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환자가 아닌 거 같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내가? 이걸? 왜?
드디어 응급실에 들어가다
종합병원에서 가장 가까운 대학병원까지의 거리는 대략 15분. 한 시간 정도 더 이동하면 대학병원이 두 군데나 더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응급실만 방문하고 끝날 거 이기에 그리고 지금 너무 힘들기 때문에 가장 가까운 대학병원으로 향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15분. 재밌는 예능을 봐도 시간 순삭 하게 되는 그 짧은 시간. 나는 영겁의 시간이었고 고통의 시간이었다 시간이 빨리 가길 바란다면 더욱 느리게 가는 법. 15분이란 시간이 나에겐 마치 천근 같은 시간이었고 더 이상 못 버티겠다(앉아있지만 정신은 몸이 서있고 정수리 뒷목부터 쭉 베베 꼬이고 누가 당기는 느낌이었다) 그럴 때마다 옆에서 다 왔다고 조금만 더 버티라는 남편의 말에 어떻게든 정신을 부여잡으며 차 문 손잡이를 부여잡은 체 마침내 겨우 도착한 대학병원의 응급실.
내리자마자 코로나 간이검사를 하고 들어갈 수 있었다. 일반병원보다 바쁜 대학병원이지만 의사분들이 3명이나 오셔서 내 말에 귀를 귀 우려 주셨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감사했지만 그때 당시 나는 정신도 똑바로 챙길 수 없었고 숨이 가빠 제대로 말도 안 나왔고 상황 자체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저 빨리 침대에 눕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종합병원에서 했던 말을 앵무새처럼 반복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내 말을 토대로 항생제 알레르기란 상황으로 인지하고 의료진분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참 감사했다 문진 한 번만에 들어갈 수 있어서
침대가 배정되기 전 치료실로 들어가서 먼저 환자복으로 갈아입고 엑스레이와 정맥으로 피를 뽑아 정맥 피검사를 했다 응급실로 오게 되면 무조건 하는 절차 같았다. 보통 오른 손목 쪽에 하게 되는데 일반 주삿바늘보다 굵고 정맥이기 때문에 아주 깊게 찌른다 피를 뽑을 때 보지 않는 것을 추천한다 당시 나는 나의 몸상태가 매우 힘든 상태였고 하라는 데로 몸을 맡기고 있었기에 묵직한 바늘(요구르트 빨대 느낌)로 꾹 누르는 느낌이었다 찌르는 고통은 별로 느껴 지진 않았던 거 같다 참고로 난 주사를 좋아하는 편이다.
내 침대가 배정이 되었는데 아무래도 항생제 알레르기로 왔고 희석하는 링거를 맞으면 될 거 같아서 인지 중간이 아닌 외각에 자리배정이 났고 보호자 의자도 없었다 덕분에 남편은 은행 갔을 때 대기하는 의자 같은 그곳에서 다른 보호자와 함께 앉았다 나는 호흡이 좋지 않아서 산소코줄을 달고 링거를 맞으며 누워있었다 원하는 데로 누워있으니 한결 편했고 산소코줄로 인해서 호흡도 한결 편해지니 살 거 같았다 점점 몸이 좋아짐을 느끼며 이대로 링거 다 맞고 집 가는 길에 점심시간이니 국밥이라도 사 먹고 집에 가자고 남편과 얘기하며 어서 다 맞고 병원을 나가고 싶었다. 아침부터 너무 다사다단했다
심각한 나의 피수치
