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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화 Nov 16. 2023

한국인 도우미 활동으로 내가 배운 점

지원 당시 활동 소개글

한국인 도우미 1명과 외국인 학생 2명이 함께 매칭된다.

외국인 학생과 한국어를 연습한다.

외국인 학생에게 한국의 문화를 소개한다.

외국인 학생이 낯선 환경에 적응하도록 돕는다.

한국인 도우미는 도우미 일지를 작성해서 제출한다.

외국인 학생은 자필로 소감문을 작성하여 활동 종료 후 서면 제출한다.


첫 번째. 우리말, 즉 ‘국어’를 다시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어 도우미는 내가 외국인 학생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활동이 아니다. 오히려, 내가 외국인 학생들과 함께 한국어를 연습하는 활동이다. 외국인 학생들은 주로 특정한 상황에서(친구와 인사를 나눌 때, 식당에서 음식을 주문해야 할 때, 자신을 소개해야 할 때, 감정을 표현해야 할 때) 한국어로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를, 그리고 특정한 영어 단어와 표현이 한국어로는 무엇인지를 내게 물어봤다. 내가 상상했던 나의 모습은 외국인 학생의 질문에 막힘없이 답하는 친절한 선생님이었다. 이상과 현실 사이에는 괴리가 큰 법. 실제로 나는 질문에 답할 때까지 한참을 고민하고 주저했고, 답을 하면서도 확신이 부족한 탓에 자주 버벅거렸다. ‘나는 주로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말했더라.’하며 내 한국어 말하기를 점검해야 했고, ‘내가 사용한 말이 과연 한국어 규범에 맞을까/ 담화 예절에 부합할까’ ‘올바른 표현이 무엇일까’하며 한국어에 관한 정확한 지식을 찾아야 했기 때문이었다. 한국인으로서 평생 동안 한국어를 사용해왔는데도 나는 한국어를 잘 모르는 사람이었다. 한국어의 정확한 의미와 쓰임을 다시 공부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두 번째. 언어를 통해 문화를 알려줘야 함을 깨달았다.

한국 명절인 설날이 다가오는 날 외국인 학생들과 함께 만났다. 외국인 학생들은 내게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에 해당되는 영어 표현이 무엇인가요? ‘복이 무슨 뜻인가요?’하며 질문했다. 질문의 답으로 ‘happy new year’를 말해주었으나, 아쉬운 느낌이 들었다.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절하며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인사를 드리고, 할머니 할아버지가 ‘그래 새해 복 많이 받아라. 올해도 건강하고, 하는 일 잘 풀리고 행복하기를 바란다’하고 말씀하시면서 새뱃돈을 건네주실 때의 따스함과 정겨움이 ‘happy new year’에는 전혀 묻어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복’이라는 단어를 설명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나조차도 복이 무슨 뜻인지 정확히 몰랐기 때문이다. 양해를 구하고 네이버 국어사전에 급하게 ‘복’이라는 단어를 검색했다. ‘삶에서 누리는 좋고 만족할 만한 행운’이라는 설명이 떴다. 행운, 하지만 친구들에게 복을 ‘luck’이나 ‘fortune’으로 설명하기에는 뭔가 허전했다. (‘정’을 영어로 ‘caring’ ‘love’로 설명해야 하는 상황이 생겼다면 나 역시 분명 난감했을 것이다)

특정 한국어에 담긴 정서와, 특정 한국어가 쓰이는 맥락이 다른 문화권에서 존재하지 않을 때가 있다. 한 언어를 다른 언어로 표현하려면 공백이 생기고 만다는 사실을 한국어 도우미 활동을 하면서 절실히 깨달았다. 외국인에게 한국어의 의미를 온전히 이해시키기 위해서는, 한국어 설명에 그치지 않고 한국 ‘문화’까지 충분히 설명해야 함을 깨달았다. 언어가 사용되는 문화적 맥락에 대한 설명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외국인에게 한국어만의 매력과 특징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다. 공백을 채우기 위해, 한국인으로서 한국 문화에 관심을 더 기울여야 되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다.


세 번째. 상대에게 무언가를 알려주어야 하는 상황에서, 내가 알려주고 싶은 것과 상대가 알고 싶어하는 것 사이에 적절한 균형을 맞추어야 함을 깨달았다.

처음에 나는 외국인 학생들에게 마치 국어 교사처럼 ‘정석적’으로 한국어를 알려주려고 했었다. 내가 외국인 학생들에게 무엇을 알려주고 싶은지에만 골몰한 채, 정작 외국인 학생들이 나와의 만남을 통해 무엇을 배우고 싶어하는지를 중요하게 고려하지 못했었다. 그들은 딱딱하지 않은 분위기에서 활동하기를 원했고, 실제 한국인이랑 의사소통할 때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생활 한국어 표현’을 알고 싶어했다. 외국인 학생의 목소리를 들어보지 않은 상태에서 독단적으로 한국어 도우미 활동 계획을 짰던 나 자신을 무척 반성하게 되었다.

