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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올 이상은 Aug 28. 2023

생각지도 못한 일

  여행에서 생각지도 못한 일이 벌어지면 오래오래 기억에 남는 추억이 된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당혹스럽고 곤욕스럽다. 오랜만에 후배 부부와 오이타 여행을 계획하고 드디어 떠나는 날이다. 마침 오이타 직항도 생겼겠다 시간을 알차게 쓸 수 있어서 이번 여행이 기대된다. 지난번 후쿠오카로 입항할 때는 일본 특유의 꼼꼼함 때문인지 입국하는데 2시간이나 걸렸고 후쿠오카에서 오이타까지 3시간 이상 송영버스에서 시달려야 했다. 물론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맛본 일본 우동은 정말 맛있긴 했다.

  일은 공항 출국장에서 벌어졌다. 평소에 야무지다고 생각했던 후배 부인이 짐을 부칠 때였다. "다른 여권 없으세요?" 항공사 직원이 묻는다.  "이 여권 VOID 된 건데요."란다.  머리가 하얘져 순간 아무도 아무 말도 못 하고 멍해져 있었다. 탑승 시간이 한 시간 남짓 남아 집에 갔다 올 시간도 누굴 시켜 가져올 시간도 안된다. 그렇다고 직원한테 사정해 봐야 통할리 없었다. 그나마 사정해서 알아낸 것이 3시 30분에 후쿠오카행 비행기가 뜨고, 한 시간이면 임시 여권을 발급받을 수 있다는 정도다. 그것만도 다행이다. 임시여권 발급소가 있는 걸 보면  이런 사람들이 꽤 많은 모양이다. 하긴 야무진 후배 부인에게도 일어난 일이니 말해 무엇하랴!

  이리저리 궁리할 틈도 없이 셋은 먼저 가고, 후배 부인은 뒤처리를 하고 오이타에서 만나기로 했다. 혼자 두고 떠나니 걱정도 됐지만 그렇다고 모두 안 갈 수도, 후배 부부만 남기고 우리만 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잘 될 거라 믿을 수밖에. 속은 타들어 가겠지만 후배도 후배 부인도 겉으론 침착하게 잘 견디고 있다. 그나마 긍정적인 것이 다행이다.

  예약한 왕복 티켓을 취소하고 후쿠오카행 편도와 오이타에서 돌아오는 편도 항공편을 다시 예약한다. 그게 뭐 대수냐 싶지만 예약 규정 때문에 그 순간 몇십만 원이 날아간다. 우린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입국장으로 향하고 후배부인은 임시여권을 발급받 위해 출입국 관리소로 향한다. 오늘 안에 만날 것을 기약하면서.

  아침 식사 대신 샌드위치를 사들고 서둘러 탑승장으로 갔다. 아침을 거르고 해프닝을 겪고 나선인지 허기가 진다. 수속을 마치고 자리에 앉으니 카톡이 온다. '여권사진도 찍고 긴급여권도 신청했노라'라고 또 '남는 시간을 일어 복습할 기회로 삼겠노라'라고. 여유가 있어서 좋아 보이지만 애써 그런 말을 하는 후배 부인이 애처롭기까지 하다. 한국 같으면 문제 될 일이 없겠지만 낯선 일본 땅 구니사키 깡촌까지 가는 차편이 만만치 않을 텐데 본인 때문에 벌어진 해프닝이 미안한지 우리를 안심시키고 싶은 모양이다.

  우린 한 시간 남짓 걸려 오이타에 도착한다. 공항이 작아서 붐비지도 않고 입국 수속도 신속하다. 짐을 찾는 사이 화장실을 다녀오는데 아내가 씩씩거린다. 아침 샌드위치를 경비견한테 빼앗겼단다. 그놈의 비글이 냄새를 어찌 잘 맡던지 화장한 눈을 껌벅거리며 가방 앞에 앉더란다. 안 좋은 일은 한꺼번에 생기나 보다. 그 사이 상황보고 카톡이 올라온다. '대한민국 긴급여권 발급',  '체크인 후 공항 배회', '혼밥 돈가스 정식'. 또 도착 시간을 계산해 봤던지 '후쿠오카 저녁 혼밥 예상'까지.

  우리는 수속을 마치고 송영버스에 오른다. 숙소까지는 20분. 그동안 후배 부인의 교통편을 알아내서 알려줘야 한다. 대도시도 아니고 한밤중에 여자 혼자서 오는 게 힘들기도 하고 위험하기도 한데 찾아봐도 만만한 교통편이 없다. 숙소에 내리자마자 관리인을 찾아 후쿠오카에서 숙소까지 송영을 부탁한다. 매니저는 난색을 표한다. 그러면서 벳푸까지만 고속버스로 오면 송영을 해주겠고 한다. 한 시간 반거리에 한국 돈 15만 원, 그나마 다행이고 무조건 오케이다. 매니저와 후배 부인을 카톡으로 연결시키고 나니 좀 안심이 된다.

  후배 부인이 후쿠오카에 도착해서 뱃푸행 고속버스표를 샀단다. 6시 45분 출발, 숙소에 도착하면 10시는 될 것 같다. 시간이 남는지 후배 부인은 공항 식당에서 혼밥을 했다고 카톡 사진이 올라온다. 그 시간 우리는 미리 예약한 푸짐한 생선회를 셋이 배가 터지게 먹는다. 배가 부른 만큼이나 미안한 생각이 든다. 상황이 상황인 지라 우리는 저녁만 먹고 각자 방에서 후배 부인이 오기를 기다리기로 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잠시 누운 것 같은데 깨어보니 자정이 넘었다. '도착했는데 자느냐?'라고 카톡도 와있다. 속을 끓이고 고생했을 텐데 마중은 못할망정 잠이 든 게 민망하다. 그래도 너무 늦어 내일 아침에 봐야겠다.

  다음날 아침 다 함께 만나니 어제의 해프닝은 그저 웃음거리에 불과했다. 후배 부인은 다른 사람들에게도 이 일을 알렸던지 여러 사람들이 비슷한 실수를 말해주더란다. 누구는 예전 여권에 있던 미국 VISA를 찢어 새 여권에 붙였다가 위조범으로 억류되기도 했고, 누구는 아이 여권 없이 아이와 탑승하려다 거부당했단다. 웃지 못할 얘기지만 의외로 이런 일이 많은가 보다.

  구니사끼 퍼시픽블루, 오이타, 유후인 등등 곳곳을 돌아보며 일본 여정을 마치고 귀국한다. 점심을 못하고 떠난지라 인천공항에 도착해 늦은 점심을 먹고 장기주차 대행 서비스에서 차를 찾아 짐을 싣는다. 한 시간 남짓이면 집에 도착하고 모든 일정이 끝난다. 바로 그때 후배 부인은 본인 빽이 안 보인다고 빽을 챙겼냐고 남편을 다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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