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영수 Oct 27. 2022

정확하다와 효과적이다

내가 좋아하는 단어들


나는 ‘정확하다’와 ‘효과적이다’라는 단어의 소박함을 좋아한다.

그리고 이 단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을 신뢰한다.


​누군가의 입에서 나오는 ‘정확하다’는 말과 '효과적이다'는 말은 그 사람과 대상 사이의 거리를 암시한다.

누군가 '정확하게 들으려 한다'고 말할 때는 그가 무대 바깥에서 미간을 찌푸리고 소음을 주의 깊게 청취하는 모습이 떠오른다. 그 사람은 진정으로 무언가를 ‘정확하게’ 듣는 것이 불가능한 것을 알면서도 정확하게 듣기 위해, 쏟아지는 소음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 한 발짝 물러나서 듣는다. 그는 여러 개의 레이어로 구성된 음들을 하나하나 분리한다.

정확하게 들으려는 사람은 그래서 두 가지 모순된 성향을 가지고 있다. 대상을 깊이 사랑하기에 더 선명하게 이야기를 들으려 하지만 더 정확하게 듣기 위해서는 대상에서 한 발짝 물러서야 한다는 것을 알기에 그는 항상 대상과의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다​


더 크게 얘기를 듣고자 대상에 바로 귀를 밀착하고 껴안고 볼을 맞댈 수 있지만 그렇지 않(으려는 노력보다는 그렇게 하고 싶지 않음에 가깝지만)으려 한다. 그리고 나는 그런 소박함을, 삶에서 무언가를 그렇게 많이 기대하지 않는 태도를 신뢰한다.

그리고 무엇이 ‘효과적이다’고 말하는 사람은 '정확하게' 들으려는 사람과 정반대의 이유로 대상과의 거리를 유지한다. 이 사람은 스스로가 만들어내는 소음이 대상을 방해할 것을 염려하며 최대한 멀리서 말하려 한다. 그는 옳고 그름의 커다란 소음으로 말하기보다는 과학적 의심의 어투를 빌려 그것이 효과적이다, 혹은 효과적이지 않다고 조심스레 얘기한​다.

그는 판단하는 말의 무거움을 알면서도 그것을 내려놓지는 않는 사람이다. 그것을 아예 내려놓는 것은 무질서이자 지적 게으름이라고 생각하면서 어떻게든 사건의 중심으로 계열화의 선을 그리지만 그것이 '옳다'고 느껴지지 않게 조심하면서 긋는다.

역설적이게도 내가 이 사람에게 가장 흥미를 느끼는 부분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판단하려는' 태도이다. 그것이 무겁고 폭력적인 것임을 알면서도 기어코 입 밖에 내뱉으려는 그 말이 내 흥미를 끈다. ​


그러나 앞선 나열에도 불구하고 나와 가장 친밀했던 사람이 모두 그러했던 것은 아니다. 특히 연애에 있어서는 반대에 가깝다.​


연인은 참여하는 사람, 깊이 사랑하거나, 성취하려는 사람이다. 나는 평소에 소박한 사람을 좋아하지만, 연인이 되는 것은 소박함이나 거리감과는 거리가 먼 일인 걸까?

한 발자국만 더 다가가면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고 아무것도 없어 오히려 슬프지만, 나와 상대가 아닌 나와 나만, 끝에는 나만 남지만 어찌 되었든 결국은 다가가게 된다.



이전 06화 애틋하게 아이스크림을 먹는 방법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