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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나페 Oct 13. 2022

가능성의 무게 아니길 바랐다

상황은 <그거>라고 흘러갔다

난생처음 한 피수혈 고추장 팩 같다


 비교적 빨리 피가 준비가 되었다 이때 나는 몰랐다 이렇게 빨리 준비되어 나에게 온 피들이 내가 <응급> 상황이기 때문에 빨리 수혈하게 된 거란 걸 그저 보통의 수준인 줄 알았다. 나에게 주어진 수혈은 혈색소 두팩과 혈소판 한팩. 현재 코로나 때문에 피수혈이 원활하지 않다. 코로나 때문에 헌혈하는 사람들이 현저히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지금 수혈하려면 입원기준 새벽에 피검사를 하고 수치상 수혈이 필요하다 하면 혈액원에 연락하여 가능한 피가 있는지 확인 후 병원으로 오게 되는데 이 과정이 느리다 응급환자에게 먼저 가기 때문이다.


 점심시간에 준비가 되어 수혈이 가능하면 빨리 오는 거고 오후가 되면 무난한 수준이고 저녁이면 늦게 오는 거다 피수급이 원활하지 못하면 다음날로 미뤄질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수혈을 받아야 하는 환자는 침대에서 내려와선 안된다 돌아다녀도 상관없으나 단언컨대 겪어본 결과 화장실갈거아니면 침대에서 내려오는 게 좋은 선택은 아니다 혈색소가 낮으면 빈혈, 어지럽고, 넘어지기 쉽고 전에 적은 것처럼 몸상태가 이상해진다 혈소판이 낮으면 가만히 있어도 점상 출혈이 난다 그런 상황에서 어디 부딧친다? 난리가 나게 된다 왜냐 혈소판이 낮은 경우 지혈이 쉽게 되지 않기 때문이다


 수혈을 하지 않는 마지노선은 혈색소 8, 혈소판 30,000이다.(각 병원마다 차이가 있다.)이 수치의 '미만'이 되면 수혈을 하게 된다.


 고등학교 올라가서부터 헌혈하러 가면 이상하게 피가 떠서 그때부터 하지 못했던 헌혈. 그때부터 시작된 빈혈기 때문에 아 무지했던 내 덕에 몸상태가 영 안 좋구나 앞으로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조심해야지 호되게 당하는구나 생각했다 내가 맞을 거라곤 생각도 하지 못했던 피수혈 빨간색의 혈색소부터 시작하게 되었다 나도 한때(조금이지만) 헌혈을 좀 해봤던 사람으로서 느낌이 이상했다 피를 필요한 사람에게 나의 건강한 피를 준다고 생각했던 거 같다. 그래서 그런지 내가 받는 입장이 되니 기분이 묘했남의 피가 내 몸에 들어온다 생각하니 어쩐지 속이 조금 울렁거렸다. 빨간 혈색소는 마치 진-한 고추장 팩 같았다 되직하지 않고 묽으니까 초고추장?



상상해보지도 못한 그 이름 백혈병


 이제 수혈만 받으면 내 모든 검사와 처우는 끝난다고 그렇게 생각했다 씨티상 출혈도 없었고 대변검사도 이상반응은 없었다.(언제 했는지 기억도 안 나는 소변검사도 했었다) 각종 검사에 지처 그저 빨리 몸 상태가 좋아지길 바라며 침대에 누워 조금은 쌀쌀한 응급실에 이불을 꼭 덮고 있었다. 이제 할 건 다 끝나고 수혈만 하면 되니 남편은 긴장이 풀렸는지 담배를 피우러 간다고 편의점에 들러 배가 고플 내게 죽과 자기가 마실 음료를 사 오겠다고 자리를 비웠다. 긴장했더니 배가 안 고프다나 뭐라나 렇게 혼자 누워있는데 차림새가 남들과 다른 복장의 의사가 왔다. 응급실에 당직의사였다.


 원래 피검사는 내일 결과가 나오는데 그쪽에서 급하게 연락이 왔다고 피에 안 좋은 게 나왔단 얘기를 하며 지금 그 결과 값의 가능성에 대해 설명해줄 건데 1번과 2번이 있다고 내게 말씀해주셨다. 그래 뭐가 됐든 몸이 안 좋으니 항생제 알레르기에 대한 거겠지 생각하며 경청했다.


1번 항생제로 인한 일시적인 이유

2번 항생제가 아닌 기타 다른 질병인 이유

3번 백혈병일 가능성


? 분명 1번과 2번이라고 했다. 그런데 3번 백혈병일 가능성이라니? 1번 얘기를 들을 때 그래 그거겠지 2번 얘기를 들을 때 오잉? 했고 생각을 이어가기도 전에 우물쭈물하며 조심스럽게 꺼낸 가능성 3번. 그리고 그 <이름>. 그 '이름'을 듣자 나는 전혀 상상도 못 한 질병의 이름이었고 당직의에 의문을 내비쳤다. 아니 선생님 1번과 2번이라면서 3번이라니요 놀란 나에게 의사는 굉장히 조심스러운 표정으로 골수검사를 하게 될 수 있고 아직은 모르기 때문에 있어보라 하지만 더 정확한 검사를 위해 입원하는 게 좋겠다고 말씀하시곤 자리를 떠나셨다.


 생각의 사고가 되지 않았다. 양치하다 피나서 웃으며 생각했던 <그것>이 당연히 깊게 생각한 문제가 아니었고 당시 나에게 <그것>이란 과거 드라마에서 꼭 나오는 질병이었고 변기 잡고 토하고 하얗고 결국 죽는 그런 거였다. 그래도 가능성에 대한 거니까 아닐 거라고 항생제 때문에 일시적인 거겠지 하며 되뇌고 어느덧 돌아온 남편에게 대화 내용을 공유했다. 남편은 표정이 굳어졌지만 역시 마찬가지로 1번일 거라며 가능성의 얘기니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리고 우선 입원하기로 했다.


 사람은 참 단순하다 가능성이지만 그런 얘기를 듣고도 아닐 거라 되뇌니 별거 아니게 느껴졌다. 왜냐 아닐 거니까 그렇게 자꾸만 눈이 감겨 누워만 있었다 링거만 맞다가 좋아짐도 일시적이었는데 확실히 수혈받고 있으니 점점 말라죽어가던 잡초에서 물 몇 방울에 오아시스라도 만난 거 마냥 살아남을 느꼈다 지나가던 당직의에 내가 먼저 '오, 살 거 같아요!' 할 만큼. 당직의는 웃으며 수혈받고 있으니 당연하다고 했지만.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다시 한번 당직의사가 나에게로 왔다. 이젠 조금 무서웠다


 아까의 얘기였다. 가능성에 대한, 생각하지 않기로 한 그 얘기를 하러 온 거였다 아무래도 조금 전에 얘기한 '3번'인 거 같다고 골수검사를 할지 안 할지 교수님이 고민하고 있다고 그런 얘기였다. 머리 털이 쭈뼛쭈뼛 서는 느낌이었다. 골수검사를 안 한다면 <그거>가 아닐 수도 있단 말이지 않느냐 물었고 당직의는 말없이 미안한 듯 어색하게 웃고는 가버렸다. 남편과 나는 서로 쳐다보기만 할 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래도 골수검사를 안 할 수도 있으니 아닐 수도 있다 걱정하지 말자라고 얘기하며 잊으려고 노력했다 이따금 남편은 울었던 거 같다 자기 때문에 내가 아픈 거 같다고 <그거> 면 어쩌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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