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고도 웃는 경기가 있다

세상사람들 우리도 강속구 루키가 있답니다

by 시하

흔히 야구는 투수 놀음이라는 말이 있다. 우리팀은 팀타율이 높은 편이라 투수가 초반에 경기를 터뜨려도 그만큼 점수를 넣었기에 그 말의 무게를 잘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요즘 우리팀 선발들이 지친 건지 잘 막아주던 선발들도 경기를 터뜨리기 시작했고 타자들 부상 등 여러 사유로 초반만큼의 팀타율이 나오지 못하게 되니 점점 선발의 중요성을 알게 되었다. 선발 투수가 점수를 많이 주지 않고 최대한 많은 이닝을 먹을수록 그날 경기 관람이 편안하다. 하지만 야구란 역시 편안하게 보는 게 아니란 걸 일깨워주는 나날이 이어졌다.


보통 5명의 선발을 정해두고 시즌을 운영하는데, 우리팀 1선발 반즈가 어깨부상으로 인해 시즌 중도하차하여 감보아선수가 왔다. 롯데에 오랜 기간 든든하게 선발을 해주던 반즈 선수. 반즈데이는 이기는 날이라고 머릿속에 박혀있던 걸 빼는 게 속상했다. 아쉬움과 걱정 속에 감보아선수가 왔고 실력+인성으로 우리를 단숨에 사로잡았다. 감보아의 등장으로 전력이 든든해지긴 했지만 투수걱정은 끝나지 않았다. 시즌초 잘해주던 투수들이 흔들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웅은 난세에 등장한다고 했던가! 흔들리는 투수 선발 라인업에 이민석선수가 등장했다.


5월에 민석 선수가 처음 등장했을 때 긴장 여파인지 초반에 안 좋은 제구를 보였었다. 그런데 차츰 공의 제구가 잡히면서 길게 던져도 150km 넘는 강속구가 꾸준히 나왔다. 물론 점수를 꽤 먹긴 했었지만 선발해도 괜찮을지도..?라는 생각이 드는 경기였다. 그 이후 여러 명의 투수가 선발 시험대에 올라왔고 그중 가장 안정감 있게 투구를 하던 민석 선수가 선발이 되었다. 이제 막 선발 라인업을 시작하는 단계이기에 민석선수에게 바라는 것은 져도 이닝을 최대한 많이 먹어주기만 해도 좋다였다.


하지만 민석선수는 얼마 지나지 않아 나의 나태한 기대를 바꿔놓았다. 리그에서 수비짱인 SSG 앤더슨 선수를 상대로 민석 선수가 미친 경기력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아쉽게 홈런을 맞고 1:0으로 지긴 했지만, 타자가 잘 쳐서 홈런을 맞은 거라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번 경기에서 민석 선수의 최고의 장면은 만루상황에서 2명의 아웃을 잡아야 할 때 점수를 한 점도 안 주고 막은 것이다. 이 정도면 공하나에 점수 2-3점 먹는 것은 흔한 일이기에 1점만 줘도 선방했다고 볼 수 있다. 민석 선수는 만루에서도 3볼 1스트라이크 상황까지 갔다. 볼 하나만 주면 밀어내기로 점수를 주는 거라 사실상 마음을 비우고 있었다. 그런데 민석선수는 침착하게 본인의 공을 던지기 시작했고 결국 점수를 한 점도 주지 않고 4회 말을 넘겼다. 아쉽게 오늘도 6회까지 모두 던지진 못했지만 점점 선발 투수로서 성장하는 모습을 라이브로 보는 것이 팬의 입장에서 너무 즐거운 경기였다.


민석 선수만큼이나 잠재력이 너무 좋은 선수가 우리에게 한 명 더 있다. 윤성빈선수이다. 정말 좋은 공을 가지고 있는데 아직 본인의 공을 마음껏 보여주지 못한 선수이다. 민석 선수와 마찬가지로 5월에 기회를 얻어 올라왔으나 아쉬운 경기력을 보여주었다. 간절한 기회를 날린 선수의 모습이 남 일 같지 않아서 마음이 쓰였는데 이 경기에 등판에서 아웃카운팅 하나를 잡고 내려갔다. 아웃카운팅 하나를 시작으로 윤성빈 선수 또한 마음껏 자신의 공을 글러브에 꽂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야구를 보다 보면 투수들이 승부를 피하다가 점점 걷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가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그럴 때 감독님이 옆에서 "붙어"라는 말을 외치신다. 승부를 피하지 말고 붙으라는 말인 것 같다. 나 또한 다음에를 외치다가 인생을 다음 회차로 미룰 뻔한 순간들이 있었다. 결국 승부든 뭐든 피하는 게 승산이 아닐 땐 붙는 게 맞다. 하지만 인간인지라 알면서도 피하고 미루다 걷잡을 수 없는 순간을 또 만들게 될 것이다. 그런 순간에 몰리더라도 오늘 경기의 민석 선수 공처럼 피하지 말고 정면 돌파해 봐야겠다. 그래야 다음 스텝으로 나아갈 수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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