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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온경아 Mar 01. 2022

고기 구울 때는 아빠가 아이가 되는 순간

아이들에게 고기를 구워주던 아빠가 갑자기 아이가 되었다. 무슨 일?


  캠핑장에 왔습니다캐러반에서 자는 건 처음이라 아이들은 당연하고 엄마 아빠도 들떴습니다아빠는 도착하자마자 관리실에 가서 작은 일을 보고 캠핑장 주위를 살핍니다. 아이들은 아빠를 따라다니며 옆에서 아는 체를 합니다. 아빠는 주위를 살피고 금방 고기 구울 준비를 합니다.


아빠숯 안 부족해요?”


  고기를 좋아하는 아들은 숯이 부족해서 고기를 다 못 구울까 걱정입니다엄마는 캐러반 안 작은 개수대에서 상추와 깻잎을 씻고 있습니다그걸 본 큰 딸이 캐러반 안으로 고개만 내밀고 도와줄 것 없냐고 묻습니다엄마는 작은 개수대라 둘이 할 수도 없으니 괜찮다고 합니다  밖에서 아빠와 아이들은 고기 구을 준비를 하고엄마는  안에서 밖으로 난 작은 창으로 그 광경을 보면서 그저  웃습니다


   11월이 다가오고 있어서 생각보다 빨리 어두워졌습니다이제 막 고기를 굽기 시작한 아빠는 마음이 급합니다. 아이들은 아빠가 구워준 고기를 먹기 위해 아빠 주위를 맴돌면서 빨리 먹고 싶다고 합니다. 아빠는 고기가 익었는지 잘 보이지 않아 랜턴을 달아봅니다. 어디에 달아도 주위가 환하지 않으니 고기가 잘 익었는지 잘 볼수 있는 위치에  랜턴을 달아놓고 고기를 굽습니다.  주위는 깜깜해 지지만  시끌시끌합니다. 고기가 구워지는 소리와 아이들의 겹치는 말소리가 어우러져 주위의 소리를 다 잡아버린 듯 합니다.


  아이들이 익은 고기를 먹기 시작했지만 아빠는 아직도 고기를 굽고 있습니다엄마는 이제 막 고기를 하나 싸서 입에 넣었습니다고기가 혹시 익지 않은 걸 내 놓을까 봐 아빠가 들고 있는 집게 끝을 계속 쳐다봅니다아이들이 위험하지 않은지도 계속 살핍니다가만히 앉아서 고기를 먹으면 좋으련만 아빠 옆에서 알짱댑니다고기가 많아지자 아이들은 번갈아 가며 상추에 고기 넣고매운 고추도 넣고 마늘도 넣으면서 아빠의 입에 가져다줍니다아빠 매워요안 매워요계속 물어보면서요고추를 한 개 넣었다가 마늘을 더 넣었다가 합니다아빠는 맵다고 하면서도 잘 받아먹습니다. 아이들은 아빠가 좋아하는 마늘을 고기 굽는 곳에 부어줍니다. 


  아빠는 아이들이 고기에 별로 관심이 없을 때까지 계속 고기를 굽습니다. 이런 구운 고기를 좋아하는 아빠이지만 아이들과 먹을 때는 잘 먹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다 먹고 접시에 놓인 고기로 놓인 젓가락의 횟수가 적어지면 이제 남은 고기들은 엄마와 아빠의 몫이 됩니다. 고기 굽는 소리도 잦아듭니다. 엄마는 이렇게 아이들에게 자상인 남편이 참 든든하고 좋습니다.


  밥을 먹고 엄마는 설거지를 하러 들어가고 아이들과 아빠는 고기 구웠던 장소를 정리합니다캄캄해서 잘 보이지 않지만 물티슈로 식탁도 닦고 주위 정리를 깨끗하게 합니다. 정리가 다 되니 아빠는 가족들을 데리고 근처 바다와 상가들이 붐비는 장소를 같이 걷습니다. 걷는 동안 아이들은 사진도 찍고 장난도 치며 걷습니다. 그 모습을 조금 떨어진 곳에서 바라보는 아빠는 아이들이 혹시 위험하지는 않은지 계속 살핍니다. 조금 후 다른 집 아이들이 쏘아올린 폭죽소리와 함께 바다 위 하늘이 번쩍거립니다. 그 모습은 또 작은 이야기거리가 됩니다.  조금 더 밤이 깊이지고 추위지자 아빠는  아이들을 이끌고 캐러반으로 들어옵니다.

