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병원에서 일 배워가야 할까요?
요즘 상종(상급종합) 병원은 모든 의료진들이
이 사태를 다같이 부담하느라
피로가 누적되어 있는 상황이다.
(난 그냥 피곤하다.)
그래도 지금 내가 다니고 있는 병원을 포함해
몇 병원이 채용공고를 낸다고 하니
취준생들은 끝까지 홧팅.
아무튼 앞으로 대학병원에 취업하는 난이도도
또
이 사태에 대해 한없이 길어지는 웨이팅도
쉽게 해소될 것 같진 않다.
이런저런 상황에서 요즘은 나처럼 일을 중소 병원에서
배워가는 친구들이 늘어나는 것 같다.
그리고 내가 한창 웨이팅일 때도 일을 배워가냐에
대해서도 고민이 많았다.
지금 내가 다니고 있는 현 병원에서도
동기들 중 1/3은 나와 같은 경력직에 해당한다.
(로컬 알바, 외래, 종병 경력,요양 병원 등 포함)
결론부터 말하자면
‘1-2달 노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싶음
일을 배워가는게 좋긴 하다‘라고 생각한다.
이유는 다음과 같다.
1.병원의 큰 업무 흐름을 익히는 속도가 빠르다.
방법의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지금 내가 속해 있는 외과 병동 기준으로 보면
업무의 큰 틀은 크게 차이 나지 않는다.
물론 큰 병원이 더 퀄리티 있고 간호사들이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는 제도가 잘 마련되어 있긴
하지만.
요즘은 일하다 보니 간호사란 직업이
‘환자의 가장’인 것 같은 존재란 생각이 든다.
모든 걸 책임져야 하기 때문에
서류, 반납약, 퇴원 절차, 수술 전/후 준비 등을
미리 파악한다면
금방 익히고 응용하기 좋다.
2.액팅에 대한 겁이 없다.
처음 사람에게 침습적인 처치를 한다는게
뿐만 아니라 뭔가 내가 한다는 것 자체가
겁이 날 수도 있다.
그러나 중소병원에서 20명 가까이 액팅만 하다 보면
이런 처치에 겁이 없어진다.
겁이 없는 것만으로도
시린지 다루는게 익숙한 것만으로도
앰플을 잘 까고 정확히 재는 것만으로도
또 한 스푼 더해서 iv/채혈 업무가 지체되지
않는 것만으로도
업무를 익히는 시간은 단축된다.
이게 왜 중요하냐면
지금 내가 속해있는 병원과 같이
팀널싱 제도를 하는 병원들은
내가 전산 업무도 다 해야하기 때문에
액팅에 막힘이 있으면 안 된다.
막힘이 있는 순간부터 오버타임 예약이라고 보면 된다.
(너무싫다 진짜)
3.조직은 Mz를 좋아하지 않는다.
병원 조직도 당연한 말이지만 사회 생활이다.
그리고 아무래도 사람을 다루는 일이다 보니
경험치는 곧 힘이 된다. 일 잘하는 사람이 최고다라는
말이 제일 정당화 되는 곳이 병원이라고 생각한다.
아무튼
내가 모르는게 있다면 아무리 마음에 안 드는 선생님이라도 도움을 청해야만 하는게 신규 입장이다.
때문에 웬만하면
연차가 쌓인 선생님들의 일을 도울 수 있다면 돕고
잘 하는게 맞다고(말하면 젊꼰 취급을 받는가?)
생각한다.
(그래도 여전히 군대의 조직문화를 겪지 않은 사람들이
요즘 군대보다 더 한 문화를 세습하는 건 이해 가지 않는다.)
내가 일을 하면서 익힌 건
센스있게 일을 처리하는 것
센스있게 말을 하는 것
적극적으로 일을 배우는 것
이 3가지다.
천성이 붙임성 좋은 사람은 아니라서
이런 모습을 계속 유지하는게 스트레스 받긴 하지만
조직 생활을 할 땐 꽤나 큰 도움이 된다고 느낀다.
조직은, 개인의 사고에서 비롯된 부당함을
이해해주지 않는다.
이걸 빨리 캐치하고 받아들이는게
맘이 편하다.
일을 배우면서 이런 사고를 연습하는 것도
꽤나 큰 도움이 됐다.
4.내가 뭘 배워야하는지 이미 안다.
솔직히 프리셉터 기간 굉장히 짧다고 생각한다.
내가 지금 속해있는 병원은
교육제도가 굉장히 잘 되어 있는 걸로 유명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교육기간이
굉장히 짦다고 느껴진다.
그래서 이 시기에 내가 뭘 배워야하는지
아는 것만으로도
교육 기간을 활용할 수 있고
프리셉터에게 온전한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요즘 정말 느끼지만
시간이 금이다.
5.병원에 대한 환상이 없다.
긴 말 하지 않겠다.
현실 충격 받을 거면 그냥 빨리 받자.
이런 이유로 일 배워가는 거 추천한다.
개인적인 가치관 차이지만
난 일을 배워 온 선생님을 싫어하는 분은 본 적이 없다.
오히려 쌩신규를 키운다는 부담감이 더 클 뿐.
요즘 같이 1년 가까이 웨이팅 예정이라면,
이 시기를 본인의 판단 하에 잘 활용했으면 한다.
내 말은 그냥 경험자의 조언으로만 듣길.
오늘도 나와 같이 밤샘근무를 할
선생님들
그리고 취준을 불태울 예비 간호사 선생님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