외국인 학생이 배우고 싶어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두고 다시 한국어 도우미 활동의 방향성을 수립했다. 만나기 전 사전에 카톡으로 외국인 학생들에게 이번주 모임에서는 어떤 한국어 표현과 단어를 배우고 싶은지를 물었다. 답을 토대로 외국인 학생들의 궁금증을 해결할 수 있는 내용을 찾아보고 공부해갔다. 모임에서는 준비한 내용을 외국인 학생들에게 설명해주었고, 외국인 학생들의 추가적인 질문에 답했다. 그 다음에는 외국인 학생들이 한국 생활을 하면서 많이 마주할 담화 상황을 설정했고, 외국인 학생들과 묻고 답하기의 방식으로 특정 상황에서의 한국어 말하기를 연습했다. 수업이 끝나기 전에는 좋아하는 한국 아이돌, 한국 음식, 한국 드라마 등 다양한 주제로 이야기를 즐겁게 나누면서, 외국인 학생들에게 한국의 문화를 소개하고, 한국의 문화에 대한 서로 다른 생각을 공유하는 시간을 가졌다.


네 번째. 욕심이 지나친 내 성격을 반성하게 되었다.

외국인 학생이 ‘한국어로 날씨를 표현하는 방법이 궁금하다고 질문했었다. 날씨가 덥다, 날씨가 춥다, 날씨가 좋다, 날씨가 나쁘다 등 가장 기본적인 표현을 가르쳐주었다. 외국인 학생이 가르쳐준 표현을 잘 구사하는 모습을 보니 더 다양한 표현들을 알려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날씨가 따뜻하다. 날씨가 화창하다, 날씨가 시원하다, 날씨가 쌀쌀하다 등의 표현을 외국인 학생들에게 더 알려주었다. 외국인 학생들이 힘들어하자 나는 내 방식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더 많이 알려주고 싶다는 욕심에 빠져서 그만 외국인 학생들의 한국어 학습 수준을 간과하고 말았던 것이었다. 내가 담당한 외국인 학생들은 한국어 초급반에 다니고 있었다. 아직 한국어에 많이 서투른 학생들에게 나는 ‘화창’과 같은 어려운 한자 단어와, ‘쌀쌀’과 같이 발음하기 힘든 된소리가 들어간 단어들을 가르쳤으니, 당연히 외국인 학생들은 내 과욕에 버거워하고 부담스러워할 수 밖에 없었다. ‘외국인 학생들의 표현력이 풍부해지도록 돕고 싶다’ 나로서는 선의의 행동이었으나, 상대를 충분히 배려하지 않은 채 행해진 ‘선의’는 실은 상대에게 도움이 아닌 부담과 불편을 초래할 뿐이다. 내가 담당한 학생들에게 중요한 것은 학습의 양이 아니라 학습의 질이었다. 그들에게 그들에게 알맞은 학습법은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중요한 표현 위주로 가르치고, 그 표현을 확실히 사용할 수 있도록 여러번 반복해서 연습하는 방법이었다.  욕심을 줄이고, 그 대신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을 키워야 함을 깨달았다. 그럼으로써 상대에게 가장 필요하고 적절한 도움을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네 번째. 진심을 담아 소통하는 방법을 배웠고, 친화력을 기르게 되었다.

외국인 학생들이 한국어를 조금이라도 더 즐겁게 배우길 바라는 마음에서 이모티콘과 사진을 보여주거나 때로는 내가 직접 그림을 그려가면서 한국어 표현을 알려줬다. 외국인 학생들과 친해지기 위해 수업 시작 전과 수업 중간 쉬는 시간에 영어로 근황과 일상을 나누었다. 수업 끝난 후에는 모임을 기념하는 인증사진을 꼬박꼬박 찍었고, 버스 정류장과 지하철 정거장까지 외국인 학생들을 배웅해주었다. 서류 발급이나 카드 신청 등 수업 외적으로 외국인 학생들이 도움을 요청했을 때 함께 가서 한국어 통역을 해주었다. 외국인 학생들과 대화하면서 내가 가장 많이 사용했던 표현이 ‘고마워요’였다. 외국인 학생들은 모임에서 내가 가르친 한국어를 꼼꼼히 복습해오고, 수업 시간에 내가 알려주는 내용을 열심히 필기하고, 활동 소감을 자필로 종이에 빼곡히 적으면서 활동에 진심을 다해 적극적으로 임해주었다. 너무 고마운 순간이 많았기에 활동 기간 내내 외국인 학생들에게 마음에 보답하려고 애썼다. 나는 외국인 학생들의 열정적인 태도를 원동력 삼아 더욱 활동에 최선을 다했고, 유익한 정보와 재밌는 경험을 제공하려고 노력했다. 한국어 도우미 활동 맨 마지막 시간에 외국인 학생들에게 한국어 손편지를 선물해주고, 편지에 쓴 내용을 영어로 설명해준 다음 나중에 한국어에 능숙해지면 직접 편지를 읽어보라고 수줍게 부탁했던 기억은 여전히 소중한 추억으로 남아 있다. 서로 긍정적인 영향과 따뜻한 마음을 주고받는 관계를 형성하고 유지하는 방법을 한국어 도우미 활동을 통해 깨우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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