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며칠간 글쓰기가 너무 힘들었다.
일이 힘들어서 그런 것은 아니다. 글을 쓸 시간이 없어서 그런 것도 아니다. 애초에 시간이 없어서 뭘 못한다는 개념 자체가 없는 사람이라, 더욱이 말이 안 되는 것이기도 하다. 다만, 정말 글을 쓰기가 어려워서 글을 쓰기가 어려웠다.
지난 글에서 '찰리 멍거' 인터뷰를 언급했다. 모든 것은 미리 어느 정도 정해져 있다고 했던 그의 말에 진심으로 공감한 나는 글을 쓸 원동력의 대부분을 잃었다.
나는 뒤따라올 가난한 10대들 그리고 혼란스러움에 길을 잃은 동시대의 2030들에게 어느 정도 활로를 보여주기 위한 척후조 역할을 맡은 실전 기반 작가이다. 실제로 투자를 하고 실제로 사업자 내고 장사를 한다. 실패를 하고 성공을 한다. 앞서 언급한 독자들에게 어떠한 시각을 트이게 해주는 것에 있어서, '이것이 과연 의미가 있는 행위인가?'에 대한 진지한 고민에 봉착했다.
수줍은 아이는 수줍은 어른이 된다는 말. 그리고 호쾌, 불쾌, 거만한 아이는 호쾌, 불쾌, 거만한 아이가 된다는 '멍거'의 말이 상당히 임팩트가 있었다. 즉슨 아무리 내가 논리를 갖추어 글을 쓴다고 한들, 미리 정해진 각자의 기질은 각자의 인생 향방을 결정한다. 거기에 이의를 제기하기가 대단히 어렵다. '멍거'는 조만간 100세가 되는 하버드 로스쿨 나온 할배이고, '워렌 버핏'의 불알친구이다. 입지전적인 인물의 촌철살인에, 반박이 불가하다.
꿈을 파는 아무개 유명인사는 본인도 어렸을 때 소심하고 내성적이었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다시금 이성을 차리고 잘 생각해 보면, 그렇게 말한다고 한들 그의 유전자 속 저변에는 화르르 불타고 있던 무언가가 있었던 것이다. 모든 성공한 인물의 가슴속에는 그러한 불꽃이 있었고, 나 또한 그러한 부분을 타고난 인간이다. 또한 어느 정도 괜찮은 지능을 지니기도 했기에 성공의 과정에 있으며, 또 그 위치에 도달한 것이 객관적인 사실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의 이 시점에도 위의 논점에 대한 답을 정하지 못했다. 무엇을 어떻게 써내야 할지 모르겠어서, 차라리 그냥 솔직한 글을 써내려 보자는 생각으로 글을 적어보고 있다.
이 고민은 철학적이면서도 경제적인 고민이다. 읽는 이들의 인생 소프트웨어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을 생각했을 때, 철학적이다. 글을 통해 유용한 가치를 전달할 수 있느냐 없느냐에 대한 문제이기도 하므로 작가의 입장에서는 경제적인 고민이기도 하다.
이 고민의 답을 완성상태로 제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가닥을 잡아는 보았다. 리스크를 감내하고자 하는 불꽃이 유전자에 없는 이들은 가진 자를 억지로라도 부러워하지 말며, 억지로라도 합리화하며 사는 것이 현명한 것 같다. 마음속의 불꽃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타고난 그릇으로 견딜 수 없는 리스크를 택하는 삶을 살면 가지고 있던 것마저도 잃어버린 뒤, 재기 불능 상태에 머물러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것이 현명하다고 생각한다.
리스크를 감내하고자 하는 불꽃이 유전자에 있는 이들이라면, 마음껏 분노하고 마음껏 덤벼드는 것이 현명하다고 생각한다. 머리 아프고 복잡한 숫자 이야기를 떠나서, 그런 이들은 그렇게 살아내야만 죽기 전 후회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성공과 실패를 떠나서 하는 이야기이다.
나는 후자에 속하는 사람이며, 컨트롤의 여지가 있는 리스크 감내를 한계치에 둔 삶을 산다. 합리화하며 살기에는 사실을 직시할 수밖에 없는 지능 수준 정도는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렇다. 그리고 성격이 온순하지 못하기 때문에도 그렇다. 역시나 이들도 타고난 것이다. 노력해서 얻었다고 말할 수 없는 것 같다.
무엇이 되었든 좋은 점만 있지도 않으며, 나쁜 점만 있지도 않다. 무엇이 맞고 무엇이 틀리다고 말할 수도 없는 것이기도 하다.
가장 염려되는 점이 있다. 이렇게까지 솔직하게 쓰면, 타고나지 못한 이들이 절망에 빠질 수 있겠다는 점이었다. 이 점에 대해 조금 더 서술해보고자 한다. 이 내용 또한 누구의 주관이 아닌 사실이니 잘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다.
억지로 합리화하는 것도 능력이다. 이것은 지나친 리스크나 실패를 굳이 감내하지 않도록 만들며, 대중과 화합하고 그들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들 수 있게 하는 나름의 자질이 되어준다. 나 같은 사람은 억지로 합리화하는 행위 자체가 불가능한 뇌구조를 가지고 있어서, 대중과 화합을 못한다. 능력이 안 되는 것이다. 리스크와 실패를 감내하기 때문에 생명력을 스스로 쥐 파먹기도 한다.
