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 책 변상

운이 없는 하루

by 지미림


운이 없는 하루였다. 도서관 가는 길에 쓰레기를 버리기 위해 유모차에 한 가득 음식물 쓰레기와 일반 쓰레기 봉투를 싣었다. 그런데 이를 깜박 잊고 그대로 실은 채 도서관에 왔다. 도서관까지 거리가 꽤 먼데도 도착한 뒤에야 알았다. 오는 길에 누가 보지는 않았을지 흠칫했지만 이미 벌어진 일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나마 아직 제거하지 않은 유모차 방풍커버 덕분에 외부 눈에 잘 띄지 않았을 게 다행이었다.

기존 책들을 반납하고 새로 빌린 뒤 도서관 건물 1층 편의점에서 구매한 인스턴트 커피를 텀블러에 담아 출발했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유모차 컵홀더를 잃어버린지 오래라 텀블러도 뚜껑을 점검한 뒤 유모차 짐칸에 뉘어 싣고는 한다.

도서관에서 출발하기 직전 둘째가 잠에서 깨버렸기 때문에 서둘러 돌아와 쓰레기까지 잘 버리고 집에 들어왔다. 유모차에서 아이를 먼저 내리고 기저귀를 간 뒤 짐칸에 실었던 것들을 하나 둘 옮기기 시작했다. 새로 대출할 책들을 담은 가방을 꺼내는데 가장 안쪽이 축축한 느낌이라 흠칫했지만 설마 싶어 꺼내 확인해보니 텀블러에서 새어 나온 커피가 흥건했다. 유모차 짐칸 바닥에 있는 구멍으로 밑의 현관에까지 커피가 똑똑 떨어지고 있었다. 조금 전에 빌려온 도서관 책들의 모서리는 이미 시커멓게 변해 있었다.

살아 생전 어떤 이유로든지 도서관 책을 파손해 변상해본 적이 없는데, 금번에 커피로 인해 젖은 것은 범위도 크고 눈에 잘 띄어서 변상이 불가피했다. 도서관에 확인해보니 새 책을 구매해 가지고 오면 받고, 기존의 도서관 책을 대신 준다고 한다. 도서관까지 가는 길이 멀어 그냥 알라딘에서 사볼까 했던 게 실제로 그렇게 되버렸다. 비록 새 책은 아니지만 그래도 내 책이 되어 집에 두고, '두고 두고' 볼 수 있으니 잘 되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실은 다른 책들을 사고 싶었지만 말이다) 그나저나 텀블러 뚜껑을 제대로 안 잠갔나? 매번 텀블러 뚜껑을 점검하고 유모차 짐칸에 싣는다고 한 게 누구더라~

keyword
작가의 이전글외부자원 활용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