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 it be - Beatles
https://youtu.be/QDYfEBY9NM4?si=I76BQCO6oBFQXK_f
지금으로부터 7년 전, 대학 다닐 때의 조각 기억을 통해 오늘의 글을 써보려 한다. 내가 다닌 대학은 평범한 대학이 아니었다. 항해사와 기관사를 양성하는 대학이었고, 사관학교 생도와 유사한 생활을 했다. 해군 제복을 입고 해군식 훈련을 받는다.
학교에는 실습선이 2척 있었다. 3학년 한 학기 동안 실습선을 타고 항해를 하며 여러 나라를 돈다. 오늘의 글은 중국 샤먼에서 있었던 이야기이다.
샤먼은 대만과 마주 보고 있는, 중국의 대도시 중 하나이다. 과거 영국 식민지배를 받은 지역으로, 건축물을 보면 오래된 서양식 건축물 외관을 볼 수 있다.
당시 실습선에는 케냐, 파나마 해사대학에서 위탁 실습교육을 온 생도들도 있었다. 항구에 도착한 뒤, 상륙을 나갈 때(우리는 배에서 현지로 놀러 나가는 것을 상륙이라고 한다.) 어쩌다 보니 그 친구들과 함께 나가게 되었다.
가장 번화한 대로로 나갔다. 커피라도 한잔 사 먹을 생각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케냐 친구들은 위완화 환전을 못한 상황이었다. 환전을 해야 했다.
문제는 외국인이 달러를 가지고 위완화 환전하기가 까다로웠다.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중국은행 지점들에서는 환전이 불가했다. 은행 직원 설명으로는 환전하려면 Standard charted 중앙지점까지 가야 한다고 했다. 엄청나게 먼 거리는 아니었지만 차를 타고 가야 할 거리였다.
우리야 갈길을 가면 그만이긴 했지만, 먼 나라까지 와서 어쩔 줄 몰라하는 케냐 친구들이 눈에 밟혔다. 나는 중국어에 유창하지 못했다. 도움이 필요했고, 주변을 둘러봤다. 옆에 카페 외부 좌석에 백인 노부부 한쌍이 있었다. 영어를 하겠거니 싶었다.
SC은행 중앙점까지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물어보았다. 무엇 때문에 그러냐 하기에 상황 설명을 해주었다. 백인 할아버지는 선뜻 자기 스쿠터로 한 명만 데리고 다녀와주겠다고 하였다. 실례가 안 되겠냐는 물음에도 재차 괜찮다며 옆에 있던 스쿠터에 시동을 걸었다.
케냐 친구 한 명이 할아버지 등에 매달려 길을 떠났고, 나는 홀로 남은 할머니 옆에 있어야겠다는 양심에 자리에 앉아 30분 정도 담소를 나누게 되었다.
그들은 미국 네브레스카 주 오마하에서 나고 자란 신앙심 깊은 목사 부부였고, 이곳에 선교활동을 하러 왔다고 했다. 와서 정착한 지가 20년이 넘었다고 했다. (이렇게까지 구체적으로 기억난다. 나는 아주 선한 사람들 그리고 아주 악한 사람들은 토씨 하나 안 틀리고 기억하고 있다.)
그들에게 샤먼은 젊은 부부였던 시절, 기간제 선교활동을 위해 잠시 방문했던 도시였다. 처음 방문했었을 당시, 사람들의 처참한 삶들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자신들이 보기에 너무나 지옥 같은 삶을 살고 있던 사람들이 많았다고.
그들을 대가 없이 돕기 시작했다고 했다. 기간제였다 보니 비자가 만료되어 일단은 미국으로 돌아갔다고 했다. 그러나 그들은 서로의 합의 하에 다시금 짐을 제대로 챙겨, 아예 이곳으로 터전을 옮겼다고 했다.
그렇게 현지 사람들 중 어려운 이들을 돕고 산 게 20년이 지났다고 했다. 두 사람 모두 백발을 하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과 몸짓, 말투에서 선함과 안정감이 느껴져 왔다. 진정 선한 사람을 만나면 으레 느껴지는 아우라였다.
그렇게 말을 나누다 보니 스쿠터가 돌아왔다. 케냐 친구는 할아버지와 나에게 감사하다는 인사를 했다. 그 친구는 할아버지에게 팁을 주려고 했으나, 한사코 거절하는 모습을 보였다.
케냐 일행이 흩어진 이후, 할아버지가 한동안 스쿠터 뒷바퀴를 쳐다보며 길가에 서있기에 내가 물었다. 망가진 곳이 있냐고. 할아버지는 은행을 다녀오는 길에 바퀴가 퍼졌다고 했다.
부탁을 하게 되었던 내가 괜스레 미안하여 수리비라도 드리겠다고 했다. 역시나 한사코 거절하였다. 한 블럭 아래 아는 수리집이 있다며. 큰돈 들일 아니라며.
그렇게 대화를 마무리하고 스쿠터를 앞뒤로 손에 쥔 채 천천히 밀고 가던 노부부의 뒷모습이 기억난다.
이 기억을 오늘의 글에 담은 것에는 이유가 있다. 얼마 전 글에서 1의 삶과 10의 삶에 대해 말한 적이 있다. 삶의 강도에 관한 개념을 설명한 것이었다.
1의 삶은 철학, 신앙, 예술을 도구로 하여 내면을 성숙화하여 사는 삶을 뜻했다. 10의 삶은 철저히 자본주의에 입각한 성공한 삶을 살려고 노력하는 삶을 뜻했다. 나는 구독자들에게 3,4,5,6,7의 삶이 아닌 1 또는 10의 삶을 권유했었다.
이들이 1의 삶을 사는, 모범적인 예시가 되기 때문에 이 기억을 꺼냈다.
그들의 얼굴에는 없이 산다고 또는 나이가 들어버렸다고 또는 자유롭지가 않다고 불행한 기색은 찾아볼 수 없었다. 진정으로 행복과 안정, 만족을 느끼고 있는 아우라를 풍기고 있었다. 그런 건 굳이 말로 설명하지 않더라도 육감을 통해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높은 확률로 이번 삶에서는 그들을 다시 만날 수 없을 것이다. 7년 전의 일이고, 이미 돌아가셨을지도 모른다.
자신들의 주관에 따라 일평생을 그렇게 살아왔다는 것은 자수성가한 인물의 역경 역사와 그 난이도가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절대로 쉽지 않았던 세월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후회하지 않을 삶이었을 확률이 대단히 높다고 생각한다. 어떠한 외압 없이, 그들의 뜻대로 산 삶이었기 때문이다.(단정할 수는 없는 것이나, 나는 확률에 대해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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