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혼자서 잘 놀아요!
초등학교 1학년 남아, 검사의뢰가 들어왔습니다.
검사 동기는 '아이가 과학에 관심이 많고 책을 많이 읽어 그쪽으로 이끌어주고 싶고, 수학을 못하는 이유를 알고 싶어서'였습니다.
첫인상은 낯가림이 있어 질문에 대답을 잘하지 않았고 시선을 회피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검사실에 입실해서는 금방 적응하였고 안정감 있게 검사를 시작하였습니다.
전반적인 수행은 빠른 편이나 실수가 많은 편이었고 어려운 과제에서는 대충 넘어가려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어휘나 언어이해 능력이 약하고 무엇보다도 청각적 주의력이 약하여 숫자를 2,3개 따라 하는 것도 실수가 있었습니다. 시각적 능력은 우수하여 시각적 변별 능력이나 관찰력이 탁월했습니다.
검사를 끝낸 후, 아이에게 필요한 부분은 듣기 능력과 언어이해, 어휘력, 언어적 사고능력이며 이 부분을 염두에 두고 상담에 들어갔습니다.
먼저 아이의 능력이 평균 하 지능 수준으로 체크되어 학교 생활의 전반적인 부분과, 외부에서 하는 수업을 잘 따라가는지, 언어적 이해능력에 대해 어머니의 생각을 여쭈었습니다. (지능 검사도 시험이기에 어린아이가 자신의 능력을 보여주지 못해 약하게 나타난 부분이 있을 수 있으니 평소 가정에서 관찰된 수행능력, 태도도 함께 고려하여 상담합니다.)
이때 어머니께서는 제가 생각하지 못한 대답을 하셨습니다.
아이가 어려서부터 책을 매우 좋아하였으며 혼자서 몇 시간을 본다고 하였습니다. 언어 수업도 외부에서 따로 받고 있으며 아이는 도서관에서 하루 종일 있고 싶다고 합니다.
부모님과 대화도 스스럼없이 하며 경험한 일에 대해서도 잘 얘기하고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친구들에게도 잘 표현한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이 아이는 왜 언어가 약한 것일까요?
웩슬러 검사에서 언어이해 능력에 포함된 소검사 중 어휘, 이해 소검사가 평균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듣기 능력은 낮음 수준으로 도움이 필요한 능력이고요.
의아함을 가지고 상담을 계속 진행하였으나 곧 그 답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아이는 글을 빨리 깨쳤고 어려서부터 혼자서 책을 읽는 것을 좋아했다고 합니다. 주로 과학, 지식책을 좋아했으며 그림이 있는 책을 보는 편입니다.
->여기서 찾을 수 있는 부분은, 아이는 시각 능력이 탁월합니다. 책을 읽으며 여태껏 시각 추구를 해왔습니다. 책을 읽어왔다고 표현하기보다는 '책을 그저 봤다'라고 표현하는 게 맞을 것입니다.
문자를 읽을 때 이해하면서 읽는 사람도 있지만 문자를 먼저 보고 다시 읽으며 이해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제가 그러한 편입니다. 글자를 읽을 때 마음먹지 않는 이상 글자만 읽힐 때가 많아 시간이 걸리기도 합니다.
아마도 이 아이는 그렇게 책을 읽어왔을 것입니다. 아이니깐 저처럼 이해하려는 노력을 빼고 글자만 읽었겠지요. 혼자서 책을 잘 보는 아이에게 당연히 부모님은 방해하지 않기 위해 개입하지 않으셨고 잘하고 있다고 느끼셨을 것입니다. 저라도 그랬을 것 같습니다.
아이는 감수성이 예민하여 다른 사람의 생각과 느낌을 잘 파악할 수 있으며,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표현하는 것도 어렵지 않았습니다. 풍부한 감수성으로 좋은 관찰력도 가졌고요.
하지만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말하는 것도 언어의 표현력이라 중요한 부분이지만, 주제에 관한 내용을 이해하고 그 주제에 대한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말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더욱이 학령기에 들어간 아이라면 자신이 하고 싶은 말 이외에도 질문을 받고 그 질문의 의도를 파악하고 필요한 말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아이는 그 부분이 빠져있었던 것입니다.
단순한 질문에도 의도를 파악하지 못하고 자신이 하고 싶은 얘기만 하려는 경향을 보이며 결국 좋은 표현력을 가졌다고 평가받기에는 어렵게 된 것이지요.
이 아이는 무엇을 놓쳤을까요?
그건 '언어적 상호작용이 필요한 시기에 혼자서 원하는 것을 추구하며 놀이했다.' 일 것입니다.
혼자서 잘 놀고 책 보고 잘 지내는 아이, 부모가 돌보기 너무 편합니다. 문제집도 쥐어주면 혼자서 그럭저럭 푸는 것 같고 밖에서도 큰 문제없이 잘 지내니 괜찮다고 느끼실 것입니다.
하지만 어려서부터 혼자 세상을 알아간 아이가 얼마나 이 세상을 알게 되었을까요? 혼자서 책을 읽은 아이가 얼마나 그 책을 이해했을까요?
혼자 하는 습관은 너무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혼자서 제대로 하는 습관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릴 때는 책을 읽어주며 책을 통해 사고하는 방법, 대화를 하며 언어로 사고하는 방법, 알게 된 지식이 있다면 그것을 좀 더 확장하기 위해 더 많은 책을 제공하거나 체험활동을 제공하는 방법, 문제집을 푼다면 문제집을 푸는 의도를 알려주고 함께 그 문제를 알아가는 과정을 알려주며 문제집을 풀었다가 아닌 문제를 해결했다로 생각하는 방법을 알려주셔야 합니다.
이 아이는 혼자서 모든 걸 하다 보니 모르는 건 대충 하려는 습관, 주의력은 수시로 떨어지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수학에서 연산을 어려워하는 것도 언어적 문제에 기인한 것이지요.
이번 케이스는 저에게도 독특하게 다가왔던 케이스였습니다.
혼자서 잘하는 아이, 책을 몇 시간도 혼자 읽는 아이, 문제가 있을 거라고는 생각 못했을 것입니다.
우리 아이가 혼자서 잘하고 있다면, 그 나이에 맞는 발달을 잘 이루며 혼자서 하고 있는지, 혼자서 무얼 하고 있는지 잘 관찰하시어 놓치는 부분 없이 아이에게 도움이 되는 양육을 하시길 바랍니다.
더 많은 글을 보시려면 : 라엘엄마의 육아일기 (withlae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