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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늬 Moon Mar 07. 2024

일희일비, 일희일희, 일비일비

삶의 일부가 잘렸다면

동생의 말은 딱 들어맞았다. 나는 일희일희, 내 남편은 일비일비, 우리 둘 사이에서 태어난 딸은 그 결과답게 일희일비의 캐릭터라는 말 모두 맞았다.



그렇다. 나는 많은 일 앞에서 자주 설렌다. 잘 들뜨며 새로운 일에 쉽게 빠져들고 탄성이 나오는 새로운 시간을 즐긴다. 얼토당토않을지라도 어떤 도전에도 겁 없이 뛰어드는 편이다. 그리고 나서는 결과에 대해 턱없이 긍정회로를 돌리는 편이기도 하다. 가능한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려 애쓰고 그래서 가벼운지도 모른다. 이런 마음의 유형은 특히 나쁜 일이 있을 때 무척 도움이 된다. 그래서 툭 털고 다른 일에 또 가슴 뛸 준비가 된다.  그러나 이렇게 인생은 아름답고 즐거운 것이라 믿는 캐릭터에게 최대 단점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실수다. 쉽게 예상할 수 있듯 덜렁거리거나 허술하며 본의 아닌 건망증으로 아슬아슬한 경우가 흔했다. 나이를 먹으면서도 비슷하여 어른스럽지 못하다고 스스로 느낄 때도 많다. 그래도 나에게는 다행! 이 있어왔다. 다행, 은 언제나 회복을 주고 다음 일을 시작할 수 있게 해주는 약이 되었다. 그러면 인생은 또다시 살 만한 것이 되었다. 내가 일희일희가 된 이유다.



이런 나를 여행 리더로 둔 내 남편은 일비일비다. 해외여행을 갈 때마다 내 여권은 반드시 남편이 챙겨 왔다. 그는 여권에 들어간 사진도 네다섯 장, 복사본도 네다섯 장을 챙긴다. 불미스러운 일에 늘 대비하는 차원이다. 여유롭게 준비되고 갖추어지지 않으면 불안하고 불편한 것이다. 그는, 활동적이고 민첩성이 뒷받침되어야 할 것 같은 직업을 가졌다. 체력이 매우 중요하여 정기적으로 점검 차원의 평가도 받는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남편이 달리는 모습을 딱 한 번 보았다. 연애 3년, 결혼 24년 차인데 이 정도라면 그는 선비임에 틀림없다. 그렇다. 그는 비가 와도 뛰지 않으며, 애초에 그럴 일도 없겠지만 설사 같은 급한 일을 만들지도 않는다. 모든 좋지 않은 일은 미리 대비해야 한다. 충분히! 그것은 어떤 일에 대한 그의 준비 태도다. 부족하다 생각되지 않으면 시작조차 안 한다. 만약 아이들의 학교 운동회에 아빠 달리기가 있었다면 남편이 뛰는 모습을 몇 번쯤은 더 봤을 것이다. 그렇지만 남편이 몸을 충분히 만들 수 있는 운동회의 기회는 오지 않았다.



내 딸은 나의 감탄사와 남편의 걱정을 모두 물려받았다. 매일 뜨고 지는 해에도 감탄하고 사진을 찍는다. 때로는 그림으로 그리며 온 마음으로 날씨며 하늘을 즐긴다. 집안에 있는 온갖 아름다운 것들, 예쁜 것들을 모조리 모아다 자기 방을 꾸민다. 계절마다 딸을 흥분시키는 갖가지 소품들과 원단들은 커튼과 벽지가 되고 테이블이 되곤 한다. 아름다움과 편안함을 추구하여 겉으로 보았을 때는, 굴러가는 가랑잎에도 마냥 깔깔 웃는다는 사춘기 소녀 같기만 하다.

그럼에도 이 세상에는 딸을 걱정시키는 일, 나쁜 일, 분노하게 하는 일들이 넘쳐난다. 온갖 범죄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일상과 자신을 어찌해야 할지 답을 찾지 못한다. 강하지 못한 자신에 대해 한숨 지을 때도 있다. 온도는 높아지고 살아가기는 차가워지는 앞날에 대해 안타까워하기도 한다. 구체적으로 대비할 방법을 생각하기에 벅차 보인다. 이런 일희일비의 딸과 또래의 젊은 친구들, 이들을 보는 가족들이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밝고 아름다운 세상이 되면 좋겠다.



작년 어느 때, 위쪽 커다란 가지가 싹둑 잘려나간 나무를 보며 안타까운 적이 있었다. 색연필이나 크레파스에서의 갈색과는 너무도 달리 검정에 가까웠다. 그리고 몇 달 후 그 끝에서 새롭게 돋은 가지들을 보고 안도했다. 지난 겨울에는 마치 성장을 멈춘 듯 메말라 있는 나무를 보았다. 봄에는 아름답게 꽃 피우고 한여름에 푸르고 싱그러웠던 나무들이다. 지금은 잠들어 있지만 약속한 듯 어느 때가 되면 분명 소생해 왔던 것을 나는 보아왔다. 식물들은 이렇게 다시 살아나는 힘을 가졌다.

나의 마음이 아무리 자주 희열을 느낀다 해도 여기저기 아프면서는 걱정이 생기고 있다. 아무리 걱정이 많았어도 남편과 딸은 어떤 성과로 보상받았다. 그로 인해 웃고 행복했었다. 결국 영원히 기쁜 일만 있지도 않고 나쁜 일만 일어날 수도 없다.

우리 삶의 큰 가지가 싹둑 잘려 나갔더라도 다시 가지를 뻗을 힘이 뿌리에서부터 자라왔다. 지금 인생의 메마른 겨울을 보낼지라도 곧 새싹이 돋고 꽃을 피울 봄이 온다는 것만은 믿어보자. 일희일희해보자. 곧 봄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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