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학회에 간다. 나는 "문자와 이미지의 변증법: 1920년대 삽화와 웹툰, 웹소설로 보는 문학과 미술의 자리"에 대한 토론자로 참여한다. 토론에 참여하는 강의실의 발표문을 찾아보니 웹툰과 웹소설 드라마 문학과 관련된 텍스트들이다. 우연히 만화평론을 시작해서 3년이 지나니 자연스럽게 이런 주제와 학회에 참여하게 되는 것 같다. 전혀 의도하지 않았는데, 이렇게 몸은 흐른다.
사람들은 내가 만화 평론을 하니 문학은 안 읽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 듯하다. 그렇다면 나는 역으로 다음과 같이 반문하고 싶다. 동시대 작가들이 어떻게 활자만 보고 세상을 쳐다볼 수 있겠느냐고 말이다. 그러니 함께 호흡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야 문학도 잘 읽을 수 있다. 혐오와 편견에 대해 싸우는 문인들이 무슨 이유로 오로지 문학 하나만 파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물론, 하나만 파기도 쉽지 않다는 것을 잘 안다. 하지만 흐름 정도는 우리가 읽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이 흐름을 이해하는 방법은 글을 쓰는 것 밖에 없지 않은가. 이러한 맥락에서 만화평론 쓰기는 시작된 것이다.
사족으로 말을 덧붙인다. 최근에 출간되는 모든 시집을 읽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대부분(물론, 글 쓰고 싶은 텍스트도 있다.)의 시집이 너무 싱거워서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 매력적인 텍스트를 만나지 못했다. 고만고만한 작품들이 대부분이다. 어떻게 글을 쓰라는 건지 그 이유를 대체 모르겠다. 우리 좀 솔직해 지자. 물론, 애정을 갖고 글 쓰는 것은 다르다. 애정을 마음에 품으면 덜 좋은 것도 아름답게 느낄 수 있으니까. 그래도 이제는 조금 더 나은 작품들을 만나고 싶다. 이런 마음을 품고 있으니 내가 직접 시를 쓰고 싶어하는 것이 아닐까. 무엇인가 안에 꿈틀 거린다. 누군가는 평론가가 무슨 시를 쓰냐고 반문하겠지만, 이런 편견마져 뚫어 버리고 싶다. 불가능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