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별지을 수 없는 관계
세상이 발전하고 선택지는 많아졌지만 그 만큼 혼란스러워졌다.
물건 하나를 살때도, 음식을 고를때도 다양한 옵션이 생기면서 파악해야할 정보도 선택해야할 기준도 많아졌다. 나는 사람들이 만족하지 못하는 이유가 자연히 늘어난 선택지 만큼 내가 가져야 할텐데 그것을 다 갖는게 현실적으로 불가능 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세상이 발전할수록 선택지가 많아져서 우리는 계속 소유에 대한 집착을 놓치 못하게 되는 굴레에 빠지는 걸까?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세상은 그리 이상적인 곳이 아닌것 같다.
선택지가 많아지면 선택할 권한도 많아졌으면 좋겠다. 이까지 쓴 글의 뒤를 이어쓰기 어려워서 AI에게 마무리 지어달라고 부탁하지 '선택의 역설'이 어쩌고 하는 이야기를 하고, 미니멀리즘이 어쩌고 하는 이야기를 한다.
AI가 쓴글은 참 명료하고 깨끗하다. 마치 플레인 요거트 같다. 맛은 있는데 진짜 깨끗한 맛.
가끔은 여러종류의 글을 쓰는게 귀찮아서 AI에게 맡기면 뭔가모르게 찝찝함이 든다.
남들이 그걸 보고 'AI가 썼네, 이사람 귀찮아하고 진심이 아니네' 라고 생각할까봐 그런게 크기도 한대,
나도 모르는 내 글의 의도를 AI가 전혀 담아내지 못하는 기분에 AI를 이용해서 글을 쓰면 죽어가는 기분이 든다.
귀찮음. 완벽함에 대한 추구. 에서 AI가 효과적인 대안책이 될지 모르겠지만, 인간이 인간다운 삶을 살면서 행복을 누리기에는 그 귀찮음을 극복하는 것과 완벽하지 않은게 우리를 인간답게 만드는것 같다.
회사에서의 생활이 어려운 이유는, 이해관계로 만들어진 주식회사에서 남을 위해 일하기에 완벽을 추구해야 하기 때문이다. 조금은 철없는 생각이라는 느낌도 드는데, 일은 일답게 프로패셔널 하게 추구하는것이 맞겠지. 모두가 이상적으로 일해서 완벽한 업무효율을 자랑하는 회사만이 시장에 가득가득하면 오히려 묘하게 이상한 선택을 하는 회사, 삐걱거리는 회사가 유별나 보이고 그 회사가 '투자기회가 있다' 라던지 '성장가능성이 있음'이라는 평을 받을수도 있지 않을까? 이런 상황을 생각하면 자본시장은 참 웃기는 곳이다. 인간의 편향과 왜곡이 투자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침을 주장하는 행태재무학의 관점에서 보면 아무리 뛰어난 전문가, 학습자가 내린 투자의사결정에도 어느정도의 편향이 있기 마련이고 그래서 시장은 완전히 효율적일수 없는게 아닐까?
효율. 효율을 쫓아 살아가지만 그안에서의 인간성은 소멸된다. 오직 효율과 효과만이 유효한 시대에서의 비효율은 환영받지 못하는 것이다. 그런데 아이러니 하게도, 인간은 어떤 목적지 까지 빨리 갈 수 있는 수단이 있음에도 굽어가며 그 과정에서의 비효율을 즐긴다. 글을 쓸때도 컴퓨터로 편하게 쓸수있지만 좋아하는 필기구를 사고, 종이를 골라서 쓰는 수요가 아직까지 탄탄한것도 비효율의 즐거움을 쫒는 누군가가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렇게 효율적이라고 생각했던 컴퓨터로 글쓰기나 목적지까지 빨리가기가 우리가 생각했던 진정한 효율이 아닐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인간의 얄팍한 계산과 생각으로는 그 모든 행위와 시스템들 덕분에 비용은 얼마가 아껴지고, 효과는 얼마정도 증대될 수 있으나, 그 안에서 소멸된 개성과 창의, 특이성으로 인해 진정한 인간이 느끼는 효율은 오히려 감소했을수 있다.
하루하루를 하루살이 처럼 살지말라고 하는 말을 중학교때 들은적이 있는데, 효율을 쫓아가다 보면 하루살이가 되는 느낌이 든다. 완성된 효율의 끝에는 공허함과 텅빈 느낌, 그다음은 뭐지? 효율의 효율, 효율 제곱을 다시 추구할 뿐이다. 왜 우리는 과정상의 즐거움을 인지하지 못할까. 직장인의 삶에서 과정상의 즐거움이란 반복되는 하루하루의 출퇴근에서 나누는 동료와의 수다, 달력에서 월급날을 향해 지워가는 하루하루, 근처 카페에서 파는 맛있는 아메리카노 뿐인가. 그 자유를 소멸하는 대가로 월에 200,300가량의 돈을 받는게 좀 아쉽다. 근데 마음한편에서는 그 돈을 받으면서 과연 내가 이 돈의 값어치를 했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에서의 직원 생산성은 참 드러내기도, 측정하기도 어려워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