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나에게는 큰 의미가 없다. 나의 경쟁자들에게도 큰 의미가 없다. 우리는 오늘도 싸움을 이어나가고 있다. 상품의 판매 순위는 하루가 멀다하고 엎치락 뒤차락 중이다. 결과가 좋은 날이 있으면 머지않아 나쁜 날이 찾아오며, 나쁜 날이 있으면 좋은 날도 찾아온다.
나는 전투 중이다. 총탄이 머리 위를 지나다니는 것이 보인다. 그래서 추석이 의미가 없다.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만 있다. 오늘은 '나쁜 날'로 사업과 투자 양방향에서 타격이 들어오고 있다. 오늘이 좋은 날이든 나쁜 날이든, 오늘의 내가 해야할 일을 하는데에는 어떠한 영향도 끼치지 못한다. 나는 할 일을 한다.
온라인 판매의 경우 하방에서 치고 들어오는 업체들이 많아 순위가 떨어졌다. 투자에서는 어제 나스닥이 1% 주저앉으면서 메가캡들이 주춤거렸다. 대처할 수 있는 부분을 대처하며 물러서지 않는 것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옵션이다.
나와 동기는 오늘도 하루종일 일했다. 지금도 글을 쓰고 있으니 일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어떻게하면 더 나은 퍼포먼스를 낼 수 있을지 토론한다. 잠들기 직전까지도 그런 이야기만 한다.
메멘토 모리
"너는 반드시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 라는 뜻의 라틴어이다. 고대 로마에서는 원정에서 승리를 거두고 온 개선하는 장군이 시가 행진을 할 때, 노예를 시켜 이 말을 행렬 뒤에서 큰 소리로 외치게 했다.
우리는 모두 죽는다. 언제가 될지, 어떻게 죽을지는 모르나 반드시 죽게 되어있다. 인간이기 때문이다. 생각보다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을 글을 통해 전달하고 싶다. 나는 서른이 다되어가고, 지금 산만큼 더 살면 죽을 수 있다. 여러분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인생에서 추구하는 것은 무엇인가. 당신은 죽기 직전에 무엇을 보고 무엇을 느끼고 싶은가. 죽고 난 사후세계를 어떤 자세로 걸어들어가고 싶은가.
나는 죽기 직전에 나를 존경하고 사랑해주는 패밀리를 보고 싶다. 내가 삶을 명예롭게 살았다는 것을 느끼고 싶다. 죽고 나서 당당히 어깨피고 염라대왕을 마주하고 싶다.
돈을 번다는 것을 옛날 옛적으로 치면, 적 국가의 국토를 토벌하여 내 나라에 이익을 가져다 주는 행위와 속성이 같다. 옛날에는 말그대로 목숨을 건 전투였고, 자본주의 시대로 돌아선 지금은 자신과 핏줄의 신분을 결정 짓는 치열한 싸움이 된다.
워라벨 그리고 딩크 또는 혼자 사는 삶을 선택한다면, 저러한 토벌 활동을 이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된다. 스스로의 입만 걱정하면 되기 때문이다.
나는 왜 그러한 삶을 선택하지 않았을까.
딩크는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이고, 혼자 사는 삶은 배우자와 아이를 두지 않는 것이다.
혼자 사는 삶에서는 그 누구도 당신을 가족만큼은 위해주지 않는다. 희생을 한 것도 없으며, 남의 희생을 받지도 않는 삶에서는 '핏줄의 연'에 준하는 의미를 찾을 수 없다.
젊을 적 나의 희생을 통해 안락한 삶을 누린 배우자는 나를 진정으로 케어해줄 것이다.(내가 진정으로 확실한 안락을 주었다면, 필히 그러할 것이다.) 나의 희생을 통해 성장한 자녀들은 나를 존경할 것이다.
딩크의 경우 배우자는 있지만, 자녀가 없다. 내 선조들은 갖은 고생을 해가며 세상에 나를 있게 만들었다. 우리나라에 외세의 침략이 얼마나 많았는가. 지금의 한반도는 세계 10위권 내의 경제대국이다. 그럼에도 나 하나 더 편하게 어영부영 살자고 그걸 안한다는게 쪽팔렸다. 요단강 건너고 나서 조상들 볼 낯이 없을 것이다. 내가 조상이었어도 벌레같이 쳐다보았을 것 같다.
매일 매일을 살고 적막한 밤이 찾아오면, 생각해보라.
만약 내가 곧 죽는다면 어떤 기분일지 생각해보라.
그것이 메멘토 모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