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을 하다가 갑자기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나는 곧 죽는 줄 알고 울며불며 응급실로 뛰어들어갔다. 침대에 누워 콧물 눈물 줄줄 흘리며 온갖 생각을 다 했다.
검사 결과는 전부 정상이었다. 얼굴은 하얗게 질리고 손발은 얼음장처럼 차갑던 나에게 의사가 왔다. 드디어 내 차례구나.
"음, 검사 결과에 딱히 이상은 없습니다. 다 정상이에요. 어떻게 하시겠어요? 하고 싶은 검사 있어요?"
의사 입에서 무슨 병명이 나올까 잔뜩 긴장하고 있던 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벙쪘다. 메뉴판도 아니고.
그런데 생각해보니 응급실에 들어올 때까지만 해도 숨 하나 제대로 못 쉬고 곧 죽을 것 같던 내가, 지금은 언제 그랬냐는 듯 멀뚱멀뚱 누워서 의사를 쳐다보고 있었다. 이래선 나 지금 어디 아파요, 라고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내가 미쳤다고 이 비싼 응급실에 꾀병이나 부리러 뛰어들어온 것도 아닌데. 괜히 의사 눈치가 보여서 나보다 더 심각한 누군가를 위해 이 침대를 빨리 비워줘야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아, 괜찮아요. 다 정상이면 그냥 가도 될 것 같아요."
별것도 아닌 일로 뭐가 그렇게 무섭다고 살겠다고 달려와서 링거만 맞고 가는구나. 속으로 자책하며 일어나려는데, 의사가 덧붙였다. 아주 무덤덤한 표정으로 — 어쩌면 한심해하는 표정이었을지도 모르지만, 그것조차 내 편견일 수 있다 —
"음, 공황인 것 같으니 정신건강의학과에 가보세요."
무섭기보다 기분이 이상했다. 잘 살고 있진 않아도 남들이랑 똑같이 평범하게 지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정신병이라고? 왜?
그사이 부모님이 헐레벌떡 뛰어오셨다. (사실 한 분은 어쩔 수 없이 밖에서 기다리셨지만, 애타는 마음은 똑같았을 것이기에 부모님이라고 칭하겠다.)
지금 응급실이라고, 코나 훌쩍거리며 곧 죽으면 어떡하냐는 어처구니없는 말만 늘어놓은 자식의 전화를 받고.
침대에 누운 나를 보며 안도하셨다가, "정신과 가보래.." 라는 말을 듣는 순간 내 보호자의 표정이 빠르게 굳었다. 아마 밖에서 기다리던 다른 한 분도 그 소식을 전해 듣는 순간 표정이 똑같이 굳었을 것이다.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 표정을 나만 봐서 다행이었다. 열심히 굴러가던 쇠똥구리가 본인의 것을 급작스럽게 빼앗겼을 때, 딱 저런 표정을 짓지 않았을까.
말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그 표정. 죄송하고 민망하고 부끄러워서, 이런 말 하면 안 되는 줄 알면서도 지나가는 의사 선생님에게 마음속으로 수없이 외쳤다. 차라리 지금이라도 조금 더 검사해보자고 말해줘요. 그렇게 무심하게 넌 이제 나가라는 식으로 말하지 말아줘요.
더 이상 나에게 내릴 진단은 없다는 듯 의사는 이미 다음 침대로 향하고 있었다. 보호자는 말없이 내 옆에 앉아 있었는데,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는 건지, 아니면 너무 많은 말이 머릿속을 맴돌아서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 건지 알 수 없었다. 그 침묵이 어떤 말보다 더 무거웠다.
깁스를 하고 있는 아저씨, 계속 게워내는 할머니, 끙끙 앓는 소리가 끊이지 않던 성별 모를 어떤 환자 사이에서, 나는 눈치 없는 불청객이 되어 누워 있었다. 다들 진짜 아픈 사람들이었다. 나만 빼고. 최악이었다.
결제를 하고 나오면서도 계속 그 생각이 맴돌았다. 분명 눈 감으면 그대로 모든 게 끝날 것 같았는데. 심장이 터질 것 같고, 손이 벌벌 떨리고, 숨이 막혔는데. 그게 다 정신 때문이라고? 몸이 아픈 게 아니라 마음이 아픈 거라고?
내 인생에 정신병이라는 단어가 등장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그냥 나는 평범하게 살고 있었는데. 근데 정신이 몸을 이렇게 만들 수 있다는 게, 솔직히 아직도 이상했다. 그럼 내가 아팠던 건 뭐가 되는 거지.
문제는 이제 회사였다. 멀쩡하게 일하던 직원이 갑자기 가슴을 부여잡고 휘청이며 나갔는데, 뭐라고 설명해야 하지. "공황이랍니다." 이 말을 어떤 표정으로 해야 '꾀병 아니에요'가 전달될 수 있을까.
어디 팔이라도 부러졌으면 깁스를 보여주면 되는데. 내 마음을 끄집어내서 눈앞에 들이밀 수도 없는 노릇이잖아.
십만원은 가볍게 나올 응급실 비용과 회사 복귀, 두 가지 생각에 벌써부터 속이 울렁거렸다. 차라리 누가 "저혈압으로 인한 어지럼증입니다" 라고 말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당연히 저혈압 따윈 있지도 않은 건강한 육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