바쁜 대학병원에 이렇게 비교적 가벼운 증상으로 온 게 미안했다. 당시 나는 그랬다 아무리 아파도 대학병원은 큰 사고나 큰일로 많이 오는 곳이지 나 같은 사람은 오면 안 되는 줄 알았다 응급실이란 다른 종합병원에도 있으니까 민폐인 거 같았다 하지만 난 종합병원에서 대처할 방도가 없다며 큰 병원으로 가랬고 거기서 온 게 여기니까 난 있어도 괜찮아하며 눈치 보고 있었다 그도 그런 게 중간은 보다 위급한 환자들이 주로 있었고 내 자리는 외각이었으니까 어서 빨리 링거다 맞고 나가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문진 봤던 의사 중 한 분이 찾아왔다
'혈소판과 혈색소가 매우 낮습니다 수혈을 해야 하고 씨티도 찍어야 하니 수혈과 씨티 동의서에 사인해주세요'
수혈. 교통사고가 나거나 대량으로 피가 과다출혈이 일어났을 때 하는 그런 피 수혈. 그런 것을 내가 맞는단다 어안이 벙벙했다 너무 놀라면 아무 생각도 들지 않고 사람이 멍- 해진다. 멍한 채로 동의서에 사인했고 씨티를 찍기 위해 주삿바늘도 다시 잡았다 조영제를 사용해야 하기 때문에 링거 바늘 중 제일 굵은 바늘을 왼쪽 팔에 다시 잡았다 혈소판과 혈색소가 준비되는 동안 씨티를 먼저 찍으러 이동했는데 나의 상태는 난생처음 씨티도 찍네? 신기하다 근데 그럴 일인가 이게? 싶었다 이때는 무엇을 위해 씨티를 찍는지 몰랐다 그냥 의료진이 하라는 데로 했다 씨티를 찍을 때 조영제라는 것을 사용하게 되는데 조영제라는 약물을 투입하면서 영상진단 검사 또는 시술 시 특정 조직이나 혈관이 잘 보이도록 한다고 한다
조영제를 쓰고 생식기 쪽이 뜨거워 짐을 느꼈다 지린 거 같았다 아주 흔한 반응이라고 하는데 근데 정말 싼 거 같았다 씨티를 찍는 이유를 나중에 남편을 통해 들었다 나의 혈색소와 혈소판이 정상인의 수치보다 현저히 떨어진다는 것이다 어디 장기하나가 터진 수치라고 했다고 혹시 모를 뇌출혈이나 장기들의 출혈을 보기 위해 씨티를 찍었다고 했다 그리고 씨티는 보통 금식하고 찍는다고 하는데 나는 그냥 찍었다 지금은 알지만 그때는 정말 1도 몰랐다 내가 얼마나 안 좋은, 위험한 수치인지. 그저 나는 이게 왜?라는, 내가 왜?라는 의문뿐이었다.
씨티를 찍고 나오니 나의 자리는 외각에서 중간으로 <이사>했다. '여긴 위급한, 응급환자만 오는 곳 아니야?' 남편과 나는 어리둥절했지만 단순히 수혈해야 하니 오는 거라고만 생각했다.(한번도 해본적이 없으니.) 중간으로 오자 보호자 의자도 생겼다 남편이 이제 옆에 앉을 수 있고 가까이 있을 수 있어 마냥 좋았다. 그리고 내 손가락 끝에 혈중 산도 농도 측정기를 테이프로 고정 시켜 붙었다 이거 왜 다냐고 저 심각한 거냐고 묻자 다행히 간호사분이 중간에 오면 모두가 무조건 달고 있는다고 했다 안심이 되었다
(정상인은 여성 기준 혈색소 12~16 남성 기준 혈색소 13~17 혈소판 130,000~400,000)
나의 피검사 결과 혈색소는 6이었고 혈소판은 16,000이었다 둘째 임신 당시 혈색소가 8이어서 6이란 게 얼마나 낮은지 심각한 상태인지 인지가 잘 되지 않았다 혈소판이란 옛날 중학교 시절 봉사활동으로 다녔던 현헐의집에서 들었던 기억만 있었다 당연히 무지했고 심각성을 1도 깨닫지 못했고 수혈해야한댔으니 하고 집에 가면 되겠지라고 생각할 때 대변검사도 했다. 바로 직접 대변을 보는게 좋겠지만 소변과 달리 대변은 바로 나오지 않는다. 당장 검사해야 했기 때문에 항문에서 직접 채취한다고 했다 나는 당연히 보건소에서 보건증 검사처럼 하는 면봉인 줄 알았고 별생각 없었는데 아니었다 이것 또한 혹시 모를 장 출혈을 검사하는 거라서 대변 자체를 꺼내야 했고 이후 어떻게 했는지는 상상에 맡기겠다 무척 아팠다... 세상 아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