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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영수 Aug 18. 2022

굴과 초콜릿과 오렌지를 감정의 차원에서 연결 짓기

아이 글 유 그림

instagram: @toma.tocrush

굴을 주제로 받아들었을 때, 나는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굴이라니. 굴을 가지고 어떤 이야기를 쓸 수 있을까. 물론 이렇게 쓸 수도 있다. 굴과 관련된 개인적인 경험을 이야기하고 그 이야기를 보편한 것으로 넓혀가는 방식으로 말이다. 그렇지만 이런 경우에는 주제어를 받아 든 후 충분히 몸에서 숙성시키는 과정이 필요하다. 굴이라는 낯선 어휘를 몸속으로 받아들여서 그것이 나의 어딘가와 자연스레 연결되기를 차분하게 기다리는 과정이. 그러나 내게 주어진 시간은 단 일주일이었기에 굴과 나를 잇는 신경망이 자라기를 막연히 기다릴 수만은 없어서 나는 다른 방향으로 선회했다. 그것은 굴과 다른 음식들을 감정의 차원에서 연결 짓는 것이다.

굴과 다른 음식들을 감정의 차원에서 연결 짓는다는 것은 다음과 같다. 음식의 맥락과 감정의 맥락을 각각 상정한 다음, 강제로 음식의 특정한 점들과 감정의 특정한 점들을 연결 짓고 그 두 개가 어떤 식으로 포개지는지 가만히 지켜본 후에, 새롭게 만들어진 장 위에 굴을 얹어 굴이 어디로 미끄러지는지 관찰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우선 대표적인 음식들을 선정할 필요성이 있다. 내가 선정한 음식은 오렌지와 초콜릿이다. 왜 굳이 이 음식들인가?

우선 오렌지는 쌉사레하고 상큼하다. 어디에선가 날아와 잠시 혀에 스치고 곧 휘발하는 오렌지의 감각은 맛보다는 향에 가깝다. 이렇게 한없이 가벼운 오렌지의 향을 나는 일상적이고 가벼운 기쁨과 연관 짓고 싶다. 어디에선가 날아와 나를 잠시 올려주고 곧바로 사라지는 출처불명의 기쁨이나 거리에서 훅 불어오는 향이나 우연히 마주한 미적인 체험 혹은 일상적인 경사나 축복에서는 곧 휘발되는 오렌지의 산뜻한 향이 난다.

반면 초콜릿-쌉싸레한 고급 초콜릿이 아닌 일반적인 판형 초콜릿-은 달고 묵직하다. 아주 조금만 입에 머금어도 강하게 퍼지는 초콜릿의 감각은 향보다는 맛에 가깝다. 그렇기에 초콜릿은 우선 슬픔이라고 명명한 것에 연결 지을 수 있다. 슬픔은 잠깐 불어오는 향보다는 묵직하게 남는 맛에 가깝기 때문이다. 이별 후에 겪는 가슴 통증의 둔탁한 통증을 떠올려 본다면 쉽사리 초콜릿과 슬픔을 연결 지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초콜릿에 잠시 매달아 놓은 이 감정을 자세히 살펴본다면 이를 단순히 슬픔이라고 명명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왜냐하면 사랑과 관련한 기쁨 역시 가슴에 통증을 일으키며 둔탁하게 지나가기 때문이다. 사랑이 유발하는 감정-특히 그것이 에로스적인 것에 가깝다면-은 사람을 고양시키는 일상적인 기쁨보다는 사람을 사로잡는 무차별적인 공격에 가깝다. 덕통사고라는 표현의 거친 어감이 암시하듯이 사랑과 관련한 기쁨은 슬픔과 거의 구분하기 어렵다.

​​

그러나 굴은, 굴은 다소 복잡하다. 왜냐하면 굴은 묵직하고 비리기 때문이다. 굴의 묵직하게 짠맛은 강하게 다가오기에 무시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굴이 짜기만 한 것은 아니다. 굴을 깨무는 순간 바다 향이 강하게 밀려들어온다. 그러니까 굴은 맛과 향이 순차적으로 느껴지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이런 식으로 사랑의 묵직한 맛으로 시작되었지만 가벼운 향으로 끝나는 감정이 있을까?

그것은 질투이다. 정확히는 질투가 움직이는 방식이다. 질투란 사실 질투의 대상과는 거의 관련이 없다. 우리는 늘 질투할 때, 질투의 대상을 잠시 치우고 그 자리에 자신을 대입해본다. 그렇기에 제대로 된 질투란 대상의 자리에 임시적으로 위치한 나에 대한 사랑이다. 물론 그것은 한없이 임시적이기에 임시적인 나는 곧 죽고 나는 묵직한 상실의 고통에 시달리는데, 이를 즉각적으로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은 대상의 흠을 찾아내는 것이다. 대상의 흠을 발견하고 이를 음미하는 과정은 굉장히 휘발성이 높아서 우리는 질책의 말을 쏟아내 놓고는 쏜살같이 잊어버린다. 잠시 덧붙이자면 이 휘발적인 감정은 발화자에게만 휘발적이기 때문에 발화자와 청자 사이에 비대칭적인 고통을 야기한다. 다시 말해 질투가 위험한 것은 질투의 화살깃이 휘발적이고 산뜻하게 만들어져 있는 반면 화살촉은 실제의 단단한 철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굴은, 묵직한 초콜릿을 외면하기 위해 휘발하는 오렌지로 전이하는 과정이다. 그리고 이 굴은 작동기전을 모른 채 종종 발사되고는 하는데, 그것이 가끔 사람에게 치명상을 입히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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