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주로 색연필이나 사인펜으로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렸다. 물감을 사용해서 그림을 그린 지는 오래되었다. 이유는 단순하다. 귀찮았기 때문이다. 물통에 물을 뜨고, 붓의 물기를 조절할 수건을 펼치고, 팔레트에 물감을 짜는 그 모든 일들이 수고로웠다. 화실에 들어가니, 수채화 그리기에 필요한 모든 물품들이 완벽하게 준비되어 있었다. 물통에 가득 담긴 채 찰랑이는 물. 얇은 붓부터 굵은 붓까지, 옹기종기 모인 매끈한 자태의 붓들. 먼지 한 톨조차 묻지 않은 새하얀 팔레트. 깔끔하게 정렬된 오색물감들. 오랜만에 심장이 콩닥콩닥 뛰었다. 도화지를 예쁜 색으로 물들이고 싶다는 의욕이 마구 샘솟았다.
모든 게 완벽했다. 하나만 빼고. 내가 색칠하고 싶어하는 파스텔톤 색은 ‘기본 옵션’이 아니었다. 그 색깔만큼은 내가 직접 만들어야 했다. 다행히 그림제작소를 운영하시는 분께서 색의 기본조차 까먹은 나 같은 사람들을 위해 조색표를 제공해주셨다.
빨간색과 흰색을 2대 3의 비로 섞어야 진분홍색이 나오고, 빨간색, 파란색, 흰색을 1대 2대 7의 비로 섞어야 연보라색이 나온다. 밑그림과 색칠만으로도 빠듯한 시간을 배색 실패로 낭비해서는 안됐다. 필요한 물감을 신중히 골랐고, 물감을 조심스레 짜냈고, 붓으로 물감을 휙휙 섞었다. 서로 다른 색이 어우러졌고, 곧이어 새로운 색이 선명히 나타났다. 내가 원했던 결과물이 한 치의 어긋남도 없이 정확하게 나왔을 때 느껴지는 행복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사람도 아닌 색깔이 내게는 자식처럼 기특하다. 부족해지면 또 새로 만들면 된다는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줄어가는 양에 괜스레 아쉬움을 느꼈다. 내가 만들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색을 애지중지했다.
불현듯 살면서 마주한 수많은 색들을 마땅히 대우해주지 않은 내가 부끄러워졌다. ‘충격적인데. 저런 색깔 옷은 도대체 누가 입어?’ ‘저런 색깔의 아이템 갖고 싶다. 너무 예쁘고 세련됐다.’ 나는 색들 간 우열을 가리기 바빴다. 하지만 실은 내가 비웃었던 색부터 내가 칭찬했던 색까지, 우리 근처의 모든 색은 전부 ‘누군가’의 안목과 감각, 그리고 공들임으로 창작된 결과물이다. 다양한 색을 대하는 태도에 있어서 만큼은 내가 박애주의자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에 수백 번은 만지작거리는 핸드폰의 연분홍색. 일주일에 다섯 번은 족히 타는 9호선의 금색, 아무데나 시선을 던져도 보이는 학교의 크림슨색. 돌이켜보면 색이 내 일상의 대부분을 채운다. 색에 관해서는 박애주의자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색을 당연히 여기지 않고, 특정 색을 물리고 평범한 색으로 단정짓지 말아야 하겠다. 내가 직접 만든 색을 특별하게 여기고 소중히 아꼈듯이.
그림을 그릴 때 바보같은 실수를 종종한다. 때로는 재수없이 불운이 닥쳐오기도 한다. 초록색을 칠해야하는 영역에 분홍색을 칠해버리고 말았다. 파란색을 칠했지만 묽었던 탓에 물감이 도화지 바닥까지 주르륵 흘러내리고 말았다. ‘망했다. 어떻게 수습하지’ 붓을 든 손이 애처롭게 허공을 헤매었다.
제빨리 체념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괜히 어설프게 실수를 만회하려고 휴지로 물감을 걷어내거나, 새로운 색을 덧칠해서는 안된다. 여드름을 쥐어뜯었을 때 피부에 흉터가 패이듯이, 그림에 흉측하고 지저분한 얼룩이 생기고 만다. 물감이 굳고, 도화지가 마를 때까지 꾹 참아야 한다. ‘지금은 아직 모든 게 축축한 상태야. 건조해져야 뭐라도 시도할 수 있어.’ 조급해지려는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 여태껏 그림 그리기에 열중하느라 차갑게 외면했던 음료수를 들이켰다. 친구가 오일파스텔로 밑그림에 숨결을 불어넣는 모습을 감탄하며 쳐다보기도 했다.
시간은 흘렀고 종이가 빳빳해졌다. 나는 제빨리 분홍색 위에 물기 없이 쫀쫀한 초록색을 발랐다. 초록색이 분홍색보다 더 진했기에 분홍색을 얼추 감출 수 있었다. 짙은 파랑에서 연한 파랑으로 그라데이션을 넣어 칠하면서 파란색이 흘러내린 자국을 덮었다. 실력과 재능 모두 모자란 아마추어 화가가 얄량한 눈속임 작전을 펼쳤을 뿐이었지만, 이상하게 뿌듯했다. 한때 최악이었던 내 작품과, 현재 그나마 최악은 면한 내 작품을 비교해 보니 ‘내가 이 정도로는 무너지지 않아’하는 자신감이 생겼기 때문이다. 실수와 불운에 의연해지는 법을 알려준 그림그리기가 새삼 고마워지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