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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영수 Oct 27. 2022

갤로퍼와 역사 선생님

갤로퍼와 역사 선생님

선생님 안녕하세요, 이렇게 10년만에 편지로 연락드리게 되어 감회가 새롭습니다. 잘 지내시는지요? 저는 막 군대를 전역하고 이것 저것 시도해보고 있는 중입니다. 중학교때는 금방 어른이 되어 답답한 교실을 벗어나고 싶었는데, 막상 진짜 어른이 되어보니 막막한 마음에 가끔 교실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드네요.

선생님을 마지막으로 뵌지 10년이 다 되어 가는데, 아직도 이따금씩 선생님의 멋있는 모습이 생각이 납니다. 언제나 자신감 넘치는 발걸음에 복도에 쩌렁거리며 울리는 목소리. 선생님이 저 멀리서 걸어오실 때면 누구나 알아챌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한창 무서울 것 없는 중학교 2학년이었기에 은퇴를 앞두신 여자 선생님을 무서워 할 것이라는 생각을 못했었죠. 하지만 교단에 서서 말하는 선생님의 모습을 보자마자, 우리는 잔뜩 움츠러들었어요. 수업을 마치고 갤로퍼를 타고 유유히 정문을 빠져나가는 선생님의 모습을 볼 때, 우리의 두려움은 존경심으로 손쉽게 바뀌었었죠.

선생님, 선생님은 수업 방식도 카리스마적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선생님의 첫 선전 포고가 아직도 생각이 납니다. 선생님은 첫 수업시간에 교탁 앞에 서서 우리에게 선언했었죠.

    “이게 점수에 들어가요? 같은건 나에게 묻지 말아라” 

그러고는 주위를 둘러보시더니 이어서,

    “그런 걸 묻는 사람은 감점이다”

우리는 잠시 머뭇더리다 곧 고분하게 대답했어요. 선생님이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반 구성원 중 누군가 이것이 수행평가에 포함되는 것인지, 혹은 수업에서 하는 활동인지 여부를 물어보려 하면 주위에서 먼저 제지했었어요. 우리가 얌전한 편이 아니었음에도 선생님의 묘한 카리스마를 거스르기에는 우리의 머리가 충분히 영글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렇지만 선생님, 그럴 필요가 있었나요. 아이들을 휘어잡기 위해서 꼭 그래야만 했을까요. 10년이 지난 이 시점에 문득 그때의 기억이 떠올랐는데, 제가 예전과는 보는 방식이 많이 달라졌다고 느꼈어요.

선생님은 참된 교육에는 점수같이 세속적인 것이 포함되지 않는다고 말하셨지만, 제가 사는 이곳과 지금에서는 평가가 제대로만 이뤄진다면, 평가 기준은 늘 사전에 고지되어요. 선생님, 선생님은 사실 그저 교단이라는 높은 제단에 서서 아래를 바라보는 것이 즐 거웠던 것 아닐까요. 우리는 선생님의 참된 교육에 수행평가 점수와 같은 세속적인 것을 일일이 따지고 드는 것에 죄책감을 느꼈지만, 지금 와서는 그 죄책감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요.

학교에서 이른바 ‘어려운’ 반은 선생님에게 돌아갔던 것 같아요. 선생님이 효과적으로 학생들을 관리했기 때문이겠죠. 그러나 선생님, 학교에서 후진국식 군대의 관리 체계를 쓰면 어쩌나요. 보상과 체벌의 기준을 명확히 밝히지 않는 것, 보상체계가 명확하지 않고 평가자의 의도에 따라 계속 변화하는 것은 피평가자를 굴복시키기 가장 쉬운 방법이죠. 낡고 쓰지 않는 처벌기준을 불쑥 들이대는 것, 보상의 기준이 무엇인지 묻지 말라는 것은 평가자를 이해하려 하지 말라는 신호를 주고, 결과적으로 평가자-피평가자의 강한 권력관계를 형성해요. 마치 빛을 강하게 비추어 위를 쳐다보지 못하게 하는 것처럼, 선생님은 선생님의 지위를 신성화했었어요.

사실 10년이나 지난 지금, 이 기억이 씁쓸한 맛을 남기는 것은 이 선생님이 권력을 남용해서도, 그것이 시대착오적이어서도 아니에요. 그저 우리는 선생님처럼 멋있는 어른은 무엇이든 안다고 믿었고, 그래서 선생님의 독특한 보상체계에도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어요. 그러나 선생님은 사실 선생님이 어떠한 방법을 쓰는지도 모른 체 학생을 통제하기 가장 편리한 방법을 취하고 그것이 참된 교육이라고 스스로를 속이고 있었어요. 모든 것을 아는 체 하고 우리에게 으름장을 주던 어른들, 실상 여러분들도 아는 것이 별로 없었지만 여러분은 모른다고 할 줄을 몰라, 권위의 가림막 뒤편으로 숨었군요. 저는 여러분이 틀릴 수도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었어야 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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