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을 앞둔 신규 간호사
대학병원에서 일한지 어엿 두 달이 넘었고
나는 돌아오는 주
프리셉터(사수)의 곁을 떠나
독립을 한다.
그간 두 달의 생활이 어떠했냐고 물으면
곧장 쌍욕부터 뱉을 자신만 가득하다.
수없이 각오하고 다짐했지만
현장은 내게 끊임없이 도전적이었다.
내가 이렇게 멍청하고 붕어같이 뻐끔거리는 것밖에
할 줄 모르는 사람이었나를
매 퇴근길마다 생각하지 않은 적이 없었으니.
병동에 온지 3주만에
3kg이 빠질 정도로 일을 배웠고 일을 했다.
이 병원은 인성 보고 애들 뽑나 싶을 정도로
너무나 좋은 입사 동기들을 만났고
지금은 서로가 서로의 퇴사방지위원회가 되었다.
출근길에 심장이 너무 뛰어서 심박수가
180까지 치솟아
너무 가기 싫은 날엔,
옆 병동 동기의 손을 잡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 출근을 했었다.
좋은 입사 동기들을 만났지만
운이 안 좋게도, 좋은 병동엔 배정받지 못했다.
어느 병원에나 있을 태움과
군기 문화에 한 스푼 더한 일을
겪었다는 말로만 축약해서 말하겠다.
병동에 온 지 2주째쯤,
같이 들어온 달동기가 퇴사를 했다.
그 날의 나도 수없이 내 무전기와 목걸이를 내던지고 싶었다.
옆에서 소리 지르는 당신,
'너 정말 한심한 존재다'라는 걸 각인시키는 큰 한숨들,
가르쳐주지 않은 것조차
짜증이 가득했던 당신의 목소리,
너가 언제까지 안 울고 버티나 보자라고 매 순간마다
날 시험하는 듯한 했던 당신.
동기를 잃은 그 날,
당신의 히스테리는 더 치솟아 올랐다.
마치 나도 곧 나갈 사람이라는 듯이.
처음으로 병동에서 아이유 마냥 눈물이 차올랐다.
그 순간적으로
내 머릿속에선,
‘네가 원하는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게 해줄게'라는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이 악물고 울음을 참았다.
울기보다
그 날 이브닝 근무가 끝나고
남아서 내가 본 환자의
모든 처방과 기록을 공부해갔다.
더 이 악물고 버티고 싶어졌다.
이왕 나갈거라면
비인간적인 괴롭힘을 보이는
당신과 함께 나가겠다고 다짐하며.
그 날 퇴근을 하다
겪은 일을 되새겨 보니,
문득 그 날 업무를 난 제대로 쳐내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태움을 정당화할 생각은 1도 없다.)
신규라 못 하는게 당연하다는 말만큼
위험한 말도 없었다.
못하면 환자가 피해를 입는 건 너무 당연했고
용납할 수 없었다.
날 너무 괴롭힌다 생각했던 나의 프리셉터는
업무에 있어서는 엄청난 완벽주의였다.
하나라도, 하나라도, 하나라도 더 꼼꼼히.
그녀의 눈에 보이는 나는
하나라도 덜 꼼꼼한 신규였을 거란 생각.
그녀에 비한 나의 직업 사명감에 대한 성찰과 수치심.
그 날 기준으로 이 악물고
앞으로도 절대 울지 말아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내가 울음이 터지는 순간
끊임없는 자기연민에 빠질 것만 같아서.
자기연민이 내 정신을 좀먹을 것 같아서.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한게 맞았고
좋은 간호사가 되지 못한 것도 맞았고
앞으로 더 배워야 할 항암도
수술도 많다는 걸 알아서.
자기연민에 빠질게 아니라
나의 업무에 대해 더 피드백하고 나아가야함을
알아서.
그 날 기준으로 지금까지, 순간적으로 올라오는
감정을 멈추고 생각하기에 급급했다.
그리고 그런 나를 알아주기라도 하듯,
병동에 '너도 나가게?'라는 눈빛을 보냈던 선생님들이,
하나 둘 씩, 날 도와주기 시작했다.
기죽지말라고 응원해주던 조무사님도,
나를 챙겨주기 시작한 수선생님도,
프리셉터 짜증의 양상도 poor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항상 나의 감정적인 부분을 누구보다 잘 알아주고
다독여 준 입사 동기들.
(너무도 소중하다)
독립을 앞둔 지금의 나는 더이상 환자파악이 안 됐다는 말로 욕을 먹지도 않았다.
(물론 여전히 꼼꼼하지 못한 면모 때문에 놓치는 일로 욕은 먹는다.어쩌겠니)
얼마 전, 같은 병동 동기에게
'나 곧 독립이야.나보다 프셉이 더 고생하신듯'이란
카톡을 보냈었다.
그런 나에게 동기는,
'그래도 너가 더 고생했어.'라는
답변을 보냈다.
이 말 하나로 잠시나마 평안해졌다.
앞으로가 더 고되겠지만,
누군가 나의 고생에 공감해준다는게
이렇게 위로가 되는 거였는지,
실감이 나는 순간이었다.
처음 병동에 왔을 땐,
이 공간을 애정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지금은
최선을 다 해 애정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매일 정신적으로 다치는 일상이었지만
그럼에도 더 나아지고 싶었고
여전히 더 나아지고 싶고
여전히 더 잘하고 싶고
여전히 더 많은 케이스의 환자를 받고 싶다.
노력의 시간은 보답받는 걸,
지켜보고 떠나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내가 조금이라도 더
이 공간에 머물길 바란다.
이겨내어 축복 받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