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올렸던 내 글에 섬세영 크리에이터님이 찾아주셨다. 나도 그분에게서 또 하나의 인생을 배우러 마중을 나갔다. 잠옷에 대한 크리에이터님의 글을 읽고 있자니 어릴 적 내 잠옷이 떠올랐다.
30 하고도 몇 년 전, 아무 날도 아닌데 어느 날 엄마가 선물로 핑크색 드레스 형태의 잠옷을 사 오신 거다. 분명 큰맘 먹고 샀을 핑크색 원피스 잠옷 두 벌.
내 키보다, 동생 키보다 조금씩 더 길었던 치마의 길이가 기억난다. 목주변과 소매 끝, 발목 언저리의 프릴과 진달래색보다는 더 짙은 분홍의 색이 또렷이 생각난다.
자다 보면 치마가 올라가고 말겠다며 이리저리 뒤집어 보았지만 뜻밖의 그 선물은 사실 너무나 좋았고 그날 우리 자매는 긴 잠옷을 서둘러 입어 보고는 팔짝팔짝 뛰었다. 엄마는 배부른 표정으로 우리 자매를 보고 웃었다. 그런 엄마의 로망이 바로 프릴이 달린 핑크 원피스 잠옷이었다는 것은 아주 나중에 알았다. 그리고 엄마가 좋아하는 색깔도 딱 그날의 원피스 색깔임도 알게 되었다. 엄마는 어쩌면 우리의 잠옷이 아닌 무언가를 하기 위해 소중하게 모았을 돈으로 딸들의 작은 행복을 사준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걸 알았는데도, 그 이후로도 나는 엄마에게 잠옷을 사드리지 못했다. 그걸 이제야 깨달았다.
그때의 내 엄마에게도. 지금 나에게도 없는 것은 잠옷이 다였을까? 잠옷으로 대체된 어떤 로망들을 다른 가족을 위해 양보하고 있던 것은 아닐까.
최근 내가 아프거나, 우리 집의 작은 걱정으로 마음 쓰던 내 엄마가 떠오르는 밤이다. 끙끙 앓는 이 통증이 가시면 꼭 엄마랑 내 잠옷을 사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