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충동 1
나의 살던 고향은 서울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일에만 집중해온 남편이 오십 줄에 들어서면서 여자 프로 배구에 푹 빠져버렸다.
지방 원정 경기도 먼 길을 마다치 않는 그는 장충체육관에서 경기가 열리는 날이면 응원복까지 갖춰 입고 참관한다.
그런 날이면 나도 어쩔 수 없이 응원용 봉을 집어 든다.
이유는 바로, 태극당과 족발, 장충단공원! 그중 최고의 유혹자는 태극당이다.
서울에서 가장 오래되었다는 빵집.
장충체육관에서 경기가 있는 날이면 빵집 앞은 긴 줄로 장사진이다.
나도 기꺼이 그 긴 줄에 합류한다.
고풍스러운 입구에 다가갈수록 빵 냄새가 진동한다.
똘똘 뭉쳐 향수로 만들어 내 꺼 하고픈 빵 냄새는 초등학교 1학년 어느 봄날을 소환한다.
미장원 문을 일찍 닫은 엄마는 그날 유난히 부산스러웠다.
코트 끝까지 단추를 채워주며 말했다.
“엄마 손 절대로 놓으면 안 돼!” 비장미까지 느껴졌다.
‘쯧쯧’ 혀를 차는 외할머니를 뒤로하고, 우린 장충동으로 향했다.
어린 내 눈에 마치 궁전처럼 보이는 빵집에 들어섰다.
황홀한 빵 냄새보다 나를 압도한 것은 고급스러운 인테리어였다.
어리벙벙한 내 손에 빵 두 개가 들렸다.
엄마는 점점 걸음이 빨라졌고, 난 그녀 손에 대롱대롱 매달리다시피 했다.
그렇게 끌려간(?) 곳은 장충체육관!
레슬링 광팬이었던 엄마는 시합이 있는 날이면 만사를 제치고 경기를 보러 다녔다.
하지만 아빠는 질색팔색 하셨단다.
결혼 후 몇 년, 연이은 출산과 육아로 레슬링 시합을 직관을 할 수 없었던 엄마.
동생이 젖을 뗄 무렵부터 엄마의 레슬링 사랑은 다시 불타올랐다.
몇 날 며칠을 울며 불려 매달린 끝에 나를 대동하는 조건으로 아빠의 허락을 받아 냈다.
난 엄마의 유부녀 티내기용 액세서리가 되어 레슬링 경기장을 뻔질나게 드나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