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좋은 질문.
하버드 대학에서 강의를 하는 '조던 피터슨' 교수가 이런 말을 하였다.
통계적으로 지능이 낮은 사람들은 행복한 경향이 있고,
지능이 높은 사람들은 우울한 경향이 있다.
나와 함께하는 성공 프로젝트의 형제 중 한 일원이 내게 이런 물음을 던졌다. 만약 자신의 지능을 선택할 수 있다면 어떻게 선택하겠냐고 말이다. 나는 바로 대답을 하지 못했다. 질문 자체가 너무나 좋은 질문이었다. 저녁에 있었던 일인데 새벽이 된 지금도 결정을 못 내린 질문이다.
나는 '감사한다.'의 감정과 '만족하다.'의 감정은 별개의 것이라고 본다. '감사하다.'라는 것은 뭔가에 충만히 만족스러움을 느껴 행복하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세상과 경우를 넓게 보고, 상대적인 비교우위를 자각하여 스스로를 다독이는 정도의 의미라고 생각한다.
'만족하다.'는 정말로 역치 이상의 외부자극을 경험하여 그 감정이 충만할 때 쓰이는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행복'이라는 감정을 생각해 보자면 '감사한다.'라고 표현할 상황보다는 '만족한다.'라고 표현할 상황이 현실에 존재할 때, 진정의 '행복'이 달성된다고 본다.
'역치'라는 것은 발전의 원동력이면서도 파멸의 원인이다. 대부분 절대적인 만족감을 크게 제공할 수 있는 것들은 값이 비싸다. 예를 들면 사치품, 자동차, 펜트하우스, 술, 마약류, 외모가치가 높은 또는 성적만족감을 크게 줄 수 있는 남성이나 여성 등이 있다.
단계적으로 더 높은 만족감을 취하기 위해서 더 많은 값을 지불해야 한다. 그래서 더 많은 재화가 필요하게 된다. 그러므로 이를 실현시키고자 하는 사람은 경제적인 능력을 향상하려고 한다. 우리는 경쟁사회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경제적 능력 향상을 위해서는 대가를 치러야 하며, 그 과정에서 지능이 발전하게 된다.
경쟁에서 살아남은 자들은 목표했던 '역치'를 얻고 만족감을 즐긴다. 그 후에는 한 단계 더 높은 '역치'가 형성된다. 그를 쫓기 위하여 다시 경쟁을 시작하며, 그 과정에서 또다시 지능이 발전하게 된다.
종래에는 극소수의 최고급 '역치'를 경험해 본 자들이 생긴다. 그리고 각 경쟁단계에서 패배하여, 가장 최근의 '역치' 단계에 좋든 싫든 머물게 된 자들이 있다. 최하부에는 그런 경쟁 자체를 감내할 생각이 없는 자들과 경쟁능력의 부족으로 남게 된 자들이 있다. 피라미드의 형태이다.
피라미드 상단의 극소수 인원들의 역치는 더 이상의 만족을 얻을 수 없을 만한 정도에 달하게 된다. 이들의 지능은 인구대비 최고 수준이다. 그 밑의 단계에 있는 인원들의 역치레벨, 지능레벨은 한 단계 밑이다. 그런 식으로 계속 내려가는 것이다.
그래서 역치레벨이 낮은 인원들은 조금만 자극적인 만족요소가 있으면, 만족감을 누릴 수 있다. 지능이 비교적 낮은 사람들을 말한다.
'조던 피터슨'이 언급한 통계적인 결과는 이런 원리와 과정에서 만들어졌다고 보인다. 혹자는 상위 레벨로 올라간 자들을 보며 지능만 높지 지혜는 없는 인간들이라며 깎아내릴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이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가진다. 지능만 되었다면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더 높은 역치를 취했을 것이라 보기 때문이다. 인간의 본능을 거스를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래서 우리는 소수의 그들을 현자라고 칭하는 것이다.
나 또한 현자가 아니다. 냉철히 생각했을 때, 나도 역치의 산을 올라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것도 대단히 부단하게 노력하고 있다. 스스로 매우 똑똑하다고 여기지는 않기 때문에 최상단 레벨이 아닌, 상위 레벨 어딘가에 안착할 것이라 예상한다.
글 초반에 썼던 질문 내용을 다시 가져오겠다.
만약, 자신의 지능을 선택할 수 있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나는 내 인생 최고 가치를 '가족을 보호하는 것'으로 두고 사는 사람이다. 그것이 명예롭다고 믿는다. 가족을 잘 보호하기 위해서는 경제적 능력이 출중해야 한다. 그래서 지능이 높아야 한다. 따라서 역치의 위험성에 노출되게 된다. 방향이 그렇다는 것이다. 고로, 우울한 삶을 살게 될 가능성이 다분한 인생의 방향으로 가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선택할 수 있다면 높은 지능을 선택하겠다.
나는 내 부모형제, 미래의 아내, 미래의 자녀들, 후손들을 보호할 것이다.
그것이 내 존재의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