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현대 서울과 우크라이나 전쟁
그곳에서는 폭약이 터지듯이 박수갈채가 울려 퍼졌다.
백화점이 반짝거리고 화려한 것은 별난 일이 아니지만 그 백화점은 유난히 화려했다. 거대하게 올라 아래를 굽어보는 거인의 외관은 빌딩답지 않은 다채로운 색으로 치장되어 있었고, 그의 두 발 사이로 난 육중한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부드러운 공기와 반짝이는 물건들, 중앙에서 떨어지는 폭포가 나를 반겼다. 유리와 대리석, 그리고 그 사이를 잇는 에스컬레이터의 정교한 만듦새는 그곳을 하나의 건물이라기보다는 거대한 보석함, 혹은 보석 그 자체로 생각하게 했다.
백화점에는 빛나는 모든 것이 모였나 싶었다. 부드러운 색의 천, 반짝이는 금속들. 이대로 이 건물이 무너지면 후손들은 이곳을 왕릉으로 알 것이다. 나는 그 사이에 서서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나, 이 정도면 아름다운 세상이라 생각하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러나 자연을 제외하고는, 아름다운 것은 언제나 금방 부스러질 듯 가냘픈 것이다. 자연의 아름다움에 만족하지 못해 인간이 만들어낸 인공적 아름다움은, 겉보기에 무엇보다 단단하지만 실상은 위태롭고 얇은 무엇이다. 내가 이곳을 떠돌고 있었던 이 시간이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이 발발한 시각이었다. 세계의 벽은 그 어느 때보다 얇아져 있었고, 나는 그곳에 서 전쟁이 터지자마자 그 얇은 벽 너머로 총탄과 폭탄의 파열음을 들을 수 있었다.
아름다움은 주제를 가리지 않고 작동한다. 백화점의 아름다움과 마찬가지로 전쟁에서도 아름다움이 작동한다.
아름다움은 언제나 얇고 부스러지기 쉬운, 환영이지만 전쟁에서는 그 환영이 실제로 땅을 뒤집는다. 환영이어야 마땅할 것이, 건물을 부드럽게 찢고, 방 안을 뜨거운 불로 채워, 결국에는 사람을 흔적도 없이 지운다. 버튼을 누른 누군가에게는 그것이 환영이었지만 그 환영에 사라진 자들에게는 그렇지 못했다. 이렇게 묵직한 환영에 땅이 움푹 패이고, 수십 년 동안 그 땅에는 초목이 자라지 못한다.
하얀 공간을 부유하다 문득 백화점을 방문한 이유가 떠올라 3층에 위치한 매장에 들어섰다. 그곳은 백화점의 다른 곳보다 더 밝고, 더 하얗고, 물건은 더 반짝거렸다. 나는 머릿속 장바구니에 담아두었던 매끈한 물건들을 집적거리다 분주한 분위기에 성급하게 골라 카드를 내밀었다. 물건을 담은 봉투조차 하얗고, 매끈했다.
쭈뼛거리며 매장을 나서는 순간, 뜬금없이 박수갈채가 뒤에서 터져 나왔다. 생일을 맞아 물건을 구매하게 된 고객을 축하한다는 외침과 함께 폭약이 터지듯이 박수갈채가 터져 나왔다. 가운데에서 물건을 든 채 부끄러워하는 여자의 귀에는 반짝이고 화려한 귀걸이가 걸려 있었다. 매장의 뒤편에 난 가늘고 긴 유리창으로 불꽃이 터지고 있었다.
이 땅에서 전쟁이 일어났음을 짐작하게 하는 것은 거의 없다. 그러나 길거리를 걷는 여자들은 불안한 폭발의 흔적을 귀에 걸고 다닌다. 우리는 전쟁의 불길한 아름다움에 길들여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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