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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영수 Aug 18. 2022

문학이 기후위기와 상호작용하는법

글을 쓰는 사람들에게는 독특한 버릇이 있다. 구차하고 자질구레한 것들은 모두 생략해버리는 습관이 그것이다. 설상 자질구레한 것이 글의 표면에 등장했다 하더라도 그것은 일상의 부박하고 거친 질감을 의도적으로 활용하려는 것일 뿐, 주제의 방향성과 그다지 관련이 없는 사실들은 대부분 감추어진다. 작가들은 이러한 방식으로 글의 재료를 선별하고, 이를 엮어 글감을 만든다.


부박하고 거친 사실들도 잘 엮으면 훌륭한 재료로서 사용할 수 있지만, 도저히 글감으로 삼을 수 없는 것들이 몇가지 있다. 그것들은 보통 소재의 고유한 색이 지나치게 강하거나, 이해하기 어렵게 복잡해 일반적인 독자에게 소구할 수 없다거나 혹은 그저 매력이 떨어지는 소재들이다. 우리는 이렇게 여러 가지의 불리한 조건을 가지고 있는 소재를 이미 알고 있는데, 그것은 기후위기이다.


기후위기는 지나치게 특유의 색과 향이 강할 뿐 아니라 그 매력에 비해 이해하기가 까다로워 글감으로 삼기 적합하지 않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은 단지 글쓰기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소재의 인기는 대중의 욕구와 접근 가능성의 단순한 논리를 따르기에 기후위기의 인기없음은 사회적으로 보편하다.


그러나 어떤 사실의 의미와 뉘앙스는 시대와 함께 변화한다. 우리가 특정한 사실을 받아들일 때 특유의 색이 지나치게 강하다고 생각되는 이유는 그 재료가 아직 등장한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새로 등장한 사실이라도 시간이 지나면 기존의 지형에 뿌리내리고 때가 탄다. 증기기관을 문학적으로 다루는 사람은 거의 없지만, 증기기관으로 촉발된 근대는 문학의 방향을 결정한다.


기후위기는 이미 심어놓은지 반세기가 넘어가는 오래된 꽃이다. 최근의 급격한 이상기후, 그와 짝지어 발생한 전세계적인 감염병, 그리고 전쟁으로 인한 식량위기의 촉매제가 합쳐져 모두의 머리속에 잠들어 있던 씨앗을 싹틔웠다. 이제 기후위기라는 사실은 전과 같은 방식으로 인식될 수 없다. 무엇보다 가장 극적인 변화는, 작가들이 기후변화를 다루는 방식일 것이다. 지금까지 기후변화는 그 독특한 색채 탓에 사용방식이 극히 제한되어왔다. 가장 원초적인 감정인 공포에 호소하는 방식, 이를테면 재난 영화에서의 극적인 장치로서만 사용되어왔다.


그러나 기후변화가 이렇게 사용될 수 있었던 것은 역설적으로 사람들이 기후변화라는 사실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실과 근접하지만 평행하게 달리는 풍경에 잠시 이입한 후, 다시 현실로 돌아올 때의 낙차를 활용한 단순한 작품들이다. 그러나 이제는 기후변화가 독특하고 국지적인 ‘대상으로서의 소재’가 아닌, 광범위하고 보편적인 ‘배경으로서의 소재’로 변화했다. 이제 작가들은 기후변화를 소재로 하지 않는 작품에서조차 이를 등장시킬 수 있고, 그것이 낯설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기후변화가 예정된 미래이자 정해진 사실, 앞으로의 문학이 자리잡을 시대를 촉발시킬 폼팩터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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