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골-2
더운 날씨에 정신없이 뛰어놀다 새참까지 잔뜩 먹고 나면 슬슬 잠이 오곤 했다. 그때쯤이면 우리는 외삼촌 집 뒷마당에 있는 배 저장고로 향했다.
6.25 전쟁 시 외삼촌과 먹거리를 숨기려고 파놓은 곳이라고 했다. 끈적한 무른 배 향, 배를 싼 종이에서 나는 묵 삭은 냄새. 거기에 쿰쿰한 지하 냄새까지 더해지면 귀신놀이가 제격이었다.
그곳이 사춘기 시절의 해방구였다던 엄마 얘기가 떠오른다. “거적 한 장 깔고 그 위에 누우면 천국이 따로 없어. 나를 찾는 이도 없고 아무 일 안 해도 되니까.”
저녁 식사를 같이 하자는 그의 제안도 뿌리치고, 바라만 보던 그 골목으로 들어섰다. 온통 빌라와 아파트들 천지다. 외삼촌네 집터를 단번에 찾아낼 수 없었다. 한참을 빌라들이 즐비한 골목을 헤맸다.
언덕 위, 배밭 터를 뒤로 하고, 동네를 돌아보니 그제야 ‘종남 아저씨’, ‘왕고모’ 집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물론 외삼촌 집도.
그런다 문득, 가슴 한구석이 아려왔다. 서울 구석구석 불었던 개발의 광풍이 그곳에도 정신없이 불었었다.
힘들었지만 모두가 함께였던 그 배밭과 맞바꾼 보상금으로 집성촌이라 불리던 그곳은 빌라촌이 되었다. 사방으로 흩어진 우린, 행복하게 지내는지, 모두의 안녕을 기도한다.
제목에 끌려 집어 들었던 책 「골목의 시간을 그리다」 속에 이런 문장이 나온다. ‘지금의 삶이 과거보다 풍요롭기에 우리는 어렵고 힘들었던 예전의 삶을 돌아볼 힘을 가질 수 있다.’ 중년의 내가 먹골 엘레지를 부르고 있다는 것은, 그래, 이미 슬픔이 과거의 한 추억으로 자리한 덕분이리라.
이젠 어서 빨리, 지금의 코시국(코로나가 창궐하는 현재의 세태를 뜻하는 신조어)이 지나가서 ‘코시국 엘레지’를 노래하고 싶다. 자유롭고 역동적인 일상이 회복되어서 ‘그땐 그랬지’라고 옛 노래 부를 수 있길 간절히, 미치도록 간절히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