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oors - People are strange
https://youtu.be/AgHaGrZkkv4?si=hWlt1mR5DBStIEnG
장거리 운전과 수면부족, 아르바이트의 여파로 저녁 먹을 시간에 기절했다. 피곤했던 탓인지 하루이틀간 다시금 이석증이 도졌다. 깊게 자고 나니 훨씬 나아졌다. 정신을 좀 차렸고 밀린 일을 처리한 뒤, 글을 쓴다. 오랜만에 혼자만의 시공간을 가지고 노트북 앞에 앉았다.
이따금 고향에 갔을 때, 오래된 브라더스를 보는 일들이 많다. 그때마다 느낀다. 어쩌면 내 주변에 있는 소수의 몇 명들은 하늘이 나를 위해 마련해놓은 사람들이 아닐까.
이번에는 소고기 오마카세를 사주는 브라더가 있었다. 말로만 오마카세라는 걸 들어봤지, 처음 먹어보는 것이었다. 감동이었다. 그 사람도 감동이고 소고기도 감동이었다. 돈이 어마무지하게 나왔었다.
남에게 뭔갈 받았으면 베기는게 내 체질이라 영 맘이 편하지가 않다. 그거 갚으려면 지금 하는 거 성공시켜야 한다. 이런저런 문제는 나날이 터지지만 아무튼 전체적으로는 쿵쾅거리면서도 잘 가고 있다.
요즘따라 죽음에 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다. 인간의 삶은 짧기 때문이다. 나의 부모도 언젠가는 죽게 될 것이며, 나또한 죽게 될 것이다.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들도 똑같다.
영화 '아포칼립토'를 보면 나오는 장면이 있다. 마야문명 때의 작은 부족이 나온다. 마을은 근처 문명화된 대규모 부족의 침략을 받고 약탈당한다. 그 때 부족장이었던 아버지 사냥꾼이 죽게된다. 바닥에 무릎은 꿇린 채, 목에 칼이 그어져 죽게된다. 죽기 직전 아들 사냥꾼을 바라보며 했던 말이 있다. 옅은 미소를 띈 표정을 하며 말했다.
아들아, 두려워 말거라.
피를 한거푸 쏟아내고는 머리가 땅에 꼬꾸라졌다. 그는 그렇게 죽게된다.
꼭 경제적인 성공만 보지 않더라도 타인의 존경심을 사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인간의 원초적인 본능을 거스르는 형태를 보인다.
죽음에 비굴한 자세를 취하지 않는다. 또는 위험을 무릎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끌리는 성욕과 물욕에 미련을 가지는 행위를 반복하며, 스스로의 전투력을 약화시키지 않는다.(나는 이 형태를 정말 자주 관찰한다. 내가 정말로 케어하는 또는 나를 물심으로 도와주었던 사람이 아니라면, 그냥 그렇게 살게 놔둔다. 그닦 가망이 없기 때문이다.)
또는 대다수의 무리의 움직임과는 반대로 간다.
그러한 소수의 인물들은 대중의 욕을 먹기도 또는 극찬을 받기도 한다. 어찌되었던 어떠한 형태의 뮤즈가 되는 것은 맞다.
지금 시대에 와서 그러한 양상을 보이는 가장 대표적인 형태가 사업과 투자이다. 사업은 아무나 하지 않는 것이며, 투자도 아무나 하지는 않는다. 더더욱이 전재산을 다 걸고 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레버리지까지 쓰는 사람은 더더욱 흔치 않다. 실제로 이익을 내어 성공시키는 경우는 더더욱 흔치 않다.
여기서부터는 내 생각이며, 나의 주장이다.
사실 남들의 존경심을 사기 위해 이러한 행위를 시작한 고매한 인간은 없다고 본다. 교과서나 메스컴에서 주로 겨냥하는 이상적인 가치에 대한 흠모가 유지되어 이러한 행위를 지속하는 인간도 없다고 본다.(잠시 발은 담궈볼 수 있으나, 이러한 수박겉핥기식으로는 고통의 세월을 인고할 수 없다. 실제로도 그러한 증명사례들이 주변에 숱하게 보인다.)
이러한 행위를 그만두지 않고 계속하는 인간은 진정한 깨달음을 얻은 인간이다. 그 깨달음의 종류는 다양할 수 있다. 종교적일 수 있고 예술적일 수 있고 나처럼 자본주의에 대한 깨달음일 수도 있다. 종교와 예술에 대한 깨달음 또한 자본주의에 대한 깨달음과 비교해도 그 논리성에 흠잡을 곳이 없다. (특히 불교가 그러하다. 수학 공식과도 같이 아주 논리적이다.)
한마디로 감정과 감성에 치우쳐서는 궁극의 경지까지 다다를 수 없는 것이라고 본다. 이성과 논리에 따랐을 때, 선한 인간도 그리고 지혜로운 인간도 또 강한 인간도 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평생을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리던 처칠 수상이 감정과 감성에 치우쳤다면, 나치의 침공을 막아낼 수 있었을까.
이순신 장군이 왜란 때 감정과 감성에 치우쳤다면,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었을까. 한글로 글을 쓸 수 있었을까.
응급외상의학과 전문의가 감정과 감성에 치우쳤다면, 피가 철철 뿜어져 나오는 환자를 살릴 수 있을까.
파일럿이 감정과 감성에 치우쳤다면, 난기류 속에서 이착륙을 안전하게 할 수 있을까.
소방관이 감정과 감성에 치우쳤다면, 최저 단가 입찰로 만든 장비를 입고 불구덩이 속으로 뛰어들겠는가.
실례가 증명하고 있다.
이것은 선한 것이며 악한 것이 아니다.
보기에 선해보이는 것이 실제로는 악한 것일 수 있다.
보기에 악해보이는 것이 실제로는 선한 것일 수 있다.
죽음이 임박했을 때, 당신은 어떤 삶을 살았노라고 스스로 인지하고 싶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