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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영수 Oct 27. 2022

애틋하게 아이스크림을 먹는 방법

요즘은 자꾸만 애틋해진다.


이 애틋함이 도대체 무얼 향한 것인지도 모르고, 딱히 알고 싶지도 않아서 그냥 나는 가방을 챙겨서 밖으로 나섰다.

책이 무겁고 날이 더웠다. 날이 더운데 새까만 비둘기가 살을 부비려고 해서 기겁하고 쫓아보냈다. 그 뒤로는 어떤 여자가 무릎을 껴안고 앉아 과일가게 바구니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여자는 가만히 배와 사과를 손으로 골라내었다. 그녀가 다른 손으로 치마를 쓸며 일어나자 신호가 바뀌고 사람들이 길가로 쏟아졌다.

내 하루는 금방 저문다. 자리에 앉으면 몇시간이 훌쩍, 고개를 들면 어느새 창밖이 어두워져 있다. 누가 태엽을 빨리 감고 있기라도 했나, 나는 매번 쫓기는 기분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커피는 심장이 두근거려서 다 남기고 처음 상태 그대로의 컵을 받아 든 점원은 의아해하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나는 민망하게 그 얼굴을 뒤로하고 집으로 향했다.

현관문을 닫았다. 집은 어두웠고, 주방에서는 유리컵이 빛나고 있었다. 아까 아이스크림을 먹고 남은 포장지를 컵에다 넣어두었지. 나는 반짝거리는 포장지가 담긴 컵 앞에 멍청하게 서서 고민했다. 그런데 내가 왜 이 컵을 소중하게 보관했지? 나는 멋쩍은 기분으로 컵을 비웠다.

그러나 내가 만일 마흔 살이라면, 마흔 살의 내가 이 시절의 젊은 나를 떠올린다면 분명 나는 여기로 다시 찾아올 것이다. 나는 다시금 이 어두운 주방에 서서 포장지를 보며 서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때도 나는 어리둥절하게 쳐다볼 것이다. 내가 이 컵을 왜 소중하게 보관했더라. 다만 그것이 반짝인다는 것, 그리고 반짝인다는 이유만으로 영원히 보관할 수는 없어 곧 버려질 것이라는 얄팍한 사실 정도는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늙은 내가 쳐다보는 것은 그 반짝이고 부질없는 껍데기뿐, 그것이 감싸고 있었던 무언가는 이미 녹아 없어져 늙은 나는 그것을 아무리 오래 들여다보아도 알 수가 없어져버릴 것이다.

요즘 내가 자꾸만 답지않게 애틋해지는 것에는 이런 알 수 없는 이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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