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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화 Nov 27. 2023

딸에 대하여_김혜진

<딸에 대하여>의 주인공인 어머니는 ‘요양보호사’로서 요양원에 맡겨진 노인을 돌보는 일을 한다. 주인공이 맡은 환자는 ‘젠’이다. 젠은 멋진 삶을 살았다. 한국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공부하고, 유럽에서 활동하다가, 한국으로 돌아온 후엔 자신과 아무 상관 없는 사람들을 보살폈다. 그 빛나는 과거가 무색할 만큼 현재 주인공이 돌보는 젠은 늙고, 병들었고, 초라하다. 결혼하지 않았고, 아이를 가지지 않은 젠에게는 가족이 없다. 아무도 젠을 찾아오지 않는다. 젠의 안부를 궁금해하는 사람 역시 없다. 설상가상으로 젠의 알츠하이머병은 나빠지기만 한다. 알아듣기 힘든 말을 반복하고, 흥분해서 공격적인 행동을 하고, 인지 능력과 판단력을 잃는다.


<딸에 대하여>는 노인이 존중받아야 하는 공간에서 노인이 배제되는 모순적인 현상을 포착한다. “저렇게 혼자 있는 걸 보면 참 딱해. 그러니까 지금 힘들어도 애들 잘 키워. 그게 재산이고 보험이야.” 요양보호사는 겉으로는 젠에게 예의를 갖추면서 속으로는 은근히 멸시하고, “기저귀도 잘라 쓰시면 몇 번 더 쓰실 수 있잖아요. 마음만 먹으면 못 아낄 게 뭐가 있습니까” 관리자들은 무심하고 사무적인 태도로 젠에게 필요한 비품을 끊는다. 젠의 선행과 공헌은 까마득히 잊히고 ‘성가신 짐’으로 치부되는 모습이 독자 입장에서 거북할 정도로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또한 <딸에 대하여>는 이중 잣대를 젠에게 들이미는 주인공을 통해 대한민국 사회에서 늙어가는 것과 혼자 남는다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를 실감하게 만든다. 젠을 대하는 주인공의 심정은 복합적이다. 주인공은 젠을 연민하면서도 불편해한다. 첫 번째는 돌봄 노동 때문이다. 나이들고 병든 사람을 하루종일 돌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주인공은 젠의 응석과 패악을 온몸으로 떠 안으며 육체노동과 감정노동을 한다. 젠의 돌봄에 투입되는 막대한 시간과 노력에 비해 주인공의 일을 향한 경제적 지원은 미비하고 사회적 인식은 차갑기만 하다. 주인공은 젠을 따스하게 대하면서도 때로는 지쳐서 젠에게 화를 내며, 노동 현장에서 겪는 고단함과 참담함을 속으로 조용히 삭힌다. 이러한 주인공의 모습을 통해 <딸에 대하여>는 홀로 남겨지는 노인에게 필요한 돌봄 노동이 존중받지 못하는 풍조를 나타내고, 돌봄 노동에 관한 논의와 지원이 결여된 문제가 지속될 경우 한국 사회에서 노인으로 사는 것이 더욱 힘들어질 것임을 무겁게 암시한다.


두 번째는 두려움 때문이다. 주인공은 젠의 나이가 되면 자신도 젠처럼 혼자 남겨질까 두려워하고, 자신의 딸 또한 나중에 젠처럼 외로운 처지가 될까 무서워한다. 아무런 자식이 없는 젠과 달리, 자신에게는 딸이 하나 있다는 것이 삭막한 현실에서 주인공이 유일하게 기대는 요소이다. 주인공은 가족이 없는 젠의 처지를 젠이 지닌 치명적인 결함이자 젠이 삶에서 저지른 잘못으로 여긴다. 세상에서 믿고 의지할 사람은 가족뿐이고 가족이 아닌 관계는 무의미하다고 믿는 주인공은 동성 연인과 함께 살아가려고 하는 딸을 극구 말린다. 성소수자인 딸과 그녀의 동성 연인은 결코 ‘가족’이 될 수 없으며, 딸이 다른 ‘평범한’ 딸처럼 남자와 결혼하여 자식을 낳고 가정을 꾸리면 젠과 같은 비참한 노년을 모면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딸에 대하여>는 전통적인 가족 관념에 갇힌 주인공의 사고방식을 비판하면서도, 주인공이 가족을 생존 수단으로 인식하고, 가족에 매달릴 수 밖에 없게 만드는 근본적인 원인이 무엇인지를 묻는다. 그것은 바로 사회적 약자가 혐오, 배제, 그리고 폭력에 무방비로 노출되는 사회이다.


<딸에 대하여>는 힘 없는 사람들의 소리 없는 고통과, 힘 없는 사람들을 궁지로 떠미는 사회의 부조리를 그리는 소설이다.  취약한 사람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고 이해하기를 거부하는 사회의 불편한 진실을 직시함으로써 독자는 우리의 문제를 ‘남’의 문제로 타자화하는 태도에 문제를 제기할 수 있게 되고, 사회적 약자가 인간의 존엄성을 잃지 않도록 하는 세상을 만들어야 함을 깨닫게 된다. 나아가 그들을 향한 존중이 보장되기 위해서 공동체는 어떻게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고 사회적 인식을 개선해야 하는지를 고민해볼 수 있다. 사회에 꼭 필요한 질문을 던지는 <딸에 대하여>를 모두가 읽어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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