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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화 Sep 22. 2023

내 젊음은 오래 거기 남아있기를

윤동주 시인의 시 '사랑스런 추억'에는 유명한 구절이 실려 있다.

'아아 젊음은 오래 거기 남아 있거라'


시를 읽다 보면 특정 시행이 마음에 콱 박힌다. 나는 이 시행을 읽고 한참 동안 다음 페이지를 넘기지 못했다. '젊음'은 모두에게 사랑받는 아름다운 단어다. 사람을 멈춰 세우게 하는 힘을 지닌다. 시행을 곱씹다보니 내 젊음에 관한 질문을 나에게 던지게 싶어졌다. 나의 젊음은, 어디에 있는가. 나는 내 젊음이 어디에 남아 있기를 바라는가.


나는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 낡바랜 과거의 시간 속 희미하게 반짝이던 기억 하나를 끄집어냈다. 2021년 11월, 대학교 면접을 보러가는 날이었다. 수능 전에 면접을 보는 수시 전형이었다. 대략 수능 일주일 전쯤이었다. 재수학원을 진전했던 나는 틀에 박힌 루틴을 기계처럼 칼같이 지키면서 살아갔다.


나의 루틴은 대략 이러했다. 아침 6시 40분에 눈을 뜨고 오늘도 또 끔찍한 하루가 시작한다는 사실에 절망한다. 아침밥을 악착같이 우겨넣으며 하루를 버틸 에너지를 몸에 비축한다. 7시 10분에 버스를 타고 버스에 타고내리는 고등학생들과 직장인들을 구경한다. 아침 7시 반에 재수학원에 도착하면, 저녁 10시까지 단 한 마디도 입 밖에 꺼내지 않고, 단 하나의 눈짓도 주위에 던지지 않은 채 수능 공부에 매진한다. 저녁 10시 10분에 기진맥진한 상태로 학원에서 빠져나가 술 취한 사람들로 붐비는 거리를 걸으며 집으로 돌아간다. 저녁 12시까지 학원에서 달성하지 못했던 공부량을 채운다. 12시 20분쯤에는 내일도 이 똑같은 하루가 반복될 것이라는 사실에 또 다시 절망하면서, 어두컴컴한 방에서 눈을 질끈 감고 잠에 든다.


대학교 면접을 보러가는 날은 내 루틴이 처음으로 깨진 날이었다. 나는 교대의 재수학원 대신 안암의 대학교에 가야 했고, 서초 2번 버스 대신 지하철 3호선과 6호선을 타야 했기 때문이다. '그저 그런 날'이 아니라, '예외적인 날'이었지만 아침에 나는 별다른 특별한 상태에 놓여 있지 않았다. 그저, 중요한 면접을 보러가는 '보통의 일반적인 사람'처럼, '아아 드디어 오늘이 바로 그날이구나'하는 막연한 생각을 하고 있었고, 배의 기분 나쁜 울렁거림을 느끼고 있었다.  어제 잠들기 직전까지 연습했던 내용이 매끄럽게 복기되지 않아 불안했고, 더 봐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혹시 몰라'하며 종이 더미를 뒤적거렸다.


내면의 변화는 지하철을 타고 나면서 생겼다. 자리에 앉아서 마지막으로 면접 준비 자료를 복습하고 싶었지만 아침 시간대라서 그랬는지 모든 자리가 다 차 있었다. 나는 할 수 없이 한 손으로는 지하철 손잡이를 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면접 응시에 필요한 서류가 담긴 파일을 쥔 채로 지하철 내부를 살펴보았다. 사람들은 무표정으로 음악을 듣거나 핸드폰 화면을 보고 있었다. 지하철이 역에 정거할 때마다 사람들이 내리고 탔다.


