소풍날의 아이들이란 학교보다 자유롭게 웃고 떠들며 뛰어놀기 마련이다. 그런데 A와 함께 체험학습을 간다면 조심하느라 뛰어놀 수 없게 된다. 그럼에도 나의 마음을 듣고는 이번에도 역시 이야기 속의 아이들처럼 기꺼이 함께 체험학습을 가고 싶다고 했다. 체험학습 가서도 잘 도와주겠다고 약속도 했다. 논의를 거쳐 학부모들의 의견도 수렴했다. A의 부모님이 별도 이동과 보호를 맡기로 하고 함께 체험학습을 가게 되었다.

드디어 체험학습 당일, 일부 체험활동을 함께 하고, 같이 앉아 점심 도시락을 나눠 먹었다. 평범한 프로그램과 흔한 김밥 도시락이었지만 어느 때보다 특별한 체험학습을 마치고 우리는 힘차게 손뼉 쳤다. A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고 감사하다며 나에게도 친구들에게도 거듭 인사하고 돌아갔다. 신나게 뛰어놀려던 체험학습에 제약이 생기는 문제 상황이었지만 작은 아이들이 커다란 감동을 이루어 낸 날이었다. 신이 위대한 일을 경험하게 했음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협의와 양보 통해 거룩한 배려를  실천한 아이들. 그 마음들이 모여서 서로에게 커다란 박수로, 기적으로, 평생 선물로 돌아왔다.           

집중치료에 들어가기 전 마지막으로 등교했던 날에는

“선생님, 그리고 친구들 모두 정말 고마웠어요. 의료기술은 분명 더 발달할 거라 믿어요. 그런 날에 저는 꼭 여행작가가 되어 있을 거예요.”

씩씩하게 말하고 그 착한 미소로 손을 흔들며 우리 반 친구들과 헤어졌다.



그렇게도 책을 좋아하고 지혜롭던 그 친구는 20OO 년도 국내 최고 명문대에 진학하며 잘 성장했고 그 대견한 소식이 신문에도 났었던 거다. 그 친구는 내가 갔던 여행지마다 기억 속에서 항상 걸어 나왔다. 앞으로 갈 여행지에도 내 마음에 배움을 일으키며 여행작가로 오래오래 자라날 것이다.      

그리고 그때마다, 달리기를 아주 잘하지만 친구를 위해 참을 줄 알고 천천히 움직이며 살아준 배려 깊은 아이들이 함께 왔다. 아팠던 친구에게도, 교사인 나에게도 감동을 안겨준 아이들은 태양처럼 뜨거운 마음을 가졌다.

모든 아이들을 자주 생각한다. 그 이름들, 그 얼굴들 모두는 나를 ‘선생님’으로 살게 해 준 자체로 나의 제자들이다. '제자'라는 말조차 부쩍 그리운 요즘이다.

얘들아! 너무 보고 싶다. 그리고 정말 고마웠어. 이 글 보다가 ‘내 이야기인가?’ 싶으면 연락하렴~.”


#여행작가 #작가 #제자 #등교 #치료 #신문 #선물 #감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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