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화 비 오는 날 약속
친구를 만나러 약속 장소로 향한다.
논현동 163,
보내온 주소를 확인하고 지하철 역으로 향한다.
평소 멀지 않게 느껴졌던 지하철역까지의 거리가 비가 와선지 제법 멀게 느껴진다.
인도에는 물웅덩이가 생겨 몇 발자국 걷지도 않았는데 바지 끝은 물에 젖어가고 우산 끝에서 튀는 빗방울에 어깨는 축축해진다.
장맛비가 더위를 씻어 내서 좋긴 하지만 빗방울이 튀어 옷이 젖고 머리카락이 늘어지는 건 신경 쓰인다.
논현역에 내려 만나기로 한 장소를 찾는다. 젊은이들이 우글대는 곳이라 왜 이런 곳에서 보자고 했는지 의아하다. 그런데 둘러보아도 알려준 레스토랑은 없다. 보내온 문자를 확인해 봐도 주소는 맞는데 그런 레스토랑이 없다.
몇 번을 다시 봐도 없다.
보내온 주소를 재삼 확인한다. 논현로 163길? 논현동 163?
이런 바보 같은!
아니 매번 만나던 장소 근처라고 하면 될 일을 새삼스레 주소를 보내 헷갈리게 만든 친구를 원망한다.
30분이나 걸려, 온 길을 다시 되돌아간다.
멍청한 짓 한 게 어처구니가 없다.
제2화 창문으로 불어오는 바람
아침에 일어나면 맨 먼저 창문을 연다.
아파트 동과 동 사이에서 불어오는 아침 강바람이 시원해서다.
주변 나무들에 가려 흘러가는 강물도 보이지 않고
도로를 달리는 자동차의 소음 소리도 들리지만
창문으로 들어오는 바람은 시원하다.
한낮이 되면 여름 햇볕이 남쪽 거실을 후끈 달궈놓는다.
그래도 뒤쪽 방으로 돌아오면 강바람이 제 몫을 한다.
창문을 넘어 목 뒤편으로 간간이 불어오는 바람은
나무 그늘 밑 평상 위에 앉아서 맞는 시원한 바람을 느끼게 한다.
제3화 어릴 적 살던 동네
어린 시절 내가 살던 동네는 보문동, 꽤 잘 정돈된 주택가였다. 집으로 들어오는 길 끝에는 탑골승방이라는 여승들만이 있는 절이 있고, 버스가 다니던 큰길에서 승방까지는 꽤 걸었던 것 같다. 큰길 모퉁이에는 파출소가 있었고 조금 올라와 작은 사거리 모퉁이에는 어릴 적 자주 다니던 구멍가게가 있었다. 우리 동네에서 제일 유명한 이는 초창기 코미디언 양훈 씨였는데 작은 사거리에서 삼선동 쪽 언덕길을 오르자마자 있는 한옥집에 살았다. 우리 집은 사거리에서 승방 쪽으로 집 하나를 지나 막다란 골목집이었다. 적산가옥을 수리한 집이었는데 어릴 때는 다다미방 도 있었고, 마당도 꽤 있는 집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그 동네에서 삼십 년을 산 토박이였다.
우연히 근처에 약속이 생겨 어릴 적을 추억하려 옛집을 돌아보기로 한다. 그런데 기대를 가지고 내린 지하철역 바깥세상은 이미 한 톨의 추억도 남아있지 않았다. 탑골 승방으로 올라가는 길은 터널이 뚫려 4차선 도로가 되었고, 승방 주위에는 고층 아파트들이 들어서 있어 사찰은 아파트 앞 마당같이 변했다. 파출소는 없어지고, 주변은 온통 4-5층 건물에 옛 집터에는 4층짜리 연립주택이 들어서 있었다. 돌아보니 반추할 추억은 사라지고 애써 찾은 추억이라곤 어릴 때 기어오르던 오래된 뒷마당 축대 와 동네 이름뿐이다.
제4화 내 어머니 추억하기
어버이날 이어선지 어머니가 생각난다.
자식을 위해 사신 어머니가 고맙고 고생하신 어머니가 가여워서다.
작고 연약했지만 자식들의 행복과 무탈함을 위해서 희생하셨고
공부시키는 것이 모든 것이라고 생각하셨던 분이셨다.
젊어선 몸으로 희생하셨고
나이 드셔 선 기도로 자식들 안위를 걱정하셨다.
인자함을 잃지 않으려 기도하셨고, 병마의 고통을 숨기려 기도하셨던 것 같다.
마지막 모습은 편안하셨는데
창백하게 식어가는 뺨에서도 따뜻함이 느껴졌다.
그런 어머니가 없었다면 난 다른 삶을 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