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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늬 Moon Jan 31. 2024

나도 어벤저스

동학년이라는 신세계

드디어 섬을 탈출했다. 제철 산업으로 근로자들이 많이 유입되고 그에 맞추어 우후죽순 아파트가 들어선 지역으로.



섬에서 한 반에 일곱이던 학생 수가 스무 명을 훌쩍 넘겼지만 걱정 없었다. 혼자 맡았던 수업 자료도, 시험문제도 뚝딱! 나올 것 같은 믿음도 생겼다. 흔한 청일점 선생님도 없었지만 다섯 반 동학년은 든든함을 주기에 충분했다. 처음 마주한 동학년이라는 신세계였다.

그중 세 명은 집도 비슷한 방향이라 출퇴근 시간을 함께 했다. 지금은 거의 없어진 ‘카풀(car pool)’ 문화 덕에 우리는 많은 대화를 하며 가까워졌다. 서로의 인생에서 배우며 동료를 넘어선 의미의 관계가 된 것이다. 내가 나은 사람이 되려 노력하고, 발전하는 교사가 되기 위해 도전하것은 그들 덕분이다.



동학년 다섯 어벤저스 중 제일 큰 언니 H는 학년에 활기를 주었다. 당당한 모습과 말소리가 참 좋았는데 특히, 배움 앞에서 겸손하고 진지했다. 동료, 웃어른뿐만 아니라 학생들에게서도 항상 배울 점을 찾아내고 칭찬하는 인성이 훌륭하였다. 뭐든 이루어낼 듯한 자신감과 긍정 마인드로 수업과 생활지도에서 크고 작은 도움을 주었다. 전문직이 된 언니는 여전히 에너지 넘치며 열정적인 아우라마저 풍겨져 나온다.

두 번째 언니 C는 어떤 일을 객관적으로 보는 지혜와 새로운 시각을 지녔다. 학급에 생긴 문제에 너무 집중하여 생각이 고여있을 때 새로운 접근을 도왔다. 당시에는 흔치 않게 저축, 보험과 주택과 세금 문제 등 생활 밀착형 지식도 풍부한 생활인이었다. 처음 들어보는 재테크-합법적이고 건전한 금융 상품-정보를 강조하기도 했다. 한 번은 교사 대상 금융컨설팅 행사에 참여하려고 함께 충청도까지 간 적도 있었다. 풍족하지 않았지만 20대의 우리는 용감했다.

나와 동갑인 K는 커다란 키만큼 마음도 시원시원한 친구다. 다른 학년 선생님들이나 처음 만나는 이와도 스스럼없이 가까워지는 밝은 성격을 가졌다. 요즘 아이들 표현으로 ‘핵인싸’에 해당하는 그녀는 도움이 필요한 상황에 재빠르게 몸이 먼저 가서 부지런히 움직인다. 마치 어릴 때부터 쭉 만나던 친구처럼 지금도 내 일에 가장 먼저 나서서 뛰어와 울어주고 웃어준다.

그리고 철없는 신혼의 며늘아가 캐릭터인 막내 J가 있었다. 그녀가 감탄사와 추임새를 넣어가며 신나게 이야기할 수 있도록 우리는 더 크게 반응해 주었다. 당시의 우리로는 이해할 수 없는 ‘신세대’의 문화에 놀랄 때도 가끔 있었지만 그저 귀여웠다. 젊음 자체로 활력을 준 비타민 같은 그녀 덕에 우리는 많이 웃을 수 있었다.

그렇게 우리 다섯은 어벤저스처럼 함께일 때 더 든든한 사이로 지냈다. 연대하는 동료이면서 다정한 자매들이었다. 소중했던 이 관계와 시간이 떠오를 때면 안타까운 마음이 생긴다.



학교가 작아지고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집단지성을 다지는 수십만 동료만큼 현실에서의 동료 한 명 한 명이 절실하다.  

누군가는 더 이상 학교에서 이 마음을 느끼지 못하게 될까 봐, 색깔과 모습을 맞추어가는 퍼즐의 몸짓으로 살아가지 못할까 봐, 동학년 어벤저스의 합체가 아니라 외로운 각각의 히어로로 살아야 할까 봐, 뜨거운 연대의 어깨가 곁에 없어질까 봐 안타깝다.

점차 좁아지는 학교와 교사의 현실이 슬픈 요즘이다.


#학교 #동학년 #동료 #교사 #커뮤니티 #어벤저스 #퍼즐 #탈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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