땡전 한 푼 없는 상태에서 평균 이상을 치고 올라 상위권으로 진입하기 위해서 내가 해왔던 그리고 하고 있는 정신 모델은 무엇일까.
이 정신 모델은 증명된 것이다. 거렁뱅이 상태에서 평균 이상으로는 이미 진입했기 때문이다.
사람의 물리적인 위상이 발전한다는 것에는 반드시 그럴만한 사유가 있어야 한다. 자연스러운 움직임이 아니기 때문이다. 자연스러운 움직임이란, 떨어지고 하강하고 부서지고 부패되어 없어지는 것을 뜻한다. 지구에는 중력이 작용하기 때문에 높이 있는 것은 아래로 내려오게 되어있다. 무엇이든 시간이 지나면 풍화 침식작용으로 부서져 가루가 되고 서서히 부패가 되는 것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고로 내 정신 모델은 앞서 말한 그 사유가 된다.
성공하고 싶었고, 지금도 성공하고 싶다. 누구보다도 간절하게. 숨이 넘어갈 듯한 사람이 공기를 애타게 찾는 것과도 같은 정도로.
나는 내가 그렇게 똑똑한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중대한 판단을 앞두고서는 스스로를 한 두 번씩 의도적으로 의심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이미 성공을 이루고 유지하며 더 발전시키고 있는 사람들의 정신 모델을 복사해 오며 살아왔다. 그들은 현실 증명된 데이터이기 때문이다.
성공자는 극소수이다. 무작위 100명이 있으면, 그런 사람 한 사람을 볼까 말까 한 통계적 수치이니 그렇게 말할 수 있다. 당연히, 그들의 정신 모델은 보통의 사람들과 차이가 극명하다. 차이가 극명하기 때문에 그 내용을 들은 보통 사람들은 거부반응을 일으킨다.
이는 '워쇼스키 브라더스'의 영화 '매트릭스'에서도 표현된다. 소수의 '눈을 뜬' 자들이 당신이 노예 상태라는 것을 일깨워주지만, 주인공은 격한 거부반응을 보인다.
사실을 사실 그대로 관찰하려기보다는, 자신이 믿어왔던 것을 고수하려는 본능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자신을 갉아먹거나 퇴보하거나 정체하게 만드는 개념일지라도, 고수하고 보호하려는 본능이 있기 때문이다. 자연스러운 상태인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성공을 하고자 하는 이는 자연스러운 상태로 있으면 목표한 바를 이룰 수 없다.
자수성가 인물 중, 기를 쓰고 노력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 우연찮게 자기도 모르는 사이 아다리로 성공을 한 사람은 없다는 것이다.
자연 상태로 머문 것이 아닌 것이다.
나는 원한다.
내 글이, 가난한 태생들 중 발전과 성공을 바라는 후발주자들에게 제대로 된 기여를 하게 되는 것을. 제대로 된 기여란, 실제로 물리적인 발전이 있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실제로 돈을 벌고, 번 돈으로 자기 자신과 공동체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그들이 정신승리나 자위질을 하는 모습은, 내가 바라는 그림이 아니다. 거기에 무슨 제대로 된 의미가 있나. 가족이 아플 때 최고의 의료 서비스를 구매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가족이 사고를 당했을 때 최고의 뒷수습 서비스를 제공받지 못하게 될 것이다. 치안과 시설이 좋은 거주 시설을 누리지 못하게 될 것이다.
저런 상황은 누구에게나 오기 마련이고, 저럴 때도 정신 승리나 하고 있을 것이라는 말인가? 그러면 그런 사람은 책임감 있는 사람인가?
내가 지면에서 '우울증은 정말로 사실이니, 그것을 믿고 병원 가서 약을 먹으며 기나긴 시간을 적당히 쉬면서 여유롭게 살아낼 필요가 있다.'라든가.
'근로노동자는 노예가 아니라, 자유인이다. 평생 거기에 머물러 있으면, 앞으로의 문제가 모두 바람직하게 해결될 것이니 자신이 있는 자리에서 보람을 찾으며 최선을 다하라.'라든가.