일상의 뻔한 풍경을 심드렁하게 응시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뜨거운 무언가가 내 심장에서부터 울컥 치솟아 올랐다. 가슴이 저릿하고, 신경이 곤두서고, 머리가 핑 돌 정도로 벅차올랐다. 이 느닷없는 감동의 물결에 나는 잠시 황당해했다. 황당해하는 것이 정상이다. 객관적인 제 3자의 시선에서 이것은 행복으로 '벅차오를' 상황이 전혀 아니기 때문이다. 면접을 잘 보고 돌아오는 길이 아니라 , 자신없는 면접을 보러가는 길이었다. 수능 시험이 종료된 다음 후련한 마음으로 고사장에서 나오는 사람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왜 벅차올랐는가? 내가 애타게 열망했던 대상의 실체를 깨닫게 되어서이다. 이전까지 나는 내가 학벌에 열등감을 가졌기 때문에 괴로워했고, 입시 성공을 통해 더 좋은 학벌을 얻고 싶어하는 줄 알았다. 그러나 내가 진정으로 갈망했던 것은 바로 자유였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어디로든 갈 수 있는 자유'를 원했다.

나의 세상은 지나치게 협소했다. 오직 집, 학원, 독서실에만 머물렀고, 오직 성적과 대학에 관한 생각만 했다. 나는 절대로 내 경로에서 벗어나지 말아야 했다. 내가 스스로에게 내린 족쇄였다. 다른 길을 걸어갈 수도 있다고, 다른 곳에 도달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엄격히 금지되었다. 어린이가 뛰어노는 놀이터, 산책로가 조성된 공원, 사람들이 대화를 나누는 카페, 아름다운 작품이 걸린 미술관, 맛있는 음식을 판매하는 식당... 세상은 넓고, 세상에는 수많은 장소가 존재하고, 그 장소에는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다. 그런데 책상에 앉아 문제 풀이에만 몰두하느라 나는 본래 세상을 자유롭게 누빌 수 있는 존재임을 잊어버리고 말았다. 나의 '세계관' 자체가 함몰되었던 것이다.  늘 내리던 정거장의 다음 정거장에 내리기만 해봐도, 먼저 오는 다른 버스를 타보기만 해도, 아무 노선으로 환승해 보기만 해도, 조금 더 걸어가보기만 해도, 나는 내가 원래 돌아다녔던 익숙한 장소에서 벗어나 낯선 장소에 도착하여 새로운 경험을 쌓을 수 있었다. 그러나 나는 정해진 시각에 정해진 장소에서 정해진 행동을 했어야 했다. 결박된 나는 '어디로도' 갈 수 없었다.


지하철에 타고 있는 사람들은 어디든지 갈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지하철에만 영원히 머무르는 사람들은 이 세상에 없다. 사람들은 정거장에 내려서 각자의 종착지로 향한다. '그곳'에 도착해서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하지만 당시의 나는 '그곳'에 도달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커다란 행운이자 축복이라고 생각했다. 지하철을 탔던 그날의 나는 '어디든지 갈 수 있는 사람들' 사이에 서있었다. '어디든지 갈 수 있는 사람들'의 세상에 잠시 속함으로써 비로소 나는 내가 그동안 '어디든지 갈 수 없는 사람'이었다는 애처로운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어디든지 갈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나의 뜨거운 열망을 인식했다. 나아가, 나는 본래 '어디든지 갈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나는 반드시 올해 끝에 현재의 억압된 상태에서 벗어나 자유를 찾을 것이라는 희망을 품게 되었다. 대학교라는 새로운 장소로 향해 면접이라는 새로운 기회에 도전하는 바로 그 날을 나는 내게 도래할 밝은 미래를 암시하는 희망의 증표로 여겼다. 기나긴 터널의 끝이 처음으로 보였기에 벅차올랐다.


이제 시작으로 돌아오자. 나는 젊음을 세상이 끝없이 펼쳐져 있음을 자각하며, 맘만 먹으면 그 어디에도 갈 수 있다고 스스로 확신하는 상태로 정의한다. 마음 내키는대로 뛰어들거나 뛰어내리면서 어디든지 자유롭게 가고 싶다. 그 이상을 완벽히 실천하지는 못해도, 그 이상을 품으며 '젊은' 내가 살아간다. 잠깐 넋을 놓고, 나를 비추는 따뜻한 햇빛을 계속 바라본 순간. 적당히 붐볐고, 적당히 덜컹거린 그 지하철. 아, 내 젊음은 오래 거기 남아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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