타고나지 못한 점에 대해 조금 아쉬울 수는 있겠으나, 이것이 절망에 빠져버릴 정도의 사실은 아니라는 점을 상기시켜주고 싶었다. SNS가 판을 치고 있는 지금 이 세상에서는 기업가나 투자자 그리고 부자가 세상의 답이라는 점을 지나치게 강조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객관적으로 이들이 답이라고 하는 것이 사실임은 분명한 것이나, 강조가 지나치게 되고 있다는 점만을 지적하는 것이다.
어차피 가능성 없는 사람은 가능성이 없는 것인데도 굳이 눈앞에 너무 자극적으로 가져다 놓아 불행해질 필요가 없는 사람들을 불행하게 만들어 버린다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기업가와 투자자가 된다면, 누가 노동을 맡을 것인가. 원래 노동자의 머릿수가 압도적으로 많아야 하는 순리임에도 말이다. 이건 세상 탓이지 개인 탓은 아니라고 본다. 과도한 마케팅으로 인해 기업가와 투자자가 너무 미화되고 있는 것도 이상하다. 기업가와 투자자는 승리를 위해서라면 목숨을 거는 사람들이며, 목숨을 걸면 자연히 싸움이 지저분하게 되어있다. 지저분한 인간들이 왜 이렇게 멋진 인간들로 둔갑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 점을 깨닫지 못했던 과거에 나 또한 글에서 애송이 같은 소리를 했었는데, 지금 생각하니 부끄럽다. 그러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 글에서 공론화한 솔직한 논점은 앞으로도 꾸준히 사색하며 답을 찾아볼 것이다. 이것의 답을 정리해야만 나의 글이 이어질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이다. 더 수준 높은 글을 제공하기 위해서도 그렇다.
그래도 나의 글을 읽는 이들 중에는 유전자 속에 세상을 공격하여 토벌하고자 하는 용맹한 무사의 정신이 있는 개개인이 있을 것이다. 비록 '멍거'의 말에 이의를 제기할 수가 없어서 저런 솔직한 입장을 쓰기는 했지만, 방금 언급한 소수의 사람들에게는 전하고픈 내용이 있다.
요즘 참 전쟁하는 나라들 많다. 얼마 전 일하다 점심시간에 우연찮게 뉴스를 봤다. 무너진 콘크리트 더미에서 맨발에 슬리퍼 하나 달랑 신고 꾀쬐쬐한 채로 엉엉 울고 있는 남자아이를 보았다. 이스라엘 가자지구의 폭격에서 아버지와 형을 잃었다고 하면서.
지금 이 나라는 자살률 최다, 출산율 최저를 자랑한다. 일 안 하고 그냥 쉰다는 청년층은 몇 십만 명에 달한다. 대한민국은 세계 상위 5% 이내의 경제대국이다.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가.
나는 지난 사업을 말아먹은 뒤 지체 없이 주 6-7일 알바를 뛰고 있다. 이렇게 하고 집에만 처박혀 있어도 월 130-150 만 원 저축이 가능하다. 앞으로의 청사진은 알바를 뛴 필드 경험과 최소 밑천을 가지고 내년 1분기 말, 새로운 사업에 도전해 보는 것이다. 거기서 나온 잉여소득으로 주식 투자에 힘을 보태는 것이다.
우리 머리에는 미사일이나 전투기가 날아다니지 않는다. 거리에서 총성이 울리지도 않는다. 별안간 가족의 소재를 알 수 없게 되거나, 야채죽 하나 받아보려고 몇 시간 줄을 서서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 또는 당장의 목숨이 촌각에 달려있는 것도 아니다.
한국의 사회적 구조는 문제가 많다. 그러나 개개인도 문제가 많다는 점도 자각할 필요가 있다. 여자친구한테 차였다고 몇 달을 죽 끓이고 앉아있는 놈들도 문제고, 아무 이유도 없이 집에만 있는 다 큰 원숭이들도 문제라고 본다. 눈과 귀가 있다면 다른 나라에서는 전쟁이 터지고 있다는 것쯤은 알 것이 아닌가.
이렇게 팩트 폭격을 하면 구독자가 떨어져 나갈 수 있다는 점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작가로서 할 말은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돈을 잃는 것은 그닦 별 것이 아니며, 건강을 잃는 것은 뭔가를 잃는 것이지만, 캐릭터를 잃으면 모든 걸 잃어버리는 것이라는 말을 어디선가 보았다.
나는 2030이 보다 강인하고 선하며 개개인의 공동체에 미덕을 행하는 명예로운 인물들이 될 것을 독려하고, 405060에게는 자신의 힘으로 일어서보고자 하는 2030에게 관용을 베풀 것을 독려하기 위해 글을 쓴다. 그렇게 하여 세상을 좀 더 살만한 곳이 되도록 만드는 데에 조금이라도 일조하려고 한다. 그것이 내 작가 의식이다. 캐릭터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