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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화 Nov 24. 2023

문과남자의 과학 공부-유시민

유시민 작가의 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


제목부터 범상치 않다. ‘이과생이 과학을 쉽게 설명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이과생이 문과생에게가 아닌, 문과생이 문과생에게 전하는 과학 이야기라는 형태만으로도 이 책은 문과생들의 이목을 끈다. 그렇다면 자연스레 이 질문이 나오게 된다. 왜 스스로를 ‘수학을 싫어한 운명적 문과생’이자 소개하는 저자가 인문학 공부 대신 과학 공부를 열심히 하게 되었을까? 그 결과 작가는 ‘인문학’과 ‘과학’에 대하여 어떤 깨달음을 얻었을까?

흔히 인문학에 회의적인 사람들은 ‘인문학 위기론’ 담론에서 인문학이 취업에 도움이 되지 않고, 직장에서 쓸모가 없기 때문에 무용하다고 주장한다. 이와 달리 작가는 새로운 관점으로 인문학이 처한 위기를 조명하여, 과학에 관심이 없는 인문학도들과, 과학은 인문학과 별개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이분법적 사고방식에서 인문학의 위기가 싹텄다고 분석한다. 달리 말하자면, 인문학자들이 과학을 공부하고, 과학자들이 탐구와 연구로 발견한 사실을 활용해야만 인문학이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책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작가의 논리는 다음과 같다. 인문학은 자기 자신을 이해하려는 욕망의 산물인 학문이다. 인간의 자아와 본성을 이해하고 싶었던 인문학자들은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답하려고 최선을 다했다. 그러나 문학, 사회, 철학과 같은 인문학의 지식을 활용하는 것만으로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을 마련하기가 힘들다. 더 좋은 답을 만들기 위해서는, ‘나는 누구인가’를 고민하기 앞서 내가 ‘무엇’인지를 정확히 알아야 한다. ‘내가 무엇인가?’를 탐구하는 학문은 바로 과학이다. 가령 칼 세이건의 과학서 <코스모스>는 1장에서부터 ‘인류는 대폭발의 아득히 먼 후손이다. 우리는 코스모스로부터 나왔다.’라며 인간이란 ‘무엇인지’를 명쾌하게 설명한다. 내가 누구이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은, 내가 무엇인지에 대한 이해가 먼저 이루어질 경우 더더욱 적설설고 다채로워질 수 있다. 작가는 과학은 인문학에 선행하며, 인문학은 과학이라는 토대를 갖추어야 온전해진다고 주장함으로써 과학 공부가 필요한 이유를 운명적 문과생인 독자들에게 납득시킨다.


작가의 말처럼, 인문학 책을 읽을 때보다 과학 책을 읽을 때 나를 더 잘 이해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자면, 나는 ‘한 권의 책을 다 읽었다면 그 책의 내용을 소화하는 시간을 가져야 하는데, 나는 왜 완독한 책은 다시 들여다 보지 않고 계속 새로운 책을 찾아 읽지?’라고 생각하며 자괴감을 느끼곤 했다. 하지만 뇌괴학 서적을 읽음으로써 나는 새로운 것을 학습할 때 인간의 뇌는 도파민을 분비함을 깨달았고 내 아득한 조상인 사피엔스는 ‘자연을 더 많이 알수록 생존 확률이 높아진다’라는 메뉴얼에 따라 행동했으며, 인간의 뇌는 이러한 생존본능에 영향을 받아 새로운 정보를 더욱 갈망하게 되었음을 깨우쳤다. 사피엔스의 뇌와 나의 뇌는 별반 다를 바 없기 때문에, 오래전 탑재된 생존 본능에 따라 나 역시 새로운 것을 찾아 헤매고 갈망한다. ‘도대체 왜 나는 익숙한 것보다는 새로운 것을 갈망하지’라는 의문이 과학 지식 덕분에 풀린 것이었다. 그 덕분에 나는 새로운 정보를 갈망하는 것은 내 의지로 바꾸기 힘든 영역이니, 그 정보를 무의미한 SNS 게시물 대신 글, 그림, 영상으로 대체함으로써 ‘해로운’ 도파민 공급을 ‘이로운’ 도파민 공급으로 변화시킬 방법을 궁리한다. 과학이 인문학보다 강력한 지적 자극을 주고, 나를 새로운 관점으로 이해하도록 돕는다는 진술에는 (묘하게 속상하면서도) 동의할 수 밖에 없다.


작가는 <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에서 뇌과학, 생물학, 화학, 수학, 물리학 총 5개의 영역을 다루며, 각 학문 영역의 기본적이고 핵심적인 지식들을 친절히 설명한다. 더불어 과학에 무지한 사람들이 흔히 착각하고 오해하는 잘못된 과학 지식을 바로잡는다. 과학의 사유와 인문학의 성찰이 공존하는 작가의 여정을 따라가 보면, 과학적 관점에 입각하여 인간과 사회가 형성된 과정과 구성된 방식을 통찰할 수 있다.


‘인문학 이론은 진리인지 오류인지 객관적으로 판정할 수 없다. 그게 인문학의 가치이고 한계다. 한계를 넓히려면 과학의 사실을 받아들여야 하고, 가치를 키우려면 사실의 토대 위해서 과학이 대답하지 못하는 질문에 대해 더 그럴법한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책의 주제의식을 관통하는 문장이다. 과학을 통해 나 자신을 더 잘 이해하고 싶은 사람들, 과학을 모르는 바보로 평생 살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유시민 작가의 <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를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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