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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늬 Moon Mar 14. 2024

내 딸이 나무가 되기를

유턴하는 이들

내 딸이 네다섯 살 무렵일 때 나중에 무엇이 되고 싶은지 물었다.

"가방!"

사람의 종류가 아니라 무척 당황했었다. 그리고 웃었다. 그런데 그렇게 웃을 때가 좋았다. 사람이 아니었다 해도 가장 좋아하는 것을 말할 수 있는 때여서.

그 후 중고등학교에 다니는 딸에게 가끔 나중에 어떤 직업을 갖고 싶은지 물으면 어떤 대답조차 나오지 않았다. 가방이라 거침없이 외치던 진격의 캐릭터는 사라졌다. 대학생이 된 지금도 딸이 미래와 진로에 대해 이야기할 때면 말소리는 작고, 표정에는 확신이 없다.



주변 인생 선배님들의 자녀 이야기를 듣는다. 대학 졸업을 하고 직장 생활을 하다가 다른 진로에 뜻이 생겨 새로운 대학에 진학하는 경우가 꽤 흔한 일이 되었다. 100세 인생에서 이런 유턴은 대수롭지도 않게 되었고 어쩌면 당연한 수순인 듯 고민하고 방향을 바꾸젊은이들은 가까이에 있다. 그중에는 꿈꾸던 분야의 직업을 가졌는데도 전혀 다른 직종의 일을 위해 방향을 돌리는 이들도 있다.

부모가 방향을 제시해 주고 이끌어주면 그대로 끌려가듯 사는 것이 싫어서 늦게라도 자신이 주체가 되어 개척하는 경우가 있을 것이다. 혹은 정보가 부족하거나 주변 사례의 오류로 인해 예상과는 다른 실제 직업생활에 회의를 느껴서 시선을 돌릴 수도 있다. 그도 아니라면 세상의 잣대에 의해 가치 있다고 생각해서 전력을 다했다가 정말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를 찾으면서 새로운 세계에 허기를 느끼고 꿈을 찾아가는 과정일 수도 있으리라. 어떤 경우이든 고민하고 탐색하고 끊임없이 답을 찾아가는 청춘의 여정이라서 의미가 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의 방황과 길을 잃음에 대한 의미조차 모른 채 지나고 있는 것 같다.

우리의 부모님 세대, 더 선배 세대에서 가정이나 동생의 앞날을 위해 희생하는 청춘이 있었다면 지금의 젊은이들은 출구를 찾고 있는 것 같다. 너무나 많은 길과 지나치게 방대한 정보들은 오히려 판단을 흐리고 혼란을 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주변의 다양한 상황이 제대로 된 내비게이션이 되지 못하는 사이 젊은이들은 갈 길을 몰라 경로를 이탈하게 된다. 방향이나 목적지를 바꾸기도, 유턴하기도 하는 것이다.



지난해 추석 연휴에 차가 심하게 밀려 고속도로 톨게이트를 지날 때 잠시 멈춘 적이 있었다. 그때 창문 밖으로 눈을 의심하게 하는 광경이 보였다. 벚꽃이 몇 송이 보였다. 처음에는 작은 휴지 조각들이 흩어져 나뭇가지에 걸렸나 싶었다. 곧이어 아주 낮은 속도로 차가 움직이자 다른 나뭇가지를 얼른 살펴보았다. 역시 몇 송이 벚꽃이 보였다.

 일이 있고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후 친구와 갈대를 보러 늦가을 나들이가게 되었다. 그런데 다녀오는 길에서 벚꽃을 발견했다. 아파트 주차장에서 철쭉이 핀 것을 발견한 것도 비슷한 즈음이었다. 그리고 나만 그런 경험을 했던 것이 아니었는지 얼마 후에는 방송에서 때 아니게 핀 꽃소식을 다루는 것을 들었다.

지난해 가을, 겨울 꽃을 피운 꽃봉오리들은 다음 해 봄에는 꽃을 피우지 못한다고 전문가가 말했다. 무척 인상 깊었던 만큼 충격적이고 슬펐다. 계절이 뒤바뀐 것이라 생각했고 생태계가 흐트러졌다고 받아들여져서 그리고 뭔가 보아서는 안될 것을 보기라도 한 듯 무서운 생각마저 들었다.



그리고 지금, 대학생이 되고서도 나아가야 할 방향에 확신을 갖지 못하는 딸을 보며 나는 그녀의 인생이 그 벚꽃 나무 같기를 바라고 있다. 어쩌면 어른들은, 혹은 부모는 자식의 인생이 나무의 삶이기를 바라는 것 같다. 새싹을 거쳐 잎이 돋고 꽃이 피고 나면 열매를 맺는 일련의 과정을 거치는 식물들, 그중에서 긴 생명의 나무를 바랄 것이다. 1년생 짧은 생명이 아니라 마치 순리라도 되는 듯 안정된 반복의 길을 살 수 있다면 기꺼이 알려주고 싶을 것이다.

그리하여 자식 인생의 봄에는 자연스럽게 꽃이 피기를, 가을에는 지당하게 열매 맺기를 바랄 것이다. 그러나 내 딸이, 아들이, 그들 젊은이들이 나무라면 지금 온몸으로 흔들리고 있다. 너무 많은 가지를 가지고 있어 바람 잘 날이 없는 나무이다. 그리고 이 젊은 나무의 언덕에는 오늘도 바람이 분다.



머지않아 벚꽃이 가득 피어나고 꽃비가 내릴 이 봄날. 나는 작년에 봤던 벚나무를 떠올렸다. 철에 맞지 않게 가을에 피는 벚꽃. 그리하여 모두들 흐드러지는 봄에는 피지 않고 잠자꽃송이로 살 그 벚나무 같은 젊은 얼굴을 떠올린다. 어딘가 평범하지 않고 누군가는 공감할 수 없을지라도 나는 내 딸이, 내 아들이 한 그루 나무 같은 인생을 살기를 소망한다.

어느 계절에 피우더라도 그 한 송이를 피우기 위해 1년 전체의 과정을 애쓰고, 그 결과가 바로 꽃이라는 전문가의 말처럼 살 수 있기를 바란다. 어느 때라도 좋으니 온 마음으로 고민하고, 언젠가는 온 힘을 다해 꽃을 피우리라 믿어주고 싶다.

철없던 내 젊은 날, 나는 지금보다 훨씬 어리석은 부모였다. 나귀를 데리고 장에 가는 부자의 이야기처럼 나귀를 타고 갈지, 메고 갈지, 나란히 걸으며 갈지 모르고 헤맸다. 물론 그 몸부림이 방법을 몰라서 생긴 것인지조차 모르고 말이다. 

그러나 지금에서야 이 마음을 알아주기를 바라며 부모인 내 마음이 유턴하고 있다. 젊은 날 내 딸과 아들에게 맞다고 강조했던 것들이 맞지 않았을 수도, 너무 많은 사공으로 인해 배를 산으로 보냈을 지도 모름을 고백한다. 언젠가 꽃을 피울, 그래서 시기에 맞지 않게 움을 틔우고 있는 청춘들의 삶이 굳건한 나무가 되기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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