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건강의학과는 아직 아니었다.
엄마 아빠는 그 말을 믿지 않았다. 정확히는, 믿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검사에 아무것도 안 나와서 의사들이 그냥 하는 소리라고 했다. 그러니까 우리가 직접 찾아보자고 했다.
그렇게 신경과에 갔다. 신경외과에도 갔다. 마지막으로 심장내과에 갔다. 며칠에 걸쳐 몇 번이나 돌았는지 이제 잘 기억도 나지 않는다. 새로운 검사를 받을 때마다 혹시 이번엔 뭔가 나오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있었다. 차라리 뭔가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 이상하게 들릴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그랬다. 아프다는 증거가 필요했다. 나한테도, 부모님한테도.
신경외과 문을 열었더니 커다란 몸집에 호탕하게 생긴 의사 선생님이 앉아 계셨다. 왠지 이분이라면 뭔가 찾아낼 것 같다는 근거 없는 기대가 생겼다.
내 증상을 듣던 선생님이 말했다.
"음, 보통은 반실신까지 오게 되면 신경과로 가시는 게 더 나을 수도 있는데, 검사 한번 하시고 결정하셔도 됩니다. MRI가 더 정확하게 나올 거예요. 목 찍을래요, 머리 찍을래요?"
'그걸 제가 선택해도 되는 건가요, 감히.'
의학적으로 완전히 무지한 나는 잠깐 고민했다. 목에 뭔가 있는 것보다 머리에 뭔가 있는 걸 발견해서 빨리 없애는 게 훨씬 나으려나. 아무런 근거도 없는 이 논리로 머리 MRI를 선택했다. 촬영 내내 좁은 기계 안에 누워서 드르륵드르륵 소음을 들으며 속으로 빌었다.
제발 뭐라도 나와라. 생명에 지장은 없지만, 그래서 네가 그랬구나,라고 나를 포함한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톡 떼면 끝날 작은 실오라기 하나만 나와다오. 진짜로.
비용은 120만 원 언저리. 연차 비용까지 합치면 더.
정신이 아프단 말도 서글픈데, 내 헐벗은 지갑까지 덩달아 앓아눕고 있었다.
그리고 어딘가에서 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괜찮다니까 그러네. 너 혹시 그냥 아프다고 믿고 싶은 거 아니야?
그런가. 정말 그런 걸까. 혼란스러운 와중에 결과가 나왔다.
정상이었다.
아무것도 나오지 않아 다행스러운 와중에도 돈이 참 아깝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뭐가 나왔다고 기분이 좋을 것 같지는 않았다.
적어도 지금 내가 정신병이 아니라는 건 확실하게 증명할 수 있었겠지만.
그래도 부모님은 포기하지 않으셨다. 신경과 선생님이 넌지시 심장 쪽 문제일 수 있다며 심장내과로 가보라고 했다. 종합병원으로 온 게 얼마나 다행인지. 그게 아니었으면 벌써 이동 시간만 반나절은 됐을 텐데, 여기는 부모님과 셋이서 계단만 열심히 오르락내리락하면 되는 거니. 어쩌면 이 병원 순례에서 유일하게 잘한 선택이었다.
심장내과에서는 홀터 모니터를 붙여줬다. 하루 종일 심전도를 기록하는 기계로, 가슴 곳곳에 전극을 붙이고 허리춤에 작은 기계를 달고 다니는 방식이었다. 이걸 붙이고 일상생활을 하면 심장이 언제 어떻게 나대는지 고스란히 찍힌다고 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하루 종일 심장이 얌전했다. 픽하면 쿵쾅거리던 그 심장이, 기계를 붙인 날만큼은 언제 그랬냐는 듯 조용히 제 할 일만 했다. 마치 부모님 앞에서 눈치를 보며 슬그머니 꼬리를 내리는 얄미운 막내 같았다. 평소엔 그렇게 난리를 치더니. 증거를 남길 기회를 제 발로 걷어찬 것이다. 배신자.
이렇게 아무것도 나오지 않으면 정말 꾀병이라고 할 것 같았다. 우습게도 멀쩡한 게 억울했다.
아프고 싶은 사람은 세상 어디에도 없겠지만, 정말 아픈데 꾀병이라고 치부당하고 싶은 사람도 똑같이 없다.
주말에 붙인 게 잘못이었을까. 차라리 출근할 때 붙이고 가서 사무실 한가운데서 춤이라도 춰서 내가 진짜 문제가 있음을 증명하는 게 나았으려나. 정말 멍청한 생각인 걸 알면서도, 진지하게 고민했다.
결과는 예상했던 대로였다.
"깨끗하네요."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이제 좀 익숙해졌거든요.'
심장내과 선생님이 차트를 훑다가 고개를 들었다.
"머리 쪽은 검사해 보셨어요?"
종합병원은 다 공유되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 보다. MRI도 깨끗하다고 했더니, 선생님이 내 얼굴을 한참 빤히 보았다. 무언가를 고르는 것 같기도 하고, 조심스럽게 내려놓는 것 같기도 한 표정으로. 그러다 살며시 입을 열었다.
"정신건강의학과에 가보셔야 할 것 같아요. 이런 증상, 요즘 청년들한테 흔해요."
흔하다고. 그 말이 묘하게 걸렸다. 흔한 거라면, 나는 왜 이렇게 힘들지. 흔한 거라면, 나는 왜 이걸 혼자 이렇게 오래 버텼지. 그리고 흔한 거라면, 왜 아무도 진작 말해주지 않은 거지.
부모님은 그래도 안 된다고 했다. 정신과에 가면 꼬리표가 붙는다고. 나쁜 뜻이 아니라는 걸 나는 안다. 60대가 살아온 세상에서 그 편견은 그분들 잘못이 아니었다. 그래서 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대신 내가 좋아하는 바다로 드라이브를 갔다. 끊임없이 맛있는 걸 먹었다. 부모님은 자꾸 마음을 굳게 먹으면 괜찮아진다고 했다. 그게 다 생각 때문이라고 했다. 맞는 말이기도 하고, 틀린 말이기도 했지만, 그 말을 반박할 기운조차 없었다.
바다는 여전히 좋았다. 그게 또 이상했다. 이렇게 힘든데 파도 소리는 왜 여전히 좋은 건지. 몸은 다 망가진 것 같은데 눈은 멀쩡히 노을을 예쁘다고 받아들이고 있었다. 고장 난 게 맞긴 한 건지.
백미러로 나의 시들시들한 모습을 보는 부모님의 눈빛에서는 말이 들려왔다.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아도 들렸다. 그 눈빛이 괜찮다는 말보다 더 무거웠다. 나는 뒷자리에 앉아서 창밖을 보며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아질게요,라는 말 대신.
그렇게 몸은 점점 더 나빠지고 있었다. 정신이 아프다고 했는데, 이상하게도 온통 몸으로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