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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늬 Moon Feb 22. 2024

똥손에게 제라늄

식집사 1단계

K는 훤칠한 키에 시원한 말투를 가진 내 절친이다. 운동을 했던 친구라는 점에서 강한 성격이나 취미를 가졌을 거라는 선입견을 깨뜨린 친구이기도 하다. 우연치고는 결코 쉽지 않은, 그 친구와 같은 아파트 같은 라인에 살 때가 있었다. 그녀의 집에는 사계절 꽃이 있었다. 그래서 차를 마실 때도 밥을 먹을 때도 꽃카페에 앉아 있는 기분이었다.

어느 계절이든 그 시기에 맞는 꽃을 피워내는 거실과 베란다. 나로서는 꿈꿀 수 없는 다른 세상의 일이었다. 같이 어린 아이들을 키우며 직장 다니는 입장에서  언제 식물까지 돌볼 시간이 나며, 어디에서 그런 여력이 나는지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K는 무척 부러워하고 신기해하는 나에게 어느 식물을 건네기도 했다. 기르기 쉬운 식물이니 꼭 꽃을 볼 거라는 말과 함께.  

그러나 매일 만나서 코치를 받으며 키웠는데도 그녀의 집에서는 꽃을 피우고, 내 집에서는 감감무소식이던 같은 식물들. 내 똥손의 역사는 그때부터였다. 어쩌면 그전부터였겠지만 그때 만천하에 드러난 것일지도 모른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똥손의 분야가 매일 먹는 음식에서 예외라는 거였다. 휴, 큰일 날 뻔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거짓말처럼 나도 식물을 기르고 있다. 이제는 잘 기를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랄까, 시간이나 마음의 여유가 생겼달까, 그도 아니면 이제는 식물에게서 꽃을 볼 수 있든 아니든 의미가 있음을 아는 나이가 되어서일까.

이제라도 식집사가 될 수 있게 된 데는 제라늄의 공이 크다. 물론 예전에 K가 준 식물에 제라늄도 있었는데 그때는 실패했었다. 몇 달이 지나도 제라늄은 멀쩡히 살아있는 걸 넘어서 꽃까지 돌아가며 피워냈다.

곰곰이 성공의 비결을 분석해 보았다. 두 가지 상반된 방법을 쓴 덕분인 것 같다. 그것은 바로 눈과 손이 따로 움직이는 것이다. 눈으로는 부지런히 뉴미들을 살피고 사랑해 준다.

하지만 손은 눈의 애정과 함께 움직여서는 안 된다. 물 주는 간격도 날짜나 요일로 정해두지 않았다. 잎이 시들어가듯 아래로 살짝 처지는 느낌이 있을 때 물을 주었다. 그것도 저면관수 방법을 주로 이용했다. 목마른 여름날 차가운 얼음물을 벌컥 들이켜도 부족할 판에 미지근한 물 몇 모금만 허락된 듯한 아쉬움. 평소 물 마시는 걸 아주 즐기는 나로서는 뉴미들에게 미안한 방법이긴 했지만 꾹 참았다.

그동안 우리집을 거쳤던 비운의 식물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새잎이 돋을 때의 감동과 기쁨을 더 누리고자 물을 열심히 주다 그만 폭삭 내려앉게 만들었던 비싼 알로카시아, 돈이 들어온다며 집들이 선물로 인기 있어 우리도 받았던 금전수, 제라늄, 프리지어와 함께 가장 좋아하는 꽃으로 꼽는 수국까지. 내 흑역사 속에 안타깝게 사라져 간 식물들을 애도하는 마음으로 꾹 참았다.



시들어 갈 무렵의 저면관수는 어쩌면 사람들과의 관계와도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애정을 쏟는답시고 너무 과하게 다가가 부담을 주거나 오해를 일으키는 경우를 보게 된다. 사람의 마음이란 모름지기 좋으면 더 자주, 더 가까이하고 싶어지는 법이다. 그래서 쉽게 만나고 말하다가 넘지 않아야 할 선을 넘는 실수를 저지르는 이들이 생기는 것이다.

똥손에게 제라늄은, 마음은 세심하게 보내면서도 과하게 행하지 않는 중용의 사랑을 깨닫게 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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