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좋아지면, 밤이 깊어지면'은 안희연 시인의 산문집이다. <1부-밤을 재운다. 2부-이렇게 아픈 얼굴을 쉽게 가져도 된다, 3부-어쨌든 무릎이 깨졌다는 건 사랑했다는 뜻이다.>로 구성되었다.
추운 겨울 밤, 포근한 이불을 덮은 채 말랑말랑한 귤을 하나씩 까먹는 듯한 재밌는 산문집.
크리스마스 이브, 전구, 인형, 별, 리본으로 정성스레 꾸며진 트리를 보는 듯한 다정한 산문집.
(1) "당신이 좋아지면, 밤이 깊어지면. 지금껏 누구에게도 해본 적 없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어요."
이 산문집의 매력은 내밀함이다. <당신이 좋아지면, 밤이 깊어지면>이라는 산문집의 제목이 암시하듯, 캄캄한 밤이 되어야만,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에게만 꺼내놓을 수 있는 지극히 개인적이고 진솔한 이야기들이 아름다운 언어로 펼쳐진다. '어쩌면 본인보다 본인이 쓴 글이 더 진실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 산문집에서는 경험의 '관찰'이 아닌 생생한 '체험'이 이루어진다.
(2) '거짓의 쓸모(논알코올 맥주)' '나의 인어에게(인공눈물)' '당신의 바탕색(바나나튀김)'
익숙한 소재와 생소한 표현의 이질적인 조합에서 확인 가능하듯, 이 산문집의 매력은 참신함이다. 안희연 시인은 익숙한 것을 낯설게 바라보고, 동떨어진 대상들을 촘촘히 엮어내는 능력이 탁월하신 분이다. 우리는 때로 우리가 생각하고 느끼고 경험한 바를 너무나 고루한 언어로 표현하거나 게으른 태도로 짓이긴다. 시인의 독특한 언어와 섬세한 태도를 접하는 것은 마치 우리의 마음을 공사해서 감수성을 확장하는 것과도 같다.
따뜻한 이야기 꾸러미와, 자신만의 세예라자드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저의 이야기는 끝입니다. 그러니 이제 가세요. 당신의 기억으로" 어쩌면, 시인의 모든 이야기가 끝난 다음, 누군가에게 들려주고 싶은 정직한 이야기가 우리의 가장 깊숙한 곳에서 모락모락 피어오를지도.
<인상깊은 표현들 소개하기>
(물론 이 글에 적은 표현들이 전부가 아니다)
"그러나 딸들은 무심하기 짝이 없었고. 엄마의 소망을 실현 불가능한 낭만으로 소급하며 딸들은 황급히 대화를 종료해버렸다."
누군가의 말을 무시하거나 묵살하는 태도를 '소망을 실현 불가능한 낭만으로 소급하다'라고 표현한 것이 신선하게 느껴졌다. 동시에 섬뜩하기도 했다. '소망을 실현 불가능한 낭만으로 소급하는' 것은 얼마나 잔인하고 이기적인 태도인가. 타인의 말을 멋대로 소급하는 사람이 되지 말자는 생각이 들었다.
"누가 밤을 꿀에 재울 생각을 한 걸까. 재운다는 말은 왜 이리 다정하면서도 아플까. 자장자장. 밤을 재운다.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시간을 재운다. 이런 밤이라면, 아껴 먹지 않을 도리가 없다."
재우다의 두 가지 의미('음식을 양념하여 그릇에 차곡차곡 담아두다'와 '눈을 감기고 한동안 의식 활동을 쉬는 상태가 되게 하다')를 결합한 참신한 표현이다. 밤조림에 설탕을 재운다는 통념 대신 돌아올 수 없는 시간을 재운다는 상상력이 인상적이다. 통상적으로는 사물을 볼 때 쓸모와 쓰임을 생각하지만, 때로는 예술가처럼 사물에 함축된 기억과 시간을 떠올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반. 누구의 소행인지 알 수 없는 시간의 원반. 시간은 원반던지기 놀이를 즐긴다. 솜씨도 좋아 백발백중 명치를 가격하고 뒤통수를 명중시킨다."
이상하게도 나이를 하나씩 먹어갈수록 내가 '주체'가 되어 과거를 떠올리는 경우는 줄어들고 대신 누군가가 한 말, 내 옛날 기록, 특정한 음악과 풍경을 통해 과거가 나를 느닷없이 찾아오는 경우가 많아진다. '푸르스트 효과'라고 지칭하기에는 덜 낭만적인. 나를 탁하고 때리는 듯한, 그 얼얼한 과거와의 만남이 '원반놀이'라는 표현으로 절묘하게 표현되었다.
"소영씨를 만나고 온 뒤엔 기분 좋은 여진이 있다. 소영씨와 나누는 대화는 언제나 내 안에 물방울처럼 맺힌다. 갈증을 느낄 때마다 하나씩 머금기 좋게."
만나면 고갈되는 관계가 있는 한편 만나면 채워지는 관계가 있다. 채워지는 관계의 사람과 시간을 보내면, 홀로 그 시간을, 그 사람이 입은 옷과, 지은 표정과, 내게 건넨 말과, 그 사람과 함께 먹은 음식, 방문한 장소, 바라본 풍경 이 모든 것들을, 행복하게 곱씹고 음미하게 된다. 마음이 통하고, 영감과 자극이 되는 대화를 '많은 물방물이 맺히는 대화'라고 표현한 것이 인상적이다.
"그땐 살아 있었던 아빠를. 이 악물고 운동장을 달리던 엄마를. 풍금 재시험을 보기 위해 강의실로 들어온 무리 속에서 두 사람의 눈이 마주친 순간. 내가 저 먼 우주로부터 전속력으로 날아오고 있었을 때."
한 쪽이 일방적으로 기다리고, 한 쪽이 일방적으로 다가가서 이뤄지는 만남보다. 양쪽이 달려와서 이루어지는 만남이 더 극적이고 기적처럼 느껴진다. 엄마의 뱃속에서 '자라는' 내가 아니라, 엄마 아빠에게 전속력으로 '날아오는' 나. 엄마와 아빠의 만남과, 그 다음에 자식으로 태어난 나'라는 서사 대신, '엄마, 아빠, 그리고 나의 첫 만남'이라는 찬란한 순간을 표현했기에 아름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