'남들처럼 여행 다니고, 놀 거 놀아도 돈과 발전, 문제해결에 큰 장애는 없을 테니 쉬엄쉬엄 해도 괜찮다.'라는 말을.
글에서 해야 하나?
성공과 승리가 그렇게 만만한 일인줄 아는가. 목숨걸고 해야하는 일이다. 과거 신분제도에서는 신분 상승을 위한 난을 일으키면 모가지 정도는 내놓았어야 했고, 지금 시대에서는 망하면 거지 되서 거리에 나앉거나 빚쟁이에게 쫓기는 추노의 삶을 살게 되는 것으로 연장이 되었다.(파산한 내 친부가 그랬던 것처럼.)
저런 매가리 없는 말들은 사실이 아닐뿐더러, 백번 양보해서 설령 저들이 모두 사실이라고 치더라도.
저런 것들을 믿지 않고, 자신에게 파워를 주는 전략적인 이념을 믿고 사는 것이 성공과 발전에 훨씬 도움이 된다. 왜 자기 자신의 마음을 당신의 적군으로 돌려서 스스로를 공격받도록 하는가. 우방으로 만들고, 가능한 가장 큰 지원 에너지를 얻는 게 여러분 개개인에게도 이득이 되지 않겠는가.
이 길은 대다수가 가는 길이 아니다. 그래서 내 글도 대다수가 받아들이기 어려운 글이다. 성공자들의 정신 모델이란 게 원래 그렇다. 정상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다른 위상이 물리적으로 실현될 수 있는 것이다.
글을 읽는 독자는 자신이 읽고 싶은 것을 읽고, 읽기 싫은 것은 읽지 않을 권리가 있다. 글을 쓰는 작가는 자신이 쓰고 싶은 것을 쓰고, 쓰기 싫은 것은 쓰지 않을 권리가 있다.
이렇게 쓰면 구독자가 떨어져 나갈 수도 있겠지만, 그것이 내 자유 권리를 누린 것에 대가라고 한다면, 감내하겠다. 갈 사람들은 그냥 지나가면 된다.
헤밍웨이는 말했다. 가장 솔직한 글이 가장 좋은 글이라고.
진정 성공을 바라는 사람이라면. 패배자가 아닌 승자가 되고 싶다면.
극소수인 승자의 말을 듣고 믿는 게 맞지 않겠는가.
이것도 어렵다면 가망이 있다고 말할 수 있는가.
나는 끊임없이 도전하고 시도하고 포기하지 않기 때문에, 여러 가지 머리 아프고 안 좋은 일들이 상시적으로 닥친다. 그럴 때마다 생각한다.
'좋다'라고.
여자와 헤어지면, 이제 내 일에 더 집중할 수 있겠다며 좋다고 생각한다. 작은 목표를 이루는 것이 망하면, 다른 작은 목표를 시도해볼 시간이 생겼다며 좋다고 생각한다. 몸이 아프거나 예비군에 끌려가거나 하는 일이 생기면, 평소에 못해봤던 사색을 잔뜩 해볼 수 있겠다며 좋다고 생각한다. 우울감이 찾아들면, 이 같은 상태에서도 내가 어디까지 돌파할 수 있을까에 대한 테스트를 해볼 기회가 생겼다고 좋다고 생각한다.
안 좋은 일이 일어났다고 죽 끓이며 시간 낭비하지 않는 정신모델인 것이다.
보통 사람들은 그런 일이 일어나면, 시간을 흘려보내게 된다. 그런 시간마저도 생산성 있는 활동을 멈추지 않는 자가 당연히 앞서 나가는 것이다. 한 뼘이라도 더 앞서 나가는 사람이 승자가 된다.
'1 + 1 = 2' 같은 난이도의 이야기이다.
그래서 이 같은 생각을 하는 작가이고, 이 같은 글을 쓰게 되는 것이다.
이건 나쁜 게 아니다. 승리에 최적화된 것뿐이다.
나는 토요일인 오늘도 글을 썼고, 한 뼘이라도 더 나아간 것이다.
Kasabian - Club foot
https://www.youtube.com/watch?v=EzXf-lOXsn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