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되어있을 뿐이다.
보름 전 오랜만에 번화가에 있는 펍을 다녀왔다. 술은 잘 못하지만 잭콕을 좋아한다. 20대 초반에는 나도 열심히 흔들었다. 서른이 가까워져 가니 그런 곳에서 흔들 만큼의 흥은 나지 않았다. 그냥 앉아서 노래나 들으며 주변을 쓱 돌아볼 뿐이었다.
오늘 퇴근하고 방에 홀로 앉아 펍에서 본 생면부지의 사람들을 관찰하던 기억을 떠올렸다.
사색했다.
글을 쓰는 사람이 사색의 시간을 가진다는 것은 좋은 것이다. 담담한 생각이 나온다.
왜 술집을 다니는 사람들은 다음 주에도 술집을 다니며,
왜 서점을 다니는 사람들은 다음 주에도 서점을 다니나.
예전에는 술집에 다니는 사람들보다 서점을 다니는 사람이 좋다는 식으로 말을 하곤 했는데 지금은 그럴 생각도 없다. 그렇다고 술집에 다니는 사람들이 서점을 다니는 사람보다 좋다는 말을 하려는 것도 아니다.
사색을 했다고 하는 내용은 왜 저런 현상이 생길까에 대한 고민이었다. 보통 술 마시는 사람이 책을 좋아하지 않고,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 술을 잘 마시지 않는다. 이것의 근원을 고민했다.
일단은 나 자신부터 객관화시켜보기로 했다. 나는 책을 잘 보는 사람이다. 서점도 자주 간다. 돈이 없으면 아예 서점에 세네 시간 있으며 내리 다 읽어버리곤 한다. 내가 책을 읽는 이유는 빠르게 성공하고 싶어서이다. 그러려면 부자를 배워야 한다. 그러나 내 주변엔 부자가 없다. 그러니 책을 찾는 것이다. 지식의 효과를 잘 못 느끼겠다는 사람들이 있는데, 나는 많이 느낀다. 그렇게 책을 많이 보지 않았더라면 나는 빠르게 시드를 모을 생각을 못했을 것이고, 주식 투자로 성과를 보지 못했을 것이다. 내가 책을 읽었다는 것은 돈이 설명해 준다.
그러면 술집 다니는 사람을 생각해 볼 차례다. 퇴근하면 역전하는 할마시 술집에 모여있는 사람들 말이다. 왁자지껄 즐거워 보인다. 먹고 마신다. 가게 밖을 나와 짬짬이 담배도 피워준다. 남자는 문신과 왁스머리에 차 키, 여자는 진한 화장, 노출 의상, 향수를 지니고 있다. 20살 대학생 시절 나도 저 중 한 명이었다. 근데 지금의 내 또래도 많이 보인다. 나이 더 많아 보이는 사람들도 보이고.
그 사람들의 근원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동물적 감각인 것 같다. 남자는 여자를, 여자는 남자를 원한다. 그들이 지닌 아이템들을 보면 그렇다. 그것 말고는 달리 설명할 길이 안 보인다.
인생은 즐겨야 하는 것이라고들 한다. 책을 읽고 성공에 목말라하며 고통을 감내하며 끊임없는 실패와 한계를 만나며 도전하는 삶이 있다. 그리고 술을 먹고 여자를 쫓고 남자를 꼬시는 삶이 있다. 솔직해져 보자. 두 분류 모두 인생을 즐기는 건 아니다. 전자는 치열한 인생이며 후자는 쾌락의 인생이다.
각자가 선택하는 길이며, 결과에 책임을 지게 되어있을 뿐이다.
삶은 이렇게 간단한 것이다.
모두 자신의 선택에 책임질 준비가 되었는가.
나는 준비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