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아이가 나에 관해 직접적인 질문을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엄밀히 말하면 나에 대한 관심이라기보다는 딸아이 교육이 걱정돼서라고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어찌 되었던 "아버지는 예전에 책을 많이 읽으셨어요?"라고 묻는 말은 "딸아이 공부를 어떻게 시켜야 해요?"라는 질문으로 들렸다. 딸아이가 유치원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주위 부모들 관심이 온통 아이들 교육이어서 덩달아 딸아이 교육이 몹시 신경 쓰이나 보다.
사실 우리는 큰 아이보다 먼저 이런 얘기를 했었고 주위에서 듣는 게 있는지라 크게 신경 안 쓰는 큰 아이네가 걱정스럽긴 했었다. 그 때문에 언젠가부터 "공부는 엉덩이로 하는 거야." "아무것도 하지 않더라도 책상 앞에 30분이라도 앉혀서 어릴 때부터 습관을 들여야 돼."라는 말로 굼불을 때왔던 터였다.
그도 그럴 것이 이사 갈 집을 찾느라 잠실 근처 아파트 몇 집을 돌아본 적이 있었는데 나를 놀라게 한 것은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 있음 직한 집 거실은 TV나 소파 대신 책장과 책상으로 무장하고 이미 학습 공간으로 사용되고 있는 것이었다. TV에서 그런 교육 환경을 소개하는 프로를 본 적은 있지만 실제로 그렇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부모들의 극성이 아이들의 진로를 정한 지 오래된 모양이다.
며칠 전 모임에서 아이들 대학 진학 얘기를 하다가 들은 얘기지만 지금 아이들은 과거 잘 나가던 법대나 상경계열 보다 이과를 선호하고 그중에서도 성적순으로 의대부터 유망한 학과들로 채워나가는 식이란다. 천재들이 가던 물리학과도 인간의 내면을 다루는 인문학도 다 소용없고 지적 수준이나 학문의 다양성, 교육의 목적과도 관련 없이 천편일률적인 경쟁 구도가 된 모양이다. 이런 현상의 원인이 궁금하기도 하지만 그거야 시대가 변화되는 세태이니 따질 것도 없고 그보다는 인기 있는 대학은 어떤 아이들이 가고 어떻게 하면 그런 아이를 만들 수 있는지가 더 궁금해진다.
외국어 습득이론을 정립한 미국의 스테판 크라센교수에 따르면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유일한 방법은 반복적으로 듣게 하는 것도 반복적으로 말하게 하는 것도 아니며 '이해 가능하게 입력'이 될 때 언어가 습득된다고 한다. 또 언어를 습득하는 개인 차이도 있는데 '동기부여'가 되고 '자존감'이 높은 아이일수록 언어를 잘 습득하고 '불안요소' 즉 '간섭'이 많을수록 언어 습득이 저해된다고 한다.
사실 공부란 아이들에게 낯선 외국어와 다름없기 때문에 아이 교육을 잘 시키기 위해서 스테판교수의 이론을 그대로 대입시켜도 될 것 같다. 무엇이 목적이든 교육의 효과를 얻기 위해서 제일 필요한 것은 결국 '동기부여'일 것 같다. 좋은 대학에 들어가는 것이 교육의 목적이라면 관심과 대화를 통해서 특정 대학에 들어가면 무엇이 좋아지고 달라지는지 아이가 느낄 수 있게 해주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스스로 비전을 갖고 목표를 세우도록 해야 한다는 말이다. "이 대학을 가려면 이렇게 해야 하는데, 왜 안 해?"라는 말은 '관심'이 아니라 '간섭'이 된다. 간섭을 받으면 아이들은 스포일 되기가 쉬워진다.
예전에는 국민교육헌장이라는 게 있었다. 나라발전과 시대가 요구하는 쓸모 있는 인재를 키워내기 위해 교육 목적을 적시한 지침이다. 유치해 보이지만 나름 그 시대와 국가가 요구하는 가치가 있어 보였다. 부모 개개인이 담지 못하는 것을 나라가 담아냈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싶다. 그런데 지금은 무엇이 교육의 목적인지 모르겠다. 부모들이 똑똑해졌으니 나라가 이끌 필요 없이 부모 개개인이 알아서 결정하면 될 일인가 보다. 그렇다면 지금의 부모들은 내 아이가 어떤 아이로 커주었으면 하는 바람은 가지고 있을까? 아니면 좋은 직업, 좋은 학벌을 쥐어주기 위한 막연한 바람만 존재할까?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지만 아이를 교육시킨다는 것이 정말 어려운 일이다. 그러니 우수한 아이로 키워내려면 현명한 부모가 되어야 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