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데라토 칸타빌레

by 김오 작가

모데라토 칸타빌레

마르그리트 뒤라스

정희경 옮김


‘보통 빠르기로 노래하듯이’를 뜻하는 모데라토 칸타빌레


왜 이 책을 샀는지, 그날 왜 이 책을 집어 들어 넘겼는지, 모르고 중요하지 않다.

이 책을 읽기 전과 후의 내가 있을 뿐이다.

사랑에 대한 갈구, 현실을 이중으로 만들게 하는 욕망.

'당신을 사랑해서 죽였고, 나도 곧 옆에 눕겠다'라는 순수한 들뜬 열망.

돈, 명예, 그런 거 생각하지 않고 나도 그곳의 한 자락을 느끼고 싶다.


나는 그것을 대리 취한다.

여전히 나는 여기에 있다.


현실적인 대사 속에서 왜 그리도 몽환적인지,

어느 것 하나 내 것인 게 없어서일까.

번외로 피아노 레슨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소설은 아들의 피아노 레슨을 받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선생님의 말을 듣지 않고, 고집스럽게 버티고 있는 아이. 아이의 엄마는 누구와 이야기하는지 알 수 없는 대화를 하다, 창문 너머 찬란한 죽음을 본다. 자연스럽게 내 아이의 피아노 생각으로 흘러간다.
코로나로 학원에 보내는 것이 주저되어, 등록을 미루기를 1년 여, 레슨을 받기로 했다. 주 2회. 어린이집에서 특별활동으로 몇 번했는데 피아노를 제법 잘 친다. 아이는 어떤 선생님을 만나느냐에 따라 성장 속도가 달라진다. 그리고 줄 곧 좋은 선생님을 만나, 한번 가르치면 열을 안다는 것이 무엇인지 여실이 보여주었다. 그런데 이번 선생님은 다르다. 갈수록 아이가 하기 싫어하고 급기야 레슨 시간에 화장실 가는 것을 방패 삼아 시간을 보내기를 지속하고 있다. 언제부터였는지 모르게 선생님이 와도 반기는 법이 없고, 피아노방에 가지 않으려고 한다. 그렇게 반년 넘게 흘러가고 나니, 이건 아니다 싶다. 왜 나는 지금의 아이를 보지 않고, 이전에 줄곧 잘해왔다는 과거만 기다리고 있었을까 싶다.
나는 일곱 살부터 열세 살까지 주 5일 열심히 피아노 학원을 다녔다. 마흔이 되고 보니 학원에 다니는 것이 좋다고 믿었는데, 이리 글을 쓰고 보니, 성실한 녀석이라 열심히 다녔지만, 실상은 다니기 싫었던 어린 '나'가 나를 쳐다보고 있다. 선생은 인격이 덜 되어, 내 손이 축축하다며 모진 말을 연이어하거나 자로 손가락을 때리기도 했으며, 비웃음을 날리기도 했다. 나는 악보를 보고 치는 기계적인 일을 제법 잘했다. 학원은 그것만 시켰고, 버티는 동안 내 손에서는 땀이 가득 찼다.
내 선택이 아이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지금, 오히려 미궁 속에서 헤매고 있는 것 같다. 다음 주면 피아노 학원에 가기로 했다. 선생을 바꾸는 것 하나. 이 하나가 얼마나 큰 변화를 가져올까. 나는 무엇을 바라는 것일까.


번외로 피아노 레슨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소설은 아들의 피아노 레슨을 받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선생님의 말을 듣지 않고, 고집스럽게 버티고 있는 아이. 아이의 엄마는 누구와 이야기하는지 알 수 없는 대화를 하다, 창문 너머 찬란한 죽음을 본다. 자연스럽게 내 아이의 피아노 생각으로 흘러간다.


코로나로 학원에 보내는 것이 주저되어, 등록을 미루기를 1년 여, 레슨을 받기로 했다. 주 2회. 어린이집에서 특별활동으로 몇 번했는데 피아노를 제법 잘 친다. 아이는 어떤 선생님을 만나느냐에 따라 성장 속도가 달라진다. 그리고 줄 곧 좋은 선생님을 만나, 한번 가르치면 열을 안다는 것이 무엇인지 여실이 보여주었다. 그런데 이번 선생님은 다르다. 갈수록 아이가 하기 싫어하고 급기야 레슨 시간에 화장실 가는 것을 방패 삼아 시간을 보내기를 지속하고 있다. 언제부터였는지 모르게 선생님이 와도 반기는 법이 없고, 피아노방에 가지 않으려고 한다. 그렇게 반년 넘게 흘러가고 나니, 이건 아니다 싶다. 왜 나는 지금의 아이를 보지 않고, 이전에 줄곧 잘해왔다는 과거만 기다리고 있었을까 싶다.


나는 일곱 살부터 열세 살까지 주 5일 열심히 피아노 학원을 다녔다. 마흔이 되고 보니 학원에 다니는 것이 좋다고 믿었는데, 이리 글을 쓰고 보니, 성실한 녀석이라 열심히 다녔지만, 실상은 다니기 싫었던 어린 '나'가 나를 쳐다보고 있다. 선생은 인격이 덜 되어, 내 손이 축축하다며 모진 말을 연이어하거나 자로 손가락을 때리기도 했으며, 비웃음을 날리기도 했다. 나는 악보를 보고 치는 기계적인 일을 제법 잘했다. 학원은 그것만 시켰고, 버티는 동안 내 손에서는 땀이 가득 찼다.


내 선택이 아이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지금, 오히려 미궁 속에서 헤매고 있는 것 같다. 다음 주면 피아노 학원에 가기로 했다. 선생을 바꾸는 것 하나. 이 하나가 얼마나 큰 변화를 가져올까. 나는 무엇을 바라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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