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 식사와 오펜하이머 영화 보기, 그리고 미니 파티까지!
**등장인물은 가명을 사용하였습니다.
안나 선생님과 맞이하는 아침
이탈리아 스트리트 페어를 다녀온 후 우린 함께 잠들었는데, 아침에 일어났을 때 안나 선생님이 잠에서 덜 깬 상태로 몇 시냐며 ‘영어로' 물어본 점이 꽤 인상적이었다. 아직까지의 나에겐 영어로 아침 인사를 건네는 것조차 어색하게 느껴지는데 말이다. 미국에서 지내며 이렇게 잠에서 덜 깬 상태에서도 영어가 술술 나오는 언젠가의 내 모습을 기대해 본다.
일어난 후 안나 선생님은 개인적인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난 미국 생활 6일 차에 범블 어플을 통해 사귀었던 일본인 친구인 유키와의 점심 약속을 가기 위해 나갈 채비를 시작했다. 안나 선생님은 기분이 좋으셨는지 허밍을 하셨는데, 보통 사람이 허밍을 흠흠흠~하는 수준으로 한다면 바이올리니스트인 안나 선생님은 허밍도 무슨 악기 연주하듯이 하셔서 ‘와~ 허밍도 진짜 음악 하시는 분처럼 하세요!’라며 감탄이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안나 선생님은 지난번에 연주한 곡이었는데 자기도 모르게 너무 이입해서 나온 것 같다며 민망해하셨지만 난 나와는 다른 직업들을 가진 이런 직업병 모먼트를 보는 것이 너무 좋다.
유키와의 두 번째 만남
친구 유키와는 지난번 내가 사는 동네까지 와준 유키가 고마워서 이번엔 내가 유키 동네 근처에 가서 함께 브런치 식사를 하기로 했다. ‘카페 마들렌(Cafe Madelaine)’은 유키가 좋아하는 카페 중 한 곳이었는데, 덕분에 ‘키슈’라는 프랑스 파이를 시도해 볼 수 있었다. 겉보기엔 타르트인데 재료는 피자와 비슷해서 은근 배도 부르고 시금치와 연어가 들어간 재료를 골랐더니 더 건강해진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역시나 이번에도 우리의 대화엔 한국-일본과의 문화 교류 타임이 계속되었지만 오늘 핵심 대화 주제는 유키가 현재 썸을 타고 있는 남자였다. 어떻게 만나게 되었는지, 어떤 점이 좋은지 수다를 떨다 보니 시간이 금방 흘러 직장인인 유키가 일을 하러 다시 복귀해야 하는 시간이 되었다. 카페를 나서면서는 아쉬운 마음에 함께 사진도 찍고 유키는 일하는 곳으로, 난 남는 오후 시간 동안 영화를 보고 쇼핑을 하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자신감으로 영화 본 자의 최후
사실 외국에서 영화를 본 경험은 예전에 영국에서 교환학생을 하던 당시에 한국에서 상영 금지였던 ‘더 인터뷰’를 궁금해서 봐본 것 외에는 없었지만, 무슨 자신감이 붙었는지 한국에서는 아직 개봉 전이라는 ‘오펜하이머’를 홀로 보러 가기로 결심했다.
영화를 다 보고 나서야 느꼈지만 감히 과학 얘기를 영어로 (자막 없이) 볼 생각을 한 건 정말 대단한 자신감이었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상미는 예상했던 대로 훌륭했지만 문제점이 있다면 알아들을 수 없는 과학 용어 속에 급기야 영화 중간에 졸기까지 해버린 나에게 있겠지… 영어 실력과는 별개로 추측하는 실력만 올라가는 듯하다.
이해하지 못할 영화를 다 보고 나오면서 문을 나서는데 (당연하게도) 주변에 외국인들밖에 보이지 않자 뭔가 내 마음을 공감할 사람이 없어서였을까, 처음으로 한국에 대한 그리움을 느꼈다.
안나 선생님과의 미니 파티
점심 약속을 끝낸 후 영화관에 갔다가 타겟 쇼핑하기까지 마쳤더니, 아무리 체력이 좋은 나라도 짐을 들고 다시 집까지 걸어가는 건 무리일 것 같다는 판단이 들어 우버를 타고 집으로 귀가했다. 뒤이어 밤에 돌아온 안나 선생님과는 근처 마트에 들러 컵라면과 과자를 사 와 미리 사놓은 와인과 함께 먹기로 했다. 컵라면과 와인과 함께하는 우리만의 미니 파티! 역시 어제 축제에 가기 전 잠시 떠든 것만으로는 우리의 업데이트는 부족했지.
얘기하다 보니 안나 선생님과의 대화 주제도 최근에 선생님이 만나게 된 남자에 관한 얘기로 흘러갔다. 이런 얘기를 할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목표하는 꿈에는 비교적 명확한 답이 있는데 사랑은 추상적인 데다 변수도 많아서 더 힘들게 느껴진다. 이럴 땐 항상 명확한 답이 있는 걸 쫓는 게 정신 건강에 이롭다. 명확한 답만이 그에 걸맞은 신뢰를 주니까. 내 생각이 변할 수도 있을까? 많은 걸 느끼게 되는 밤이다.
예쁜 카페에 가서 브런치 식사를 하고 영화를 보고 쇼핑을 한 후 와인과 함께하며 느끼는 게 많아지는 밤이라니, 정말 완벽한 금요일인 하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