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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화 Oct 01. 2023

글에서도, 튜닝의 끝은 순정이다.

(제가 올해 봄 번아웃에 빠졌을 때 쓴 글입니다.)


긴 호흡은 힘들다. 단상은 많은데 그 단상을 글로 매듭지을 염두가 나지 않는다. 아닌가. 충분히 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내가 글쓰기에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것일까.


내가 원해서 하는 글쓰기를 관둔지 무척 오래되었다. 글쓰기 계정도 3개월 넘게 방치 상태이다. 왜 갑자기 글쓰기를 관두게 되었을까. 변명이라도 해보자. 논문 리딩, 책 리딩, 기사 작성, 질문과 답글 업로드, 발표 등 신경 쓰이는 수시 과제가 많은 수업 과목. 심혈을 기울인 4주간의 영풍문고 리브랜딩 프로젝트. 주  4회 동안 꼬박꼬박 참여했던 팀 회의. 일어나면 투두메이트에 할 일을 입력하고, 리스트에 완료선이 전부 그어지면 잠든다. 오늘도 할 일을 빠짐없이 전부 ‘클리어’했다고 안도한다. 내가 아니라 일하는 나로 살아간 나날들. 심지어 ‘바쁘게 일하는 나'에 도취된 날들의 연속. 글쓰기 말고 할 일이 많았다는 진부한 변명을 해본다.


과연 그것뿐일까. 최근에 나는 매우 방어적이었다. 나는 감정이나 생각들을 남에게 스스럼없이 이야기하지 못한다. 이건 내 천성이다. 자신의 고민을 솔직하게 털어놓는 친구들. 블로그가 자신의 일기장이라고 소개하는 친구들. 자신의 포스팅 링크를 스토리에 게시하는 친구들. 그런 친구들이 부럽다. 나는 나를 드러내기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정말로 힘들면 절대로 힘들다고 말하지 않는다. 무언가를 올리기 전에는 ‘굳이 올려야 할까?’하며 망설이고, 올린 후에는 ‘올릴 필요가 있었을까?’하며 후회한다. 꽁꽁 숨기는 내가 나를 찔끔 드러낼 때가 바로 글을 쓸 때였는데, 최근에는 이 최소한의 표현조차 무서워졌다. 드러내지 않았더니 내가 어떻게 드러냈는지를 까먹었다. 나에게는 더 이상 드러낼 게 없다고 자조하게 되었다.


글을 버린 다음에 시험 기간이 찾아왔다. 시험 공부보다는 진로 고민이 나를 힘들게 했다. 시험이 끝난 다음 바로 이중 전공을 신청해야 했다. '이중전공을 무엇으로 해야 하나'의 고민은 '미래에 무엇을 하고 싶나'에서  '내가 잘하는 것은 무엇인가'하는 고민까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잘하는 것을 더 잘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내 철학 때문이었겠지. 기업이라는 이익집단에서 흔히 '인재'에게 요구하는 덕목을 떠올려 보았다.


영리한가. 열심히 하지만, 탁월하지는 않다. 학창 시절의 나는 포기하기에는 아깝고 성공하기에는 모자란 중상위권이었다. 사람들은 나의 애매함에 안타까워했다. 대학생인 현재는 나름 만족할 학업적 성취를 이뤘지만 머리가 비상해서보다는 몸이 부지런해서다. 아 그리고 애초에, 공부를 잘하는 것과 일을 잘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이야기다.


리더십이 뛰어난가. '너무 혼자 다 하려고 무리하지 마.' '선우야, 너 완벽주의 성향이지?'  팀원들의 우려가 기억에 남는다. 내 과도한 노력은 다른 사람에게 동기부여가 아니라 부담가중이 되었을까. 타인의 수고를 덜어주고, 프로젝트 진행의 효율을 높인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타인이 성장할 기회를 빼앗은 게 아닐까. 발맞추는 리더는 무슨. 쉴틈없이 몰아붙이는 리더였나. 지금 후회하는 것 자체가 내가 리더에 적합하지 않은 인물임을 입증하는 증거이다.


사회성이 좋은가. MBTI가 E에서 I로 바뀌었다. 그것도 모자라서 부쩍 인간관계에 소홀해졌다. 한 달 동안 누군가에게 먼저 연락한 적이 손에 꼽힐 정도로 적다. 친해지고 싶은 사람이 생겨서, 그 사람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간 적도 거의 없다. 외로울 때는 사람을 찾지 않았다. 대신 사람들이 많은 장소에서 혼자 두리번거리며 군중 속의 '고독한 개인'을 자처했다. 나는 네트워킹에 활발한 사람이 아니다.


돌고 돌아서 결국 글쓰기였다.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내가 자발적으로 하는 행위는 글쓰기가 유일하다. 글을 쓸 때의 내가 가장 솔직하다. 그뿐인가. 글쓰기에 관해서는 나름 좋은 피드백을 받아왔다. 일기를 잘 쓴다고 칭찬하신 학교 선생님. 내 블로그 글을 좋아한다고 말한 친구들, 편지가 뻔하지 않고 재밌다고 감탄한 가족들. 거짓인 반응, 어설픈 재주일지라도, '너의 글을 잘 읽었다'라는 말이 가장 나를 뿌듯하게 만들었다. 때로는 '나는 쓸모 없는 존재일수도'라는 우울감을 극복하는 힘이 되었으며, 어떨 때는 '글로 세상을 움직이고 싶어'하는 희망을 품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글을 방치한 내가 한심하게 느껴졌다. 잘하면서 동시에 좋아하는 것을 알면서도 줄곧 외면해왔다니. 나만의 방식으로 내 삶을 언어화할 때 느끼는 설렘을 잊어버렸다니. 시험 기간 내내 공부에 싫증을 내며 빨리 '나의' 글이나 쓰고 싶다고 생각했다. 마땅한 소재를 발견하지 못했는데도 글 한 편을 완성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아서 자기 반성이라도 글에 주저리주저리 늘어놓았다. 글에 대한 글을 쓰는 작가야말로 벼랑 끝에 몰린 위태로운 상황에서, 글에게 못다한 사랑을 절절히 고백하는 작가이다. 


쓰고 싶은데 쓰고 싶지 않아도, 그럼에도 쓸 수 있게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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