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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영수 Oct 27. 2022

도파민 중독자 우리가 전쟁영화를 보는 방식


허트 로커: 거대담론과 스펙터클과 중독자와 우리, 멜랑콜리


01 거대담론이 사라진 자리에
“어느 편이든 전차가 있는 곳에서 싸울거야. 그 편이 더 안전하니까. “


서사가 자취를 감춘 시대에 군인은 무얼 위해 싸우는가? 맹목할 종교도 충성을 다짐할 국 가 이데올로기도 없다면 군인은 전장에서 어떤 양상을 보이는가? <허트 로커>가 제시한 답안은 중독이다. 이데올로기가 해체된 전장에서 군인은 중독된다.


이데올로기가 없어진 자리에 중독이 자리한 것은 무척이나 개연성있는데, 그 이유는 이데 올로기가 작동하는 방식이 일종의 중독이기 때문이다. 중독이 무의미한 강박 행동을 통해 사고 회로의 일부를 대체하거나 마비시켜 인지적 부담을 경감시키는 것처럼 이데올로기도 일정 부분 사고 회로의 일부를 대체해 모든 것을 개인이 판단하지 않게 역사적 사실을 절 대적 사실로 둔갑시키는 마술을 부린다. 이 마술이 힘을 잃고 무대에서 내려왔을 때, 개인 은 다시 한번 인지적 부담을 줄이기 위해 중독된다.


아이러니한 것은, 군인이 중독되는 대상이 전장 그 자체라는 것이다. 전장이 개인에게 부 과하는 압박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무언가 반짝거리는 것, 스펙타클에 눈을 가까이 대고 있어야 하는데, 군인에게 가장 반짝거리는 것은 분명히 전장이다. 그렇게 군인은 고통을 주는 대상과 사랑에 빠지는 악순환의 고리에 빠지게 된다. 이런 멜랑콜리적 주체의 섬세 한 슬픔과 전장이라는 험준한 환경의 대비가 서사에 아름다움을 가져온다.


02 멜랑콜리적 주체와 죄책감
영화에서 전쟁의 험난한 환경과 무의미한 시간들에 대처하는 방식은 인물마다 다르다.


먼저 샌본의 방식은 군인다운 절도이다. 그가 영화에서 맡은 역할은 그 자체가 의미를 만 든다기보다는 주인공과 대조되는 모양새로 주인공 제임스를 강조하는 것에 있다. 그는 규범 혹은 행동양식 내지는 프로토콜에 의존하는 주체이며, 행동의 모든 원인을 그곳으로 돌린다. 그러나 그의 행동양식은 아주 작은 오류로도 근본부터 무너질 수 있는데, 영화에 서는 주인공 제임스가 등장하면서 그의 행동양식이 위협받는다. 제임스가 가져오는 위협 은 단순히 임무 실패의 가능성뿐 아니라 그가 준거하고 있는 규범과 규정의 모래성을 통 째로 무너뜨릴 가능성이었고, 그렇기 때문에 그는 제임스와는 타협할 수 없다.


그리고 엘드리지의 방식은 죄책감과 분노이다. 엘드리지는 전 분대장과 군의관을 잃고 죄 책감을 가진다. 무의미한 운명과 재앙의 압박을 내재화하고 그것을 마치 타인의 것인 양 비난하는 엘드리지에게서는 멜랑콜리적 주체의 일부가 엿보인다. 그러나 엘드리지는 곧 외부에서 비난의 희생양을 찾는다. 그는 마지막으로 벌어진 전투에서 자신을 위험에 빠트 린 분대장 제임스에게 격렬하게 분노하며 다행히도 악순환의 굴레에서 빠져나왔다. 그 분 노의 방향이 정당하고 아니냐와는 관련없이, 그는 분노의 에너지를 추진력 삼아 멜랑콜리 의 덫에서 벗어난다.


제임스는 어떠한가. 제임스가 무엇을 잃었는지, 혹은 잃었다고 여기는지. 혹은 그가 어떻게 슬퍼하는지는 알 수가 없다. 그가 해당 부분을 도려냈기 떄문이다. 그는 스펙타클에 눈을 가까이 대고 반짝거리는 그것에 모든 시야를 채울 뿐, 나머지는 그의 관심 밖이다. 그의 분 대원도, 고향의 아내도, 심지어 그 자신의 생사여부도 그에게는 관심 대상이 아니다. 그러 나 그렇기 때문에 그가 세 명의 주인공 가운데 가장 병적인 멜랑콜리적 주체인 것이다. 영 화 속에서는 표현되지 않았을 어떤 상실의 과정을 그는 적절하게 애도하지 못했고, 그 대 가로 그는 감정을 감추고 무감각하게 스펙타클을 바라보는 주체가 된 것이다.


그러나 그가 무엇을 잃었다고 여기는지 간접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부분은 있다. 그것은 그가 본토로 귀국 후 혼란을 겪는 과정이다. 전장에 있을 때는 무엇을 잃었는지, 그 때문에 슬픈게 맞는지 무시해도 좋았다. 그러나 스펙타클에서 벗어나 일상으로 돌아온 제임스는 일상의 모든 것에서 혼란을 느낀다. 그것은 비단 그가 전쟁의 분위기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 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그는 무엇을 잃었는지 어렴풋이 깨달을 수 있었다. 그 는 아들을 보며 깨달았다. 그는 자신을 잃은 것이다. 혹은 그 자신이 존재할 자리를 잃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도 금방 그는 덮어버리고 다시 전장으로 나선다. 그는 상처에 메인 존재인 것이다.



03 우리의 시각


이 영화가 가장 정교하게 고려한 부분은 전장과 샌본의 관계도, 전장과 제임스의 관계도 아닌 전장과 우리의 관계일 것이다. 이 영화의 가장 빛나는 지점은 우리가 전장을 바라보 는 방식이다. 마치 제임스처럼, 우리는 전장을 스펙타클이 아닌 다른 것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 전장의 참상에 압도되기에 우리는 너무 멀리 안락하게 앉아있다. 그러나 그렇기 때 문에, 우리가 전장을 스펙타클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우리는 영화의 가장 비극적인 인물인 제임스와 동화할 수 있다. 제임스 역시 전장을 스펙타클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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