 

  캐러반으로 돌아온 아이들은 요즘 유행하는 노래를 부릅니다.  엄마가 옆 캐러반이 멀지 않으니 조용히 부르라고 합니다그러면서조금 후에 상자 하나를 들고 나옵니다. '우봉고' 보드게임입니다요즘 엄마는 보드게임을 배우면서 사는 게 취미입니다 게임을 하자고 하니 아빠는 안한다고 합니다아이들과 엄마는 그건 안 된다고 합니다도망갈 데도 없이 아이들 틈에 아빠가 끼워져 있습니다이 게임은 퍼즐 맞추기 게임이라 아빠한테 불리할 것 같긴 합니다하지만 아빠도 해 보기로 합니다.

 

  엄마가 설명을 하고 아이들도 그 옆에서 추가 설명을 합니다별것 아닙니다퍼즐판을 가져가 자신의 앞에 둡니다누군가 주사위를 굴리고 무슨 모양인지 말해주면 그 모양 아래에 있는 타일들을 가져와 자신 앞에 있는 보드판 도형에 맞게 놓습니다다 맞추면 우봉고!”라고 외치면 됩니다


  우선 아빠를 위해 연습판을 합니다. 판을 한개씩 가져가고 주사위를 굴립니다. 각자 블록을 가져가서 도형을 맞춥니다.  아이들이 먼저 우봉고라고 외칩니다아빠도 열심히 블록을 이리저리 움직여 도형을 맞춥니다. 


맞췄다! 맞췄다!"

아빠가 소리를 지릅니다.

"우봉고!라고 해야 해요!"
큰 딸이 아빠 앞에서 두 손을 올리면 시범을 보여줍니다.

아빠가 웃으며 우봉고!라고 외칩니다.


   아빠는 가장 나중에 맞췄음에도  신납니다. 몇 번을 더 해보니 아빠도 자신감이 생겼는지 아빠의 우봉고! 소리가 우렁찹니다.   연습은 끝나고 이제 게임이 시작하기로 합니다. 블록 3개로 만드는 쉬운 판으로 게임을 시작합니다. 모래시계도 등장합니다. 모래가 다 떨어지기 전까지 도형을 맞춰야 합니다. 아이들도 시끄럽지만 아빠가 제일 시끄럽습니다안하겠다고 했는데 목소리는 제일 큽니다그러다가봉사 문고리 잡았습니다세상에 한 번에 맞춰버린 아빠.


맞췄어맞췄어우봉고! 우봉고! 우봉고!


  세상이 떠나갈 듯이 우봉고라고 몇 번을 외칩니다. 그 모습을 보는 엄마는 크게 웃고 맙니다. 저렇게 좋아할거면서 안하려고 했다고 핀잔도 합니다. 다음부터는 아빠도 가장 먼저 맞추는 게 많아집니다.  아빠 얼굴에 자신감이 가득합니다. 아들과 바둑을 둘때도 전력을 다해 하는 아빠라 이번 게임에도 진심입니다. 아이들이 아빠가 가장 먼저 하는 횟수가 많아지가 아빠는 4개짜리 맞추라고 합니다. 아빠는 그러는게 어디있냐고 기어이 3개 블록을 사용해서 게임을 합니다. 결국 게임이 끝났고 가장 시끄러웠던 아빠가 한 번 더 하자고 합니다엄마가 너무 시끄러워서 다른 사람들에게 민폐라고 다른 게임을 하자고 합니다.


  이번에는 카드 게임입니다이 게임은 누군가가 이야기꾼이 되어 자신의 카드를 내면서 어떤 말을 합니다그런 다른 사람들은 그 말과 가장 비슷한 카드를 내서 다른 사람들이 이야기꾼의 카드를 못 찾게 막습니다그러니자신의 카드를 보여주면 안 됩니다아빠는 누가 보기라도 하는 듯 손에 든 카드를 가슴으로 가져가 보이지 않도록 감춥니다. 이렇게 매번 온 몸으로 카드를 막습니다


내 것 봤지보지마보지마.”


  엄마는 아이들을 데리고 게임을 하면서  더 아이 같은 아빠의 모습에 기가 막혀 쳐다봅니다. 그러다가 지금은 가장이 아닌 그저 한 아이일 뿐인 남편을 쳐다봅니다. 잠깐이나마 가장으로서의 위치를 잊고 놀고 있는 한 사람을 봅니다. 그 사람의 얼굴은 아이처럼 밝고 환합니다딸들과 아들과 싸우면서 게임을 합니다. 엄마는 그런 남편의 모습도 좋아하기로 합니다


  캠핑장의 밤은 깊어갑니다돌아가면서 이야기꾼이 된 가족들의 이야기도 깊어갑니다아마 아빠도 내일은 늦잠을 잘 것 같습니다어쩌면 어린 시절도 돌아간 꿈을 꿀 지도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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