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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늬 Moon Feb 15. 2024

인서울의 봄, 하필 대한민국에서

입시를 치른 젊은이들에게

2월이 다 끝나도록 숨 한 번을 편히 쉬기 힘들다. 친한 언니네 집도, 친구 집도, 우리집도 마찬가지다. 입시가 막바지를 향해 곤두박질치고 있어서다. 하필 여기는 대한민국이고, 하필 수험생 수가 가장 적다고 떠들던 해라서 더 그렇다. 게다가 공공연히 킬러문항을 배제하겠다고 표방해놓은 후의 불수능이었던지라 이 사태가 벌어졌다. 하긴 2월까지 이어지는 이 깊고 낮은 심호흡은 올해 졸업생이나 N수생들만의 일도 아니다. 매년 그래왔다. 좋은 성적임에도 불합격의 쓴맛을 많게는 10번 이상(수시 6회+특수, 산업대학 및 정시 3회) 경험하는 수험생도 있고, 뜻하지 않은 수시 납치(모의고사 성적에 맞춰 수시 지원, 합격했으나 실제 수능에서 상위 등급의 성적을 낸 경우)에 당혹스러운 수험생도 있다. 물론  뜻밖으로, 달콤한 합격의 맛을 만끽하는 수험생도 매년 있어 왔다.



언론에 따르면 이번 2024 대입 지원자 수가 역대급으로 적어서, 대학 입학 정원을 밑돈단다. 그렇다면 대학에 합격한 학생들의 비율은 어느 때보다 높아야 하는 게 맞지 않을까. 비율이나 숫자를 논하자고 이 글을 쓰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지금 입시 커뮤니티는 어느 해보다 들끓는 느낌이다. 대입 관련 업체의 합격 예측 프로그램, 점공(실제 지원자가 공개한 점수의 목록화) 시스템을 통해 본 지망 순위, 합격 순위의 현실은 더욱 놀랍기만 하다. 점공 결과를 분석해 주는 계산기를 개발, 배포한 성지, 성자도 존재할 정도다. 적어도 내가 들락거리며 살펴본 최근 10년 가까운 기간 중 논란거리도, 대입 결과의 이변들도 역시 역대급이다. 올림픽 신기록에서나 쓴 좋은 의미의 '역대급' 어감과는 거리가 멀고 오히려 불편한 마음마저 생긴다.



킬러문항은 아니라고 했으니 '킬러 호소 문항'이라 하자. 아무튼 어려웠다는 평의 난이도 문제들은 수시 전형에서 수능최저를 못 맞추는 학생들을 대거 발생시켰다. 이로써 이례적인 이월 인원은 정시 전형으로 넘어가고 예측이 어려운 경쟁률과 지원 경향을 불러왔다. 특히 의대 광풍, 교권 붕괴와 저출산  사회 현상과 편입학 제도, 문과 침공을 가능케 한 대입 관련 정책 등은 분수령이 되었다. 이들 변화는 그렇지 않아도 선택이 힘든 수험생과 가족들을 혼란에 빠뜨리는 역할로 작용하고 있다. 지원자들이 이쪽으로 치우치고 저쪽으로 쏠리는 양상은 여러 입시 커뮤니티와 O튜브에 여실히 나타났다. 마치 만원 버스에 급브레이크가 걸렸을 때처럼 입시판은 휘청이고 있다.



불수능이라 지원 경향은 안정지향 위주의 촘촘한 점수분포를 보일 것이며 소위 스나이퍼로 불리는 우주 상향 지원도 병행될 것이라 했다. 여기에 인서울과 수도권 쏠림, 의대 정원 확대가 맞물려 등록 포기와 충원(추가 합격으로 보충되는 인원) 율을 예측하기 어렵게 되었다. 정원 확대 발표로 의대 도전 학생이 늘어날 것은 자명하다. 혹, 성적이 의대에 미치지 못하더라도 '의치한약수'라고 불리는 최상위 그룹 어딘가에 합류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로 N수생의 수는 다시  늘어날 것이다. 의치한약수에서 시작되어 성적 분포상으로 아래를 향하는 도미노 현상과 문과 침공의 지그재그 현상은 어쩌면 당연하다. 이 과정에서 극안정 추구와 스나이퍼간, 계열 간 지원자들 복불복 결과 또한 불가피할 것이다. 대입을 단지 운!이라고 치부하여 이런 현상을 바라보기에는 너무나 기형적이다.



누군가는 의대 진학을 위해 내신 성적을 1.0에 맞추었는데 확대된다고 못마땅해하고, 누군가는 지역 인재전형을 위해 이미 특정 지역으로 전학을 마친 사람들을 현자라고 부러워하는 것을 본다. 또 누군가는 역대급 이월 학과에 몰리는 물결이 무서워 12년 희망했던 교직의 꿈을 포기했다. 실 지원자의 점공 결과에 충격과 후회의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한편 누군가는 대이변을 일으킨 빵(빵구, 예측보다 훨씬 낮은) 합격, 폭(폭발, 예측을 뛰어넘는 이상 폭등) 불합격으로 많은 이들에게 퍼 날라지는 샘플이 된다.

우리집에도, 친한 언니네 집에도, 친구 집에도 내신 1.0의 자녀나 의대 준비용 전학을 한 자녀는 없다. 교육대, 사범대를 피했다가 울거나 대이변의 폭과 빵의 아이들도 없다. 그러나 옛날 개그 소재인  '김수한무~'로 시작하는 노래처럼 늘어놓은, 그보다 훨씬 짧게 인서울 대학 서열을 뚝 잘라버린 입시판을 지나온 우리아이들은  있다. 많다. 내가 아는 모든 학생들은 너무나 힘들게 공부해 왔다. 입시 결과가 모두 마무리되지 않은 이 시기에도 다시 내년을 위해 공부하기도 한다. 심지어 N번의 입시를 거쳐 입학하고도 다시 더 높다는 대학을 위해 반수(대학 재학, 휴학 상태에서 다음 해 입시를 준비), 학고반수(휴학 없이 학사경고를 각오한 반수)를 결정하기도 한다.



이렇게 2월은 끝나가고 곧 봄은 올 테지만, 대학들은 벚꽃 피는 순서대로 위기를 맞고 청춘들은 벚꽃 지듯 흩날리는 현실이 마음 아프다. 그들이 하필 입시에 진심인 대한민국의 아들딸이라서 안쓰럽다. 저출산  사회에서 변화가 많은 입시정책과  냄비처럼 들끓는 여론을 이겨내야 하는 것이 안타깝다.

아직 환호하지 못한 어떤 청춘이 여기에 있다. 이 요지경 세상을 슬기롭게 잘 헤쳐나갈 방법을 알려주지 못하고  성인이 되게 하였음에 나는 사과한다. 만원 버스에서 우뚝 서서 지켜주지 못했으면서 이제 와서 이 글은 너희 청춘을 위한 응원이라고 우기며 마음이 많이 아프다. 부디 이 청춘들에게 봄이 오기를 소망한다.


* 이 글은 어떠한 합격자나 정책에 대한 겨냥의 의도가 없으며, 단지 입시를 치른 수험생을 향한 존경과 응원의 마음이 극대화된 2024.2월 중순에 썼음을 밝힙니다.


#입시 #수능 #의대 #수험생 #청춘 #저출산 #여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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