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한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교사 사람, 누군가의 가족

by 다움 달

그렇게 무섭던 '죽을 死선'을 탈 수밖에 없게 한 이유가 있었다. 그때 우리에게 가혹한 현실은 섬 주민들의 억울함이었다. ‘정신적’으로 우리를 피폐하게 만든 원인은 억울함! 때문이라고 나는 결론짓곤 했다.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은 이해할 수 있는 그 마음은 각 기관에 ‘민원 사항’이 되어 돌아오곤 했다. 우리가 사선을 타고 섬에 들어가야 하는 상황은 결국 공무원들이 출근 시간을 맞추지 못하고 지각을 하게 된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그것을 문제 삼아 ‘근무 태만’의 내용으로 민원을 제기하는 것이다.

작은 규모, 적은 인구의 섬이지만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여러 일들은 이루어져야 하므로 섬 안에는 각종 공공기관이 있었다. 여객선 운항과 어선들의 면세유를 담당하는 농협과 수협, 금융, 보험, 택배를 관리하는 우체국은 물론 보건소, 면사무소,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등등 기관도 많았지만 각 기관에 종사하는 인원도 꽤나 많았다. 섬 주민들은 각 기관과 근무자들의 존재 이유가 섬과 주민들이 그곳에 살고 있기 때문이므로 봉사의 역할과 근무 시간에 충실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당연한 논리이고 지극히 맞는 말이었다. 하지만 반대로 각 기관 근무자들은 서운하고 답답한 대목이다. 섬 주민들도, 그 속에서 근무하는 우리도 서로 스스로가 불쌍하고 억울했던 때였다. 민원도 무섭고 사선도 무서운 우리는 그리하여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살아갔다. 냉정한 섬 생활을 견디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어떨 때는 일요일 마지막 배로 섬에 들어가거나 섬 주민들이 파는 식료품을 사기도 하고 회식을 하기도 했다. 비싼 값으로 사선을 탔지만 그래도 그건 괜찮았다. 근무하는 내내, 섬 안에서 내 아이를 맡길 사람을 찾지 못한 것에 비해서는. 그래서 돌이 지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아이와 떨어져 지내야 하는 것에 비해서는.



글을 읽는 젊은 누군가는 육아휴직을 충분히 쓰면 되지 않나? 하는 의문으로 이해조차 어렵겠지만 상황은 이러했다. 첫 발령 시기가 출산 후 한 달도 채 되지 않을 때였기 때문에 나는 곧바로 육아휴직을 신청했다. 하지만 휴직 기간을 원하는 만큼 쓸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앞 이야기만 봐도 열악한 환경의 섬 학교라서 기간제 교사를 구하는 데 어려움이 심했던 것이다.

당시 교감 선생님은 휴직 중인 나에게 정기적으로 전화하셔서 이런저런 상황을 알려주시고 내 상황을 묻기도 하셨는데 기간제 교사 채용에 대한 어려움을 가장 많이 토로하셨다. 휴직 1년을 채우지도 못한 어느 시점에서는 아주 심각하다고 하시며 조기 복귀를 부탁한다고까지 하셨다. 그새 라포가 형성되었는지 결국 그러겠다고 하게 되었다. 사실 발령 직후 육아휴직을 신청하기 위해 딱 한 번 섬에 가보았던 나는 섬에서의 일상이 구체적으로 어떠한지 전혀 짐작하지 못한 채 조기 복귀를 결정하게 된 것이었다. 모든 것을 그때는 몰랐다. 어찌할 수 없이 상황이 그렇게 흘러갔었던 것이,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이 안타깝기만 하다.



복직을 하면 돌이 지난 아이와는 떨어져 있어야 해서 일단 섬 안에서 돌보아 줄 사람을 찾아야 했다. 상당한 시간이 흘러도 어린아이를 돌보는 시간제 일을 맡겠다고 나서는 사람은 없었다. 결국 부모님이 돌보아 주시기로 했다. 혹시 섬 안에서 아이가 갑자기 아프기라도 하면 병원에 급히 갈 수 없다는 문제도 있어서 육지에서 기르는 게 낫다는 판단이었다. 남편은 서울에서 근무하고, 나는 남서쪽 끝 섬에 있고, 아이는 전남의 동쪽에서 자라나고 있었다. 생이별의 삼각지대를 오가며 주말마다 자식과 헤어지는 우리 부부가, 부모님들에게는 마음 아픈 자식이었으니 우리는 모두 아픈 사랑을 했던 때다.

아이는 어리고 남편도 만나기가 어려우니 참 많은 통화로 마음을 대신했다. 한참 말을 하다 보면 응답이 없다. 끊긴 줄 모르고 혼자 말하다 다시 통화를 시도하지만 실패할 때도 많아서 통화를 포기할 때쯤 문자가 날아온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문자라도 정상적으로 오는 게 다행이었다. 어찌 그리 전화는 잘 끊기는지 기지국 정비를 해도 해도 마찬가지였다. 서울과 그 섬은 거리만큼 통화의 감도 멀었다. 견디다 못해 통신사를 바꾸기도 했다. 마찬가지였다. 그 시절 수많은 실험과 시행착오를 거친 끝에 지금의 IT강국 대한민국이 있나 보다.



콜센터에 전화하면 상담원 연결 대기 시간에 이런 멘트가 나온다. 누구나 들어보았으리라.

“지금 통화를 하실 상담원은 누군가의 소중한 가족입니다~”

라는 말과 함께

“사랑합니다. 고객님.”

이라는 응답도 들려온다.

혼자 해결하기 어려운 크고 작은 문제에 닥칠 때 콜센터가 있어서 참 다행이다. 혼자 해결하지 못해 난감한 문제를 들어주고 해결 방법까지 친절하게 안내해 주는 상담사는 상당한 안도감과 고마움을 준다. 누구든 도움을 주는 역할만을 하지도 않고, 받기만 하는 경우도 없다. 서로에게 상담원이 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연결되고 확장된 현대의 사회망에서 우리는 서로에게 맞물려 있는 톱니바퀴인 셈이다. 조화롭고 원활하게 영위되기 위해 ‘가족’과 ‘사랑’의 메시지를 놓치지 않아야겠다.

소중하지만 늘 함께 하고 있어 모른 채 지나친, 표현 못하는 말을 남겨본다. 나의 가족들! 사랑합니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죽을 死, 